시와 산문

시는 직관적인 글이며, 산문은 지성적인 글이다. 시에서 줄 바꿈, 각운, 음보와 같은 특성은 단지 이미지의 직관성을 살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은 테크닉이다. 테크닉은 시대와 사조에 따라 바뀐다. 테크닉에는 유행이 있다. 그러나 시의 본질은 직관성에 있다. 산문에서는 문장이 문장에 종속된다. 문장이 문장을 설명한다. 물질을 다루듯이 이미지를 자르고 나누고 붙인다. 뒤에 나오는 문장이 앞에 나오는 문장에 종속된다. 산문에서 시간은 계속 지연된다. 가장 바람직한 산문은 완전히 논리적인 글이며, 가장 논리적인 글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산문은 탈시간성, 즉 완전한 타성inertion을 지향한다. 시는 우주적 지속 안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흐르는 이미지를 하나의 근원적 은유 속으로 응축하고 펼쳐낸다. 그것은 섬광과 같이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서로 다른 힘과 방향으로 흐르는 흐름들을 모으고 펴낸다. 앞의 시구와 뒤의 시구는 서로에 의해 해명되지 않는다. 시는 우주적 지속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 시의 탄생은 세계의 탄생이다. 시는 도처에 있다. 줄 바꿈과 각운, 복잡한 상징을 모아놓은 글은 시가 아닐 수 있다; 해 지는 가을 하늘은 시가 될 수 있다. 시의 외관을 흉내 낸 무시간적인 글은 시가 아니다; 길게 늘여 쓴 글이라도 그 안에 시간이 존재한다면, 이질적인 흐름이 존재한다면, 그 글이 자신만의 지속을 점유한다면 그것은 시이다. 시가 음악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늙은 궁정 음악가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에서 단 하나의 음이라도 더하거나 빼기라도 하면 그 완전함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세계의 균열을 그려내는 시에서조차 우리는 우리 마음껏 자르고 더하고 빼고 붙여도 되는 틈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산문에서 문장은 병치된다; 시에서 문장은 흐른다. 산문에서 언어는 배치된다; 시에서 언어는 펼쳐진다. 늙은 별이 우주 한 가운데에 거대한 불꽃놀이를 펼쳐내듯이.


P.S. 물론 시도 산문도 못 되는 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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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사상에서 개념의 지위와 인간의 태도


 

I. 들어가며

 

이 글은 공자 사상에서 개념이 갖는 지위와 의미,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검토해 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공자 사상에서 은 인간사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표상된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모순혹은 부조리라 부른다. 현실의 모순은 현실을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으로부터 정당한 행동 양식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철학 일반에서뿐만 아니라, 인격 수양을 통해 바른 정치를 구현하려던 공자의 사상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합리적으로 해석 가능한 현상의 문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면 충분한 반면, 그렇지 못한 문제는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합리성뿐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한다. 예컨대 죽음의 문제, 과 악의 문제,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문제 등이 이런 것들이라 볼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사마천에게서도 발견되는 바, 선한 사람이 가난과 불행과 요절에 고통 받는 반면 악한 사람이 부와 권력을 누리고 천수를 다하는 등 세대가 거듭되도록 변하지 않고 인류를 괴롭힌 문제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조차 이 문제들은 한 사회의 건전함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 글은 먼저 공자 사상에서 개념이 차지하는 위상을 검토할 것이다. 기본이 되는 텍스트는 󰡔논어󰡕이다. 그 안에서 이 등장하는 횟수를 살펴봄으로써 그 위상을 가늠해볼 것인데, 이는 기존 연구 성과를 수용하되 그 결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양적인 통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횟수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였을 때에 개념의 의미와 그 등장 양상이 상호보완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논어󰡕에서 등장하는 개념의 등장 양상을 열거하고 종류별로 구분한다. 이 분류를 통해 우리는 인간은 어떤 문제를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럴 수 없는가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그 각각의 경우가 어떻게 인간사에서 모순 혹은 부조리로 드러나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끝으로, 그것들을 통해 공자가 을 대하는 태도를 추론해 보는 것으로 이 글은 마무리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자 시대의 종교적 배경이 참조되는데, 왜냐하면 전통적인 하늘[]’ 숭배의 퇴조가 공자 사상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일관되는 문제의식은 종교적 색채를 지우기 힘든 내지는 천명이 공자의 인문주의 사상과 어떻게 정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공자 사상은 흔히 인간 사회의 문제를 초월적 힘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주체적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이해된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가 덕으로써 정치를 펴면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그 근거로 여겨진다. 이때, 초월적 존재인 천과 천명은 그의 사상에서 부수적인 것 혹은 과거 관습의 잔재 등으로 생각되곤 한다.

 

II. 󰡔논어󰡕에서 개념의 지위와 등장 양상

 

1. 󰡔논어󰡕에서 개념의 지위

 

이나 와 같은 개념과 달리 󰡔논어󰡕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표면적으로 해석할 때 우리는 공자의 사상 체계에서 명이 이나 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논어󰡕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구절은 지명知命지례知禮’, ‘지언知言을 같은 선에 놓으면서, ‘지명을 군자 됨의 필수 요건으로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명을 아는 것이 군자 됨의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의 무게감만으로 단순히 명 개념이 공자 사상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논어󰡕에 명에 대한 언급이 드문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공자가 실제로 명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인지, 혹은 실제 언급은 자주 하였으나 󰡔논어󰡕 기자에 의해 소수를 제외한 것들이 누락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이때, 󰡔논어󰡕 󰡔자한편에 있는 한 가지 구절을 참조해볼 필요가 있다. , “子罕言利與命與仁(자한).”

이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은 공자가 세 가지 모두를 적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택용은 󰡔논어󰡕 전체에서 각각 10, 15 등장한 데 비해 이 압도적으로 109회 등장한 점을 들어 이 해석을 반박한다. 그는 공자가 를 드물게 말했지만 은 허여했다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비록 에 비해 󰡔논어󰡕에서 더 많이 언급되지 않았으나, 대신 과 관련된 사태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 점, 또한 가치를 인정하다로 새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정당화한다.

자한편의 위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이 비록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상이할지언정 동등한 지위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반영한다. 그러나 󰡔논어󰡕에 각 개념이 등장하는 횟수를 따져보았을 때, ‘의 비중이 다른 두 개념보다 더 크기에 세 개념이 같은 선상에서 단순 비교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물론 어떤 개념이 󰡔논어󰡕에 더 자주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만큼 더 중요한 개념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단순한 수치상의 차이일지라도 그것을 의미 있게 서술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있다.

먼저, 위의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동의나 반대에 앞서 우리는 단순한 통계적 견지에서 에 대해 접근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접근은 󰡔논어󰡕에 등장하는 이 모두 동질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예컨대 리인편에 등장하는 仁者安仁 知者利仁의 경우, ‘의 목적어로 쓰인 仁德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사람내지는 타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인덕을 평안케 한다거나 인덕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은 그 자체로 모호하여 정확히 어떤 사태를 가리키는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논어󰡕 전체 맥락에서 상극을 이루는 개념이라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위 구절에서 사람으로 해석하였을 때 공야장편에서 공자가 자신이 품은 뜻을 말한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라는 구절과도 정합성을 이룰 수 있다.

우리의 논의에서는 자가 모두 윤리적 덕목으로서 仁德을 의미했는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위에서 논의하였듯 󰡔논어󰡕에 등장하는 모든 이 같은 뜻을 갖고 있다고 단언하기 힘들며, 만약 서로 다른 뜻이 한 글자로 통용되어 문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을 경우, ‘’, ‘’, ‘의 등장횟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논어󰡕에서 각각의 개념이 갖는 중요성을 가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남규는, 어원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을 의미하던 글자였으며 과 종종 혼용되었고, 󰡔논어󰡕에서 등장하는 仁德의 뜻을 함께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어󰡕에서 이 쓰인 구문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경우는 57번 등장한다고 결론 내렸다.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기보다 대체될 수 없는 경우를 세는 까닭은, 전자의 결과가 모두 仁德으로 수렴되는지 확언할 수 없을뿐더러 후자의 결과가 더 엄밀하게 신뢰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이택용의 논지의 근거로 활용되었던 통계는 조금 수정될 필요가 있다.

한편 공자가 말한 내용 가운데, ‘과 관련된 사태 중 직접적으로 이 언급되지 않는 경우는 󰡔논어󰡕28번 등장한다. 공자가 에 대해 언급했다내지는 가치를 인정했다고 할 때, 그것이 과 관련된 사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였던 경우도 위의 통계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가 실제로 에 대하여 적게 언급했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논어󰡕의 기자들이 공자의 언행 가운데 특정 개념을 선호하지 않고 균형 있게 기록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공자가 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43, ‘인덕에 대해 57번 언급하였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논어󰡕에서 에 버금가는 비중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나아가 그것이 공자 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때, 하나의 반론이 존재할 수 있다. , ‘드물게 말했다언급했다/가치를 인정했다는 상반되는 뜻이기에 기초적인 한문 문법 상 子罕言利與命與仁子罕言利與命與仁(강조는 논자)”이 되어야 위의 해석이 자연스럽게 성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 경우에도 을 빈어賓語로 받는 을 받는 가 각각 허여하다그리고의 뜻으로 쓰인 점도 지적될 수 있다. 한 문장 내에서 같은 글자가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런 주장은 분명 유효하다. 그러나 󰡔논어󰡕 단편의 곳곳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의미의 용언이 나올 때 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비슷한 위상의 용언이 병치될 때에도 그런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논어󰡕의 단편들이 형성될 때에 공자의 구어체 문장을 그대로 옮기려 한 데에서 비롯된 듯하다. 텍스트에서 가 쓰이거나 생략되는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들어가거나 생략됨으로써 문장이 말의 리듬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주목된다. 둘째로 의 경우 학이편의 단편에서 한 단어가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 자금이 자공에게 묻는 바,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抑與之(강조는 논자)”에서 밑줄 친 부분은 의문사로서 쓰인 반면, ‘다음에 쓰인 는 본용언으로서 기능한다.

앞서 논의한 바, ‘󰡔논어󰡕에서 다루어진 경우가 실제로 비대칭적이기에 이런 사실을 효과적으로 해석하려 할 때는 위와 같은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비록 이는 텍스트 내적인 분석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만약 알려지지 않은 초기 파편들이 더 많이 발굴되어 공자 생전에 ’, ‘’, ‘이 실제로 동등하게 적게 언급되었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는 한, 우리는 잠정적으로 위의 해석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하였을 때 우리는 개념이 공자에 있어 개념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와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논어󰡕에서 개념의 등장 양상

 

󰡔논어󰡕에서 개념이 직접 등장하는 경우를 유사한 의미 별로 분류하여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A. 정치권력과 관련된 의미

A-1. “可以寄百里之命” (태백)

A-2. “君召命 不俟駕 行矣” (향당)

A-3. “使於四方 不辱君命” (자로)

A-4. “陪臣執國命” (계손)

A-5. “舜亦以命禹” (요왈)

 

B. 생사生死와 관련된 의미

B-1.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옹야)

B-2.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선진)

B-3. “死生有命 富貴在天” (안연)

B-4. “見危致命 見得思義” (자장)

 

C. 운명運命과 관련된 의미

C-1. “五十而知天命” (위정)

C-2. “子罕言利與命與仁” (자한)

C-3. “賜 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선진)

C-4.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 其如命何” (헌문)

C-5.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계씨)

C-6. “不知命無以爲君子也” (요왈)

 

이는 앞서 제시한 이택용의 통계와는 차이가 있는데, 이는 앞선 논자가 인간이 주체가 되는 의 경우를 빼고 센 데에 비해, 여기서는 국정이 연루되지 않은 단순한 심부름이나 외침의 경우를 뺀 나머지는 모두 목록에 포함시킨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爲命裨諶 草創之(헌문)”와 같은 경우에 외교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에 따를 경우,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위계적 관계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엇을 시키다라는 뜻과 멀어지게 되므로 이 논의와는 관련성이 적어지게 된다. 따라서 󰡔논어󰡕에서 의 등장 양상에 대한 논의는 위의 인용문에 한정한다.

은 본래 입[]으로 명령[]하다라는 뜻이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는 위의 인용문 묶음 A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 , 등을 포함하는 초월자가 인간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뜻 역시 있다. 이때, 의 구체적 내용은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벗어나 있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용문 묶음 B생사C운명이 이에 속한다. 이는 특히 인용문 C-4에 잘 드러나 있다. 나라에 도가 행해지는 것도, 행해지지 않는 것도 공자는 모두 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나라의 정치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의미심장한데,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정치가 나아질 수 있다고 본 반면, ‘가 행해지는 것은 그 노력을 넘어선 무언가가 작용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개인의 노력을 넘어선 어쩔 수 없는 것의 영역이 󰡔논어󰡕에는 더 보인다. 이는 그러한 사태에 대한 공자의 태도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예컨대 인용문 B-2에서 공자는 안회의 이른 죽음을 그의 명이 짧은 탓으로 보면서 그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하늘을 원망하면서도 어느 정도 담담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 ‘에 의한 사태는 노력으로서 바꾸고 개선해야할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에 처했을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죽음과 운명뿐 아니라 부귀의 문제와 명예의 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모두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D. 부귀富貴와 관련된 사태

D-1.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可如 子曰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학이)

D-2.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리인)

D-3.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居也” (리인)

D-4. “放於利而行 多怨” (리인)

D-5. “賢哉 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옹야)

D-6.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吾從所好” (술이)

D-7.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술이)

D-8. “貧而無怨 難 富而無驕 易” (헌문)

D-9.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위령공)

D-10. “君子謀道不謀食 (중략) 君子憂道 不憂貧” (위령공)

C-3. “賜 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선진; 중복되는 인용문)

 

E. 명예[人之知己]와 관련된 사태

E-1.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

E-2.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학이)

E-3.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리인)

E-4.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안연)

E-5.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헌문)

E-6.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위령공)

E-7.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위령공)

E-8.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양화)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논어󰡕에서 직접 언급된 사례 이외에도 공자가 과 관련된 사태에 대해 말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공자는 인용문 묶음 B, C의 경우 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반면, 묶음 D, E의 경우는 그와 관련된 사태만을 말하였을까. 한 가지 기준을 제시해보자면, 묶음 B, C는 군자 됨의 과정에 본질적인 것이고, 묶음 DE는 그것에 부수적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인용문 D-10E-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부수적이라 함은 그것이 군자 됨의 과정에 핵심적인 덕목은 아니지만, 군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뜻한다.

부귀의 경우, 군자는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좇지 않으나 부유함에 처했을 때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며, 가난에 처했을 때 역시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어떤 행위가 특정 상황에 맞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용문 D-9에 보면 소인은 곤궁함에 처했을 때 지나침[]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군자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 구체적 덕목은 인용문 D-1D-8에도 나와 있듯, 가난에 처했을 때에 (사람이나 하늘을) 원망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첨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며, 부유할 때에 교만하지 않고 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즐거움과 예는 모두 가난함이나 부유함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자신을 되돌아보았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부유함과 가난함, 즉 생계의 문제는 인간을 옭아매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공자는 생계의 문제에 너무 주의를 기울일 경우 그것에 매몰되어 옳지 못한 행동을 범하기 쉽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때 오히려 가난 속에서도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부유함 속에서도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거나 부를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군자다운 행동을 도모하지 않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에 매몰될 경우 도리어 그는 가난 속에서 무너지고 부를 쉽게 잃을 수 있다(D-2).

남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의 문제는 부귀의 문제와는 결을 달리 한다. 인용문 E-4에서 보듯 공자는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마치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한다. 공자는 오히려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남을 몰라주는 것을 걱정하며(E-2), 차라리 행동을 능히 하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말한다(E-6). 이것만 보면 공자가 명예의 문제를 군자의 길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용문 E-78의 내용은 이와 대비된다. 한편 공자는 󰡔논어󰡕 곳곳에서, 훌륭한 인격으로서 주변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해 보았을 때 공자에게 남이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은 자신의 인격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준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인격에 감화되어 그의 이름을 높여줄 수 있으나 모든 상황이 꼭 그런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지극한 군자가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지극한 소인이 명예로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공자가 그의 삶에서 체험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사람의 인격이 그의 말과 행동에서 은은히 배어나온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널리 인정하고 높이 여겨주는 것은 개인의 노력을 떠난 일이라고 보았다.

그런 어쩔 수 없는사태에 직면하여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소극적으로 남의 미움을 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는 일(E-8), 그리고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여 스스로 가야 할 길에 소홀해지지 않는 것이다. 비록 공자 자신의 말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군자의 길, 의 길은 삶 안에서 끝나리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점에서 우리는 생전의 평가보다 사후에 남겨질 이름이 더 중대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E-7). 생전의 평가는 그 사람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과 여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사후의 평가는 그것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옳음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III. 공자 사상에서 에 대한 인간의 태도

 

1. 부조리한

 

전통적으로 하늘의 명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졌다. 󰡔논어󰡕에서 우리는 인간의 목숨과 운명, 그리고 부귀와 명예가 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확인했다. 공자 사상에서 은 인간의 윤리적, 인격적, 존재론적 경지의 완성이라는 모티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군자학의 목표 가운데 하나인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때, 인격적 완성은 한 순간의 초월transcendence, 황홀경ecstasy, 내지는 종교적 신성 체험과는 관련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예악禮樂과 시를 익히고 체화하는 과정 끝에 도달하는 경지이다. 이 점에서 공자의 사상은 종교적이라기보다 인문적이다.

이 점에서 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춘추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 서주시대까지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했던 천에 대한 신앙이 기울고, 천의 탈인격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실제 종교적 기능을 수행했던 의례는 공자 사상에서 한편으로는 인격 수양의 과정으로 흡수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는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만이 중시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당연한 정의 발로라는 점 이외에도 사회통합의 기능을 가진 점에서 주목되었다. 한편 상제의 대상이 되는 귀신鬼神에 관하여 공자는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대답을 내놓았다(옹야). 이런 식으로 공자는 과거 천에 대한 신앙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인간의 일로, 또한 인간의 일을 위하여 필요한 일로 전이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논어󰡕에서 은 문맥 상 자주 등장하는 데 비해, 그 전통적인 짝이었던 이 드물게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노력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논어󰡕에서 드물지 언급되지 않을뿐더러 공자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나 과 같은 초월자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개념에 귀속되었던 현실적 사태는 여전히 발생한다. 공자가 인문적 견지에서 인간의 관할로 옮겼던 사태들은 그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에 의한 사태는 인간의 노력으로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노력의 영역을 초월한 것들이다. 공자는 바른 정치, 백성의 안정적인 삶, 그리고 사회 통합 등 사회·정치적인 것들을 천의 영역에서 성공적으로 분리해 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앞서 다룬 죽음과 운명의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 부귀와 명예의 문제는 사회·정치적인 것인 동시에 개인의 노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을 갖고 있는 모호한 영역이다. 노력하는 자가 부유해지기도 하는 반면 자공처럼 상업이 자신의 천직이 아님에도 (시세의 차이에 대한) 단순한 추측으로 부를 쌓기도 하고(인용문 C-3), 아첨하는 자가 명예로워지는 반면 공자 자신처럼 올곧은 자가 기용起用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은 마치 명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인 양 환영처럼 등장한다.

죽음과 운명과 관련된 사태들에서 이러한 모순은 극대화된다. 안회와 같은 덕망 있는 인물은 왜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횡사橫死했으며(인용문 B-2), 백우伯牛와 같은 인물은 중병에 걸려 사망했는가(인용문 B-1). 이는 사마천에게서도 발견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백이伯夷·숙제叔齊와 같은 인물은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죽고, 도척盜蹠과 같은 악인은 천수를 누렸는가. 이는 선한 자가 좋은 결과를 받고 악한 자가 나쁜 결과를 받는다는 기존의 천 주체의 정의 인식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한 천 사상이 만연하였던 때에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일들이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거나, 성경의 욥기에서와 같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여 신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는 모순 혹은 부조리 그 자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거나 삶의 논리로 흡수하고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부조리를 은폐하고 망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운명의 문제를 다룰 때에 우리는, 비록 운명이라는 명칭은 필자가 자의적으로 붙인 것이지만, 그것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논어󰡕의 구절들에서 그 구체적 내용을 추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선 인용문 C-3은 이에 대해 한 가지 비스듬한 빛을 던져주는 구절이다. , 자공은 명을 받지 않았음에도재화를 불렸다. (시세의 차이에 대해) 단순한 추측이 잘 맞아떨어지는 일이 많았다. 여기서 不受命이라는 표현이 주목된다. , 자공이 상업에 대해 명을 받지 않았다면 그의 추측이 잘 맞아떨어지는 일은 예외적이고 비상非常한 일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보면, 사람이 하늘이 그에게 명한 일을 한다면 그 일은 비상한 요행僥倖 없이도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중심적 언어로 표현한다면, 천명을 실천한다는 것은 인간에 내재된 본질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즉 자기실현의 과정이다. 인간이 자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바의 것, 능히 할 수 있는 바의 것을 할 때에 그는 마치 하늘이 도운 것처럼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부조리는 그것이 인간의 의식적 선택 내지는 결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결단 이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명에 따를 것인가 혹은 따르지 않을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주체성으로 존재한다.

이 두 가지의 명이 서로 얽혀 새로운 부조리를 만들기도 한다. 하늘이 인간에게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일을 주면서도 그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전에 그의 목숨을 가져가는 일이 존재한다. 공자에게는 안회의 경우가 정확히 그러한 일이다.

한편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운명 또한 󰡔논어󰡕에 등장한다. 인용문 C-4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인용문의 앞선 문맥은 헌문편에 등장하는데, 인용문은 공백료를 자신의 힘으로 제거하려는 자복경백에 대한 공자의 반응이다. 공자는 자복경백에게 도가 실현되는 것도 실현되지 않는 것도 명에 의한 것일 뿐이니 괜한 움직임을 자제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도가 실현된다 함은 자로를 참소한 공백료에게 벌이 내려지고 자로의 결백이 입증되는 것을 뜻한다. 공자는 이 일이 비단 공백료 개인에게 한정된 일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법칙에 따라 흘러갈 일이라고 본 것이다.

이 때의 은 개인을 넘어선 사회 내지는 역사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을 앞서 언급한 개인에게 주어진 본질로서의 운명과 대비하여 사태의 추이라고 이름 해볼 수 있겠다. 개인을 초월한 거대한 차원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부합할 때에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거나 반할 때에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 역시 인간에게 부조리를 던져준다.

 

2. ‘지명知命의 의미

 

앞서 논의한 바, ‘과 관련된 사태들의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목숨, 인간 내면적 본질, 사태의 추이(이것과 앞의 항을 묶어 운명이라 칭하였다.), 부귀, 명예[人之知己]. 우리는 이것들이 공통적으로 인간 개인의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들은 그 앞에 처한 인간들에게 어떤 모순 내지는 부조리를 보여주는데, 이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해 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부조리에 당하여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장 원초적인 반응은 누군가를 탓하는 일이다. 인용문 E-1, 2를 비롯하여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공자가 남을 탓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부귀와 명예의 문제는 그 탓을 사람에게 돌릴 수 있다고 할 때, 죽음과 운명의 문제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한다.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는 것 자체는 부조리한 사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것 역시 문제를 덮어두는 일이다.

물론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사람들의 목숨이 위협받고 운명이 바뀌는 일은 분명 인간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공자가 바른 정치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을 막고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넘어선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그 사태들을 단순히 합리화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그것들을 삶의 논리로 포용할 때, 우리는 더 건강하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부유함이나 가난함에 처하여 공자는 그것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즐거움을 찾으라고 말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음에 처하여서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시각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때에 우리는 貧而無諂 富而無驕(인용문 D-1)”하거나 不患人之不己知(E-2)”한 소극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고 貧而樂 富而好禮하고 患不知人한 적극적 윤리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적극적 윤리는 己欲立而立人(옹야)”하는,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부조리하기까지 한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

죽음의 문제는 한 편의 짧은 글에서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앞으로의 논의 과제로 미뤄두는 편이 낫겠다.

한편, 어떤 길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될 때에, 셀 수 없는 노력을 바쳐 해온 일이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그것을 더 나은 삶을 위한 양분으로 흡수해 낼 수 있을까? 공자는 생애 여러 번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럼에도 그 길을 좇다가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도 사람인 이상 자신의 길에 회의를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대화가 주목된다.

 

F-1.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자한)

F-2.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 其如予何” (술이)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첫째, 공자는 자신의 길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요, 둘째, 그 신념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파악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김성기에 따르면 공자가 처했던 시대적 배경은 점복을 통한 受命의 패러다임에서 인간의 주체적인 知命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전자는 인간이 하늘로부터 특정한 명을 수동적으로 받아서 실천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하늘에 대한 신앙이 약해진 상황에서의 사태로서 인간이 스스로의 본질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에 가깝다. 전자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늘의 이념을 현실화시킬 한 사람이 선택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누구든 자신에 내재된 가능성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을 통해 본다면, 지명知命은 곧 지기知己이다.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의 자기-앎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이며, 사변적이라기보다는 경험적이다. 그것이 직관적인 까닭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앎의 최종근거는 직관적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 누구-물음에 대한 단순한 외면상의 파악은 정답이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행위와 나의 존재의 공명 내지는 일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불일치는 현상적으로 마음의 꺼림, 집중執中의 소실消失 등이 될 것이다. 이는 󰡔중용󰡕에서 개념을 참조해 볼 수 있다.

지명이 경험적 판단인 까닭은 앞서 말한 행위와 존재의 일치가 경험적인 사태인 까닭이다. 공자 자신도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해보았지만, ‘사문斯文의 계승자로서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 이외의 것들은 잔재주에 머무를 뿐이었다. 또한 공자가 오십 세에 이르러 지천명했다는 말을 본다면 그것은 어떤 직관이되 한 순간의 섬광 같은 직관이 아니라 오랜 경험의 축적 위에 세워진 직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런 주관적 확신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근거는 때를 앎에 있다. 앞서 사태의 추이로서의 운명을 살펴본 바 있다. 그것은 인간 집단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온전히 개인적인 것도 아니다. 역사의 흐름은 그저 그러한 것[自然]으로 주어질 따름이다. 여기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실현하려는 뜻이 그 흐름과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나아가 그것이 일치하는 때가 언제이며 그렇지 않은 때는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태백편의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와 같은 문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때를 안다는 것은 직관적이면서도 논리적인 것이다. 직관적이라 함은 사태의 추이라는 것은 인간사의 영역을 넘어선 무엇이기에 단지 어렴풋한 느낌으로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이고, 논리적이라 함은 그럼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관성이 그 사태의 추이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때를 알고 그것에 맞추어 처신하기 위해서 사람은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정확히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파악된 사태의 추이가 자신의 뜻을 실현시켜 주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는 숨거나[] 드러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공자의 경우가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 사상에서 지명지기이며, 다시 그것은 주관적 확신이다. 이것은 과거 수명受命패러다임에서의 주관적 확신과는 달리 인간의 주체성이 짙게 반영된 것이며, 따라서 그 이상의 존재에 호소할 곳이 없는 운명이다. 명을 아는 자는 단순히 명을 받은 자와는 달리 세상의 부조리를 당하여도 그것을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며 따라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 나아가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은 좀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데, 공자 사상에서 그 경지를 이라는 상태로 이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바, 인격의 완성 혹은 자기 본질의 완전한 실현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는 심지어 천과 인을 모두 배제한 고독solitude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으로서 군자의 길은 결국 자기 자신에로 돌아와야 비로소 완성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IV. 맺으며

이상 우리는 󰡔논어󰡕에서 개념의 위상과 등장 양상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따져 명에 대한 공자 사상에서 인간의 태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논의하였다. “不知命無以爲君子也와 같은 표현에서 보듯이 공자 사상에서 개념이 갖는 무게감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는 󰡔논어󰡕에서 개념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논어󰡕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에 비해 명시적으로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인덕仁德’, ‘인정仁政등을 뜻하는 경우에 한정하고, ‘이 간접적으로 등장한 사례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우리는 에 비해 결코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개념이라 말할 수 없다.

은 기본적으로 초월적 권위를 가진 등이 인간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가리키는 사태나 상황 등이 개인 혹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유추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논어󰡕에서 과 관련된 사태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죽음과 운명의 문제이고,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부귀와 명예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었다. 이때, 전자와 후자의 구분은 공자 사상이 목표로 하는 바 군자-됨의 길에 그것이 핵심적인가 부수적인가를 기준으로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뜻에 비추어 이 과거 종교적 함의를 띠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신앙이 쇠퇴하였던 공자의 시대에 명은 다른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공자 역시 어느 정도 종교적인 인물이었을 것으로 미루어지나, 그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명확히 구분하였고, 종교의례 또한 인간의 보편적 삶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이나 정치로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자는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구하였다. 위의 네 가지 문제를 대함에 있어 공자에게서 보이는 태도는 공통적으로 자기로의 회귀내지는 자기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운명의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는 개인에 내재된 인간적 본질로서의 운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태의 추이 즉, 사회, 정치, 역사의 거대한 흐름으로서의 운명이다. 전자는 이 과거 가졌던 의미 가운데 하나인, 이 세상에서 개인이 지니는 사명使命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공자 자신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공자 개인의 삶을 살펴보았을 때, 그 사명의 실현은 번번이 좌절되고 실패할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공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의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단순히 공자가 하늘의 사명에 대한 종교적 믿음에 경도된 것이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점에서 앞서 인용한 요왈편의 구절에 등장하는 지명知命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즉 지기知己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잘 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수명受命의 패러다임에서 탈종교적인 새로운 사고 체계로의 이행이라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탈신비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앎은 직관적이고, 경험을 필요로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 판단만을 허할 뿐 긍정적 판단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운명의 두 번째 의미에 대한 앎을 동반하지 않은 단순한 자기 확신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과 하늘을, 자신과 인간 세상을 대립시켜 후자를 원망하고 매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러한 남 탓, 또 반대로 하늘과 세상을 정당화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기 탓도 아닌 새로운 건전한 길을 모색하였다. 그것이 바로 때를 앎이다.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펴기 위해 사람은 사회 혹은 역사와 관계할 수밖에 없는데, 사회와 역사 역시 그 자신의 고유한 흐름을 갖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그 흐름을 운명이라, 혹은 때[]라고 부를 수 있다.

공자에게 군자의 길은 때를 읽고 그것을 앎으로써, 자신의 뜻과 때가 맞지 않을 때에는 은거하는 한편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대범히 하며, 그것이 맞을 때에는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때 군자는 혹은 인격적 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공자 사상의 목적은 그 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從心所慾不踰矩내지는 중용中庸의 상태라고 추측해볼 수는 있겠으나, 자세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룬다.

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인간적이고 또한 주체적이다. 이는 세계의 부조리에 마주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완성된 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비록 공자 자신의 사상에 천착하면서 󰡔논어󰡕만을 그 분석 대상으로 놓아 다소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유가 사상 일반이 아닌 공자 개인의 사상에 조금 더 집중해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발전시켜볼 수 있는 논의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겠다.

 

 

V. 참고 문헌

 

󰡔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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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oors“The End”와 오이디푸스 신화

 

곡 길이만 장장 12분에 달하는 이 노래는 무언가에 홀린 예언자의 살풀이처럼 들린다. 도입부에서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기타 리프가 네 번 반복되고 그 위에 탬버린 흔드는 소리가 얹히는데 이는 샤만의 제의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듯하다. 곡 길이가 긴 만큼 그 가사도 47행에 달한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 가사가 어떤 하나의 이야기를 나타내고 있다고 짐작하기 힘들다. 그 자신이 시인이었던 짐 모리슨은 이 곡의 가사에 또한 함축적이고 상징적인 시어를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안에는 일관되게 흐르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첫 번째 힌트는 곡의 클라이막스이자 가장 잘 들리는 가사 “Father, yes son, I want to kill you/ Mother, I want to, murder you(32-33; 33행에 ‘murder’ 대신에 ‘fuck’이 쓰여진 판도 있다.)”이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반자동적으로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린다. 그러나 가사 텍스트의 전반적 맥락에서 주인공 목소리가 오이디푸스적 욕망을 스스로 억누르면서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내용은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이 내용은 프로이트가 읽었던 오이디푸스 신화에 대한 재전유일 가능성이 있다.

가사 텍스트를 살펴보면 그것이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부분은 1-9행으로 주인공 목소리가 말하는 부분이고, 둘째는 10-33행인데 여기서는 주인공 목소리와는 별개의 나레이터가 등장한다. 끝으로 34행부터 47행까지는 다시 주인공 목소리가 등장한다. 물론 실제 곡에서는 세 부분 모두 짐 모리슨이 노래하고 있다. 세 부분의 시간선에 대해서는 후에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가장 먼저 주목되는 것은 첫 부분에서 주인공 목소리가 대사를 전달하는 ‘you’가 누구일까 하는 것이다. ‘you’에 대해 주어진 정보는 다음과 같다: 그는 주인공 목소리의 ‘best friend(1)’이자 ‘only friend(2)’이며, 주인공은 그의 눈을 더 이상 보지 않을 것이다(6). 또한 43-44행에서 그는 ‘you’를 놓아주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며, 그러나 ‘you’는 그를 따라올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 후, 그는 ‘you’와 공유했던 ‘laughter’, soft lies’, 그들이 죽으려고 했던 수많은 밤들에 끝을 고한다(45-47).

첫 번째 가능성은 주인공 목소리와 ‘you’가 분리된 존재라는 것이고, 둘째는 그 둘이 한 인간에 내재한 두 인격이라는 것이다. 첫 번째 경우에는 다시 ‘you’가 이야기 속 인물인지 아니면 이야기를 초월한 인물인지가 문제된다. 그러나 가사의 맥락에서 이야기 속 청자가 따로 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다. 또한 이야기를 초월한 인물이라면 주인공 목소리가 위와 같은 구체적인 정보를 담은 대사를 할 까닭과 개연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you’가 주인공 자신이라고 보는 편이 낫겠다.

실제로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아버지 왕을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자신의 눈을 찔러 멀게 한다. 그는 아름다운 친구이자 자신의 유일한 친구인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모든 미래의 꿈과 계획이 더 이상 쓸모 없어졌으며, 모든 존재하는 것들의 종말이 왔다; 과거 누려왔던 안전도 더 이상 없으며, 새로운 것도 없을 것이다. 이어 그는 말한다.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상상할 수 있는가, 제약도 없이 자유로운 미래를. 그리고 그 미래는 ‘desperate land’에서 ‘stranger’s hand’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 주인공 목소리 자신의 손을 기다리고 있다. 소포클레스의 극에 등장하는 오이디푸스는 테바이의 왕이었지만, 코린토스 태생의 유일한 이방인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 답을 우리는 위에서 분류한 곡의 두 번째 부분에서 엿볼 수 있다. 여기서 우리는 첫 번째 부분과는 이질적인 목소리가 등장함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주인공 목소리를 지칭하는 단어로 ‘I’가 아닌 ‘The killer’ 내지는 ‘he’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다. 10-19행에서 그는 고통의 광야에서 길을 잃은 채 ‘summer rain’만을 기다리는 사막의 존재로 나타난다(낙타? 아니면 선인장?). 그리고 그는 자기 안에서 낯선 목소리를 듣는다: ‘ride the king’s highway’, ‘to the ancient lake’; ‘the west is the best’, ‘the blue bus is callin’ us’. 여기서 서쪽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암시되지 않는다. 그것은 해가 지는 곳일 수도 있고, 혹은 추방된 낙원을 의미할 수도 있다.

그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고대의 갤러리에서 얼굴을 가져온 후, 형제자매의 방에 들른 뒤 부모가 있는 방으로 향한다. 여기서 그가 그의 신발을 신었다는 것은 어떤 떠남을 암시하는 상징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생명을 버리는, 저 세상으로의 떠남이 아니다. 오이디푸스는 그 자신이 아기일 때 버려졌던 키타이론 산으로 향했다. 주인공 목소리는 광야로 돌아갈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가사의 두 번째 부분이 첫 번째 부분에 앞서는, 과거 시점임을 알 수 있다. , 그는 소포클레스의 극에서처럼,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정사를 나눈 뒤 자신의 눈을 찌르고 무한한 자유의 광야로 나아간다. 그런데 왜 이 주인공은 적극적으로 이런 패륜의 현장으로 뛰어드는가? 그는 단지 평범한 하나의 정신병자에 불과하다는 말인가? 여기서 우리는 오이디푸스가 아폴론 신전에서 받았던 신탁, 하나의 예언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소포클레스 극의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절망적인 운명을 거부하고자 했다. 그가 자신의 아버지라고 생각한 코린토스의 왕을 피해 광야를 걸었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어 테바이의 영웅이 되었다. 그런데 그의 진짜 아버지는 광야에서 자신이 죽인 늙은이 라이오스였으며, 테바이의 왕비는 자신의 어머니였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이 피하려던 운명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고 다만 소극적으로 그것에 굴복해야 했다.

 “The End”의 인물은 그와는 반대이다. 그에게 오이디푸스와 같은 운명이 똑같이 주어졌다고 할 때, 그는 적극적으로 그것에 맞선다. 그는 운명이 자신을 덮치기 전에 자신을 먼저 던진다. 찢어질 운명이었다면 그는 먼저 자신을 찢는다. 불탈 운명이었다면 그는 먼저 자신을 불태운다. 운명이 그를 휘갈기고 내동댕이치기 전에 그는 자신을 파괴한다. , 운명아 보아라, 네가 원하던 나의 모습이 지금 여기 있다, 더 없이 비참하고 광기로 가득 찬 이 모습이! 자기파괴적 저항. 그는 마녀다.

그리고 그는 그 운명이 실은 자기 안에 있는 것임을 보았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욕망이다. 거울을 보고 그는 말한다,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I’ll never look into your eyes, again’. 그의 웃음은 이중적이다. 하나는 운명에 대한 조롱,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에 내재된 광기의 웃음. 노래에서 39행과 40행 사이에 등장하는 긴 악기 부분에서 우리는 후자를 확인할 수 있다. <The Doors> 앨범에 실린 버전을 기준으로 8:47에서 등장하는 기타의 커팅 기법은 성행위를 묘사한 듯한 인상을 주고, 그 후 빨라지는 템포와 소리들의 충돌과 폭발 가운데 10:00에 나지막하게 ‘kill, kill, kill, kill’이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운명과 광기와 자기파괴, 그리고 욕망과 패륜, 고뇌와 갈망이 뒤섞인 폭발의 잔재 위에 그는 다시 속삭인다.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It hurts to set you free/ But you'll never follow me/ The end of laughter and soft lies/ The end of nights we tried to die/ This is the end’. 그리고 그는 무한한 자유의 광야로 발길을 옮긴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과 싸운 셈이다. 이것을 두고 자아 분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것은 원래 자아란 통일적이고 동질적인 하나의 고체여야 한다는 가정을 포함하고 있다. 그의 머리 속에서는 두 개의 목소리가 울린다. 두 목소리는 서로 싸우고, 서로 웃고(laughter; 45),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지어낸다(soft lies; ibid.). 그러나 그 둘은 결코 섞일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내면에 꿈틀거리는 프로이트적 욕망과 그것을 억압하는 답답한 자기 자신, 결국 그것은 그를 옥죄는 하나의 운명이 된다.

그는 운명에 맞서 싸웠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소극적이고 무의미한 저항에 머물러 다만 운명을 수용하고 스스로를 추방자로 내몰았다면, “The End”의 주인공은 운명을 짓밟고 스스로를 파괴함으로써 결국 자유의 땅으로 나아갔다. 그는 자신의 눈을 죽였다. 그가 얻은 자유는 물론 세속의 도덕과 관습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법과 도덕과 관습의 테두리 안에서 부대끼며 만족하는 길들여진 자유가 아닌, 거칠고 고통스러운 자유이다.

그는 그 어떤 실존주의 철학보다 더 근원적인 고통에서 구르고, 근원적인 자유의 땅으로 나아가려 한다. 언제나 가장 거대한 적은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부록: The End 가사]

 

This is the end, beautiful friend                                                1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Of our elaborate plans, the end

Of everything that stands, the end

No safety or surprise, the end                                                 5

I'll never look into your eyes, again

 

Can you picture what will be, so limitless and free

Desperately in need, of some, stranger's hand

In a, desperate land

 

Lost in a Roman wilderness of pain                                          10

And all the children are insane, all the children are insane

Waiting for the summer rain, yeah

There's danger on the edge of town

Ride the King's highway, baby

Weird scenes inside the gold mine                                          15

Ride the highway west, baby

Ride the snake, ride the snake

To the lake, the ancient lake, baby

The snake is long, seven miles

 

Ride the snake, he's old, and his skin is cold                             20

The west is the best, the west is the best

Get here, and we'll do the rest

The blue bus is callin' us, the blue bus is callin' us

Driver, where you taken us

 

The killer awoke before dawn, he put his boots on                     25

He took a face from the ancient gallery

And he walked on down the hall

 

He went into the room where his sister lived, and, then he

Paid a visit to his brother, and then he

He walked on down the hall, and                                          30

And he came to a door, and he looked inside

Father, yes son, I want to kill you

Mother, I want to, murder you

 

C'mon baby, take a chance with us

C'mon baby, take a chance with us                                       35

C'mon baby, take a chance with us

 

And meet me at the back of the blue bus

Doin' a blue rock, on a blue bus

Doin' a blue rock, c'mon, yeah

Kill, kill, kill, kill, kill, kill                                                   40

This is the end, beautiful friend

 

This is the end, my only friend, the end

It hurts to set you free

But you'll never follow me

The end of laughter and soft lies                                           45

The end of nights we tried to die

This is the end


(가사 출처: http://www.lyricsfre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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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에 대한 서유럽 근대 철학자들의 생각은 일면 단순하다. 그들은 '벗어남'으로서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한 개인이 어떠한 초월적 권위(관습, , 인간관계 등)로부터도 자신의 행위에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상태를 자유롭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사회계약론자들이 가정하는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 그들의 언어로는 '자연상태'에서는 개인들의 욕구와 의욕이 서로 충돌하거나(홉스) 아니면 아예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루소) 공존한다. 그것들은 하나의 평평한 평면에 있을 뿐 그것들 ''에 있는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신을 잃어버린 그들 근대인은 인간들이 그런 절대적 자유의 상태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과 같은 초월적 공권력을 만들어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답은 여러 가지였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국가상태를 개인의 자유가 제약된 형태로 보았다. 특히 홉스의 통찰은 주목할 만한데, 그는 한 개인이 타인의 자유에 대해 불안과 적대감을 갖는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 모든 사람의 무제약적 자유를 동시에, 같은 정도로 제약한다면 모두의 마음 속에 (어느 정도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유효한 통찰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우리의 관습과 법 체계는 '위험한 자유', 즉 살인, 폭력, 모욕, 사기 등을 모든 사람에 대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발상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에 대한 대책을 그들은 마련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근대적 사고방식은 '자연'을 문제시 하고, '자유'를 적대시한다. 우리는 인공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곳을 '빈 땅' 내지는 '노는 땅', 즉 일하지 않는 땅이라고 부른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인간들의 위험한 자유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완전한 치외법권에 놓이게 되었다(한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대중의 의사와 유리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라). 자유를 적대시하는 태도의 극단에는 집단적 편집증이 있다. 뭐만 하려고 하면, 너 위험한 짓 하려고 하지, 너 반역하려고 하지, 너 내 등 뒤에 칼 꽂으려고 하지, 너 의무 이행은 소홀히 하고 받을 것만 챙겨가려고 하지 등등; 한 마디로, 너 빨갱이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잘못 쓴 것이 아니다. 가능성이 두 번 포함되어 있다) 것으로 상상되는 모든 자유가 의문시되고 초월적 권위의 승인을 받고 감시를 받아야만 하게 되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와 개인이 계약관계라고 말했다. 개인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내세우는 계약조건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내세운 조건을 '의무'라 하고, 개인이 내세운 조건을 '권리'라 한다. 그런데, 최초로 계약을 맺은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그들의 자손, 자손의 자손들은 태어나기 전에 계약서에 지장 찍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럼 이들과 국가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논의의 일관성을 위해 그런 경우(실제로는 현대인들이 대부분 해당하는 경우지만) 국가와 개인 사이에 암묵적 동의가 있다고 보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야훼와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실제로 다수 칼뱅주의자였던 사회계약론자들은 계약이라는 모티프를 좋아했다). 성서에서 이들 사이에 적어도 두 번의 계약관계가 성립했는데, 한 번은 야훼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헤브라이인들을 해방시켜준 대신 열 개의 계명을 내렸고(구약), 다른 한 번은 신 스스로가 모든 인간의 원죄를 대속하고 사랑이라는 새 율법을 내렸다(신약). 그렇다면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를 신과 같은 위치에 놓았다는 말인가?

사실 이것은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왜 국가와 신을 (적어도 이야기의 구조상) 같은 위치에 놓을 수밖에 없었을까? 여러 대답이 있겠지만 가장 유효한 답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자유가 그 만큼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떠한 인간적, 세속적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어서는 불합리한 것이었다. , 그들이 보기에 인간의 자유는 여전히 중요한 것이고 지켜져야 할 것이었지만, 인간의 공존상태를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자유는 제약 받아야 할 것이었다. , 그들은 중세기 인간의 위험한 자유를 제약했던 준거가 신과 교회에 있던 것에 대비해 새로운 세기의 준거는 법과 국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회계약자들의 나름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왜 근대국가는 지금 이 모양이 되었을까? 그것은 국가가 변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가 변방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정치에서 이 통찰을 구할 수 있다. 당장 <맹자>를 펼쳐서 아무 곳이나 읽어봐도 우리는 당대 왕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백성들의 여론임을 알 수 있다. 식객들을 향한 그들의 질문은 하나 같이 내 백성들이 내 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맴돌고 있다. 뒤집어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지배자에게 세금을 내지 않고 도망가거나 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저항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가 들어서면서, 도망자, 추방자, 이방인, 무법자의 이야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만 그들에 대한 은유 혹은 값싼 서정적 상품만이 남았다. 예전에는 국가의 성벽을 나서는 순간 광야가 있고, 숲이 있고, 혹은 버려진 자들의 공동체가 있었다. 국가들은 이 지역을 적대국 사이의 완충지대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성벽도 없는 국가의 국경을 넘어도 또 다른 국가가 등장한다. 성벽 바깥의 사람들이었을 사람들은 성벽이 없어진 도시 한 구석 슬럼에 살고 있으며, 그마저도 재개발에 밀려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기도 하다. 많은 어린이들이 집과 가정 바깥에서는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무리한 요구도 꾹 참고 살아내는 것처럼, 국가도 변방 없는 지배체제 속에서 견제 받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수 많은 원인 가운데에 자유에 대한 관념이 놓여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에 주목한 나머지 그들이 생각했던 자유의 긍정적 측면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베르그손의 통찰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우선 자아를 두 종류로 나눴는데, 바깥에서 주어진 관습이나 금기, 예절 등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위로 드러나는 표층자아와,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는 관계 없는 진정한 나, 즉 심층자아이다. 그는 그 심층자아와 행위와의 관계를 자유라고 보았다. 심층자아에 충실히 따른 행위는 자유로운 것이고, 도덕이나 관습, 금기, 사람들의 눈치에 떠밀려 하는 행동은 부자유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행위 아래에 놓인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 행위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심층자아의 욕망이나 의욕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의욕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나의 능력이 필요하다. 한편 의욕과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제지하는 외적 요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자유란 능력과 조건이 충족될 때,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자유는 제한하되,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따라와야 한다. 만약 후자를 무시할 경우, 국가는 계약을 위반한 것이고, 국민의 세금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국가를 견제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여기까지 쓰고, 내가 말한 내용이 헤겔의 국가철학에 흡수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래서 대부분의 철학도들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철학자들에게 굴복하나 보다. 앞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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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가치에 대하여

 


§ 사유와 가치

사유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잃은 사람에게 길을 밝혀주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데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다음 순간을, 다음 새벽을 꿈꿀 있게 해주는 것이라면, 다시 새로운 삶을 불탈 있게 하는 것이라면, 인간 사유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윤리에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윤리는 가치에 대한 탐구이다. 가치는 우리가 삶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를 가지지 못하였을 때에 우리는 가치를 가졌는가 가지지 못했는가를 문제 삼는다. 다음엔 얼마나 가질 것인가가 문제 된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쥐었던 주먹을 풀고 손바닥에 깊이 패인 손톱 자국을 바라보며 모든 가치들을 바람에 놓아준다. 모든 가치와 가치에 대한 욕심을 놓아버린 사람을 깨달은 한다면, 우리 삶의 여정은 경지를 위한 것이라 있는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사다리를 짜고, 사다리를 대고 위에 이르러서는 사다리를 던져 버리는 , 여기에 윤리의 역설이 들어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까닭은 아마 그들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출발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갖고 싶다는 의욕과 욕심일 것이다. 순간도 끊어짐이 없이 우리 머리 속에는 생각이 흐르고, 감정이 흐르고, 그것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흐른다. 의욕 한다는 것은 내가 바라는 하나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에 대한 생각에 대한 생각생각이 거듭될수록 원점에서는 멀어지고, 혹여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혹은 하는 것이 생각에 미친다는 생각에 자만심이 생기고, 우월감이 생기고, 열등감이 생기고, 자괴감이 생겨난다. 그러면 우리는 본래 자기가 의욕 하였던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앞뒤가 막힌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다시금 출발점을 상기하려 한다. 우리 삶의 여정은 각자의 출발점에 대한 상실과 회복의 역사이다. 깨달은 자는 오직 출발점을 지키며, 생각을 붙잡는 생각들을 놓아주고 흘려 보낸다. 흔들림 없이 출발점을 고수하는 , 다시 말해 사유하지 않는 , 다시 말해 사유의 죽음을 경험하는 , 그것이 우리의 종착점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상태가 글의 주제는 아니다. 글은 경지에 이르기 위한, 자각하고 있건 자각하지 못하건 시종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사유들의 줄기를 모색한다. 사유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줄기를 갈래로 잡아서 각각 초월주의, 인문주의, 세속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각각은 가치의 속성을 초월적, 내재적, 세계-내적으로 파악한다.

 

§ 가지 가치

어떤 사람들은 초월을 희구한다. 초월이란 본래 나에게서, 현재에서, 내가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구한다. 초월주의는 초월적 가치를 추구한다. 초월하는 것은 신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신성함이란 기본적으로 내가 아닌 , 나의 바깥에 있는 무엇이 되는 데에서 생겨난다. 내가 아닌 , 지금 시간이 아닌 , 여기 공간이 아닌 것이 되기’—초월주의는 낯선 타자와의 합일을 희구한다. 내가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무엇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타자의 얼굴이 생겨난다. 자체로 신성한 무엇, 내가 되어야 , 혹은 가까워져야 무엇인 타자그것은 죽은 자의 영혼일 수도, 자연현상의 원리일 수도, 혹은 운명을 주재하는 절대주권일 수도 있다. 종교란 타자와 나의 관계를 새로이 하는 활동이다. 종교의식은 번에 끝나지 않는다. 나와 타자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가만 놔두면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이를 새롭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유교의 제사와 기독교의 예배, 불가의 독경이나 힌두의 의식은 모두 하나의 뿌리를 공유한다.

이런 종교적 감성이 널리 퍼져있던 문화에서 세속의 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신성한 공간들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편 축제는 지금-여기를 벗어난 다른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 특히 힌두교의 홀리축제는 신화의 시간이 지상의 시간과 일치하는 때에 행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유목민족의 수렵제나 농경민족의 추수제는 어떠한가 수렵이라는, 농경이라는 행위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행위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생태계의 순환은 인간의 너머에 있는 시간의 운행이 아닌가? 이런 신성한 공간과 시간에서 사람들은 특별한 옷을 입고, 특별한 행위를 하고, 특별한 언어를 쓰고, 특별한 음식을 먹으며 일상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이 되어 타자와 가까워지려 한다. ‘엑스터시ecstacy’ 나에서 탈출하는 순간의 황홀함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나라가 이런 초월주의가 가장 만연하였던 국가였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최고신인 상제에게 나라의 중대사를 물었다. 후대인 나라가 상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비난할 썼던 주지육림이란 말은 사실 제사 음식을 가리킨다. 종교의식에서 타자를 대접하는 것은 사람들이 구할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인신공양 풍습은 보통의 생각과는 달리, 특히 타자의 입장에서 , 사람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제사를 마치면 타자를 대접하고 물려받은 음식은 고스란히 사람들의 몫이 된다. 하나의 음식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은 타자와 가까워지려 하였다. 카톨릭 교회의 성만찬 의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틈에 세속주의가 들어서면 타자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지고 오히려 재물과 음식에 대한 욕망이 싹튼다. 추측건대 나라 말기에는 세속주의적 관심으로 인해 본말이 전도되어 왕들이 무리한 제사를 지내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을 것이다.

다음에 들어선 왕조는 인문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제사를 중시하고 최고신인 천을 모셨다는 점에서 주는 과도기에 있다. 서주 시대가 끝나고 관학의 위치에 있던 학문이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성립한 것이 제자백가이며, 가운데에서도 특히 주공의 사상과 가장 가까웠던 철학이 유가 철학이다. 공자는 인문주의적 전통을 새로이 세우고자 하였다. 대표적으로 그는 이전 시대에 왕만이 받을 있었던 천명이라는 개념을 개인적인 지평으로 확장시켰다. 초월주의의 핵심이 타자와의 합일에 있다면, 인문주의의 핵심은 내면의 발견에 있다. 공자의 천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안에 자리잡은 어떤 목소리라고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다이몬과 같이 목소리는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초월주의적 타자가 아닌 까닭은 목소리가 나의 바깥에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해당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안에서 나만을 인도해주는 길잡이인 때문이다. 그것은 양심이라 부를 수도, 촉이라 부를 수도, 기분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귀신을 어찌해야 합니까, 제자가 물었다공경하되 멀리하라, 공자가 답했다. 여전히 공자는 초월주의의 배경에서 자라났지만, 그의 사상은 초월주의가 빠질 있는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타락한 초월주의는 이스라엘 민족의 율법주의로 수도, 혹은 세속주의와 결합하여 상말의 주지육림으로 수도 있다. 인문주의적 견지에서도 제사는 여전히 유용한 것이었다. <논어>에서는 백성이 화합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제사를 옹호한다. 그러나 공자가 화려한 예식보다는 검소한 마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문적 사상을 엿볼 있다.

인문주의가 기울 등장하는 것은 자폐적 사상과 유미주의이다. 위진 시대 죽림칠현의 사상인 현학 그러하고,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철학이 그러하며, 근대의 순수문학이 그러하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을 잃은 인문학이 도피하는 곳이다. 조선후기의 예학 역시 이와 같다. 사회 변혁과 제도 개선에 관심을 잃은 채로 예법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검토하는 것은 인문주의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타자와의 합일을 희구하는 것으로서의 종교는 세계 어디서든지 있었지만, ‘으뜸의 가르침으로서의 종교는 오직 초월주의와 인문주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였다. 예수는 이스라엘 율법주의의 환경에서 태어나 야훼와 인간 사이에 있던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내용은 오직 사랑일 뿐이었다. 석가는 브라흐마교의 고행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태어나 인간의 고통을 발견하였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 집착을 버리라는 것은 일견 초월주의적 분위기를 내지만, 반대로 보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두어 내면의 고통을 해방하는 깨달은 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모두 안에 있는 무엇, 그것이 죄의식이 되었든 고통이 되었든, 그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존하고 있다. 초월을 향한 가능성은 여전히 내재적인 것이다.

세속주의의 가치는 세계-내적이다. 그것은 나를 넘어선 것도 아니고, 안에 이미 갖춰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오직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들이다. , 명예, 인맥과 같은 사회권력이 모두 세속적 가치이다. 초월주의적 인간이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인문주의적 인간이 내면의 가치를, 만물의 제일성을 깨달은 사람(장자)이라면, 세속주의적 인간은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과거제도는 세속주의와 인문주의가 결합한 산물이다. 전국시대에 활동했던 맹자는 세속의 시대에 덩그러니 남겨진 인문주의자였다. 그가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던 양혜왕에게 일갈하며 말했던 어찌하여 이익을 말씀하십니까(하필왈리)’ 때엔 이미 유효성을 상실한지 오래된 사상에서 떨어진 혜성의 꼬리와 같은 것이었다. 서유럽 중세 말의 제국에게 카톨릭이 가졌던 의미는 다만 국가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조직 정도에 지나지 않았듯이 말이다.

인문주의가 타락하면 자폐적이 되거나 유미주의를 내세우기 쉬운데, 세속주의는 사회에 대한 시각을 틔워줄 있다. 기술과 경제에 대한 관심은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 법과 정치에 대한 관심은 나은 제도를 만들게 해줄 있다. 그러나 세속주의가 자신의 길을 맹신할 , 최악으로는 가치들을 숭배하게 우리는 역사에서 끊임없이 나타난 세기말 상황을 다시 재현하게 된다. 돈이 모든 가치 위에 서게 되고, 법이 기능을 잃고 오직 강자의 이익만을 보존하려 하며, 모든 인간적 관계가 경제적이거나 정치적 관계로 변질될 , 인간의 죽음이 자체로 존중 받지 못할 우리는 이미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죄가 합리화되며, 내면이 공허해진다. 로마 제국의 말기가 그러했으며, 중세의 끝이 그러했으며, 제국주의의 시대가 그러했으며,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가 그러하다.

과학이 시대를 지배한다. 세속주의의 타락은 과학이 자신의 영역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시작되는 것일 있다. 초월주의 시대는 이상이, 인문주의 시대는 느낌이 존중 받는 시대다. 그러나 세속의 가치는 사실fact 있다. 지금 우리는 종교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고, 내면의 표현에서 사실과 논리를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로 환원할 없는 모든 표현이 무시 받으며, 돈으로 환산할 없는 모든 문화가 사장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법치가, 과학기술이 기울어진 시대를 바로잡을 있다는 믿음은 너무 순진하다. 세속의 세례를 받은 입으로 인문학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베스트셀러가 삶을 풍요롭게 해줄 있다는 믿음은 잘못되었다. 인간이 초월적 가치도, 내면적 가치도 없이,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회의 여론과 대중의 목소리에 끌려 다니는 , 이것이 몰락의 징후이다.

 

§ 초월적 인문주의

역사적으로 최고의 가르침으로서의 종교가 문화권에서 성립하고 전파되면서, 초월주의와 인문주의 사이의 간격은 질적인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로 되는 경향을 보인다. 최초의 문명이 성립하고 발달하면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가져온 종교적 심성은 여전히 의례로서 남아서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형식주의적인 경향으로 흘렀고, 종교적 문명이 군사력을 앞세운 세속적 문명에 의해 무너지면서 형식과 의례에 대한 쇄신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때에 등장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계종교이다. 시대적 필요 이전에도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대한 자각은 분명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 속에서 은은하게 지각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문주의라는 사상적 형식으로 정립되었다고 생각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초월주의의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치의 규범으로서 부상했다. 기독교가 유대 율법주의 시대에 등장해 인간 내면의 죄성에 주목했듯이, 불교가 브라흐마교의 변두리에서 인간 삶의 고통에 주목했듯이, 유교가 춘추시대 말기에 인간다움, 의로움 등의 내면적 가치의 회복을 주장했듯이 말이다. 초월적 인문주의의 탄생이다.

초월적 인문주의는 내면적 가치의 발견과 실현을 초월적인 지점에서 근거 지웠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기독교는 신앙을, 불교는 성불을, 유교는 천명을 근거로 삼았다. 이런 사상들은 그것이 발흥한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전파되고 연구되면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철학사 모두 초월적 인문주의의 계보학이라고 말할 있을 만할 정도이다. 시대 이후에 등장한 모든 초월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인간 내면에 대한 관심을 결여하지 않으며, 극단적 내재주의 역시 초월적인 힘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없다. 물론 여기서 그리스 철학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그리스 고전시대의 아테나이는 지중해 상업의 중심지로서 오히려 세속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다. 당대에 성행했던 소피스트들이 본래 법률가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각각 초월주의적이고 내재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공동체의 정치와 경제, 법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 에피쿠로스 학파나 스토아 학파 소극적인초월적 인문주의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퀴레네 학파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허무주의를 낳았다. 다음 세대에, 과거 헬레니즘의 영향권과, 로마에 편입되려는 게르만 족의 지역을 통틀어서 새로운 가치 규범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였다. 이후 서양의 중세의 사상사는 기독교를 배제하고 설명할 없게 된다.

이런 탄생과 발전 과정을 거친 초월적 인문주의의 계보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았을 크게 가지로 분류해볼 있다. 사실 작업은 철학사 전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론으로 내놓아야 적절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기엔 나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고, 반대로 글이 그런 검토를 위한 선이해를 어느 정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비교적 간략하게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윤리규범의 근거가 현재와 대응하는 종교이다. 여기서의 종교는 초월자에 대한 숭배와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측면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는 서유럽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둘째는 근거를 과거에, 정확히 말하면 지나간 시간의 모든 현재인 역사에 두는 역사주의이다. 이는 한대 동중서의 유학 이후로, 공자가 모든 사람(혹은 지식인)에게 허여하였던 천명이 다시 천자의 배타적인 몫이 이후의 중국에서 성행하였다. 사마천의 <사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서양인이 신을 두려워할 중국인은 역사를 두려워했다. 마지막 경향은 윤리규범의 근거를 죽음 두는, 정확히 말해 죽음에 대한 인간 내면의 본연적 태도에 두는 실존주의이다. 이런 경향은 사실 동서양 철학사를 통틀어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가지 확실히 있는 것은, 씨앗이 칸트에게서 엿보이며 그것이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를 거쳐서 사르트르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 지금과 여기

신에 대한 경외도, 역사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현대인들에게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것은 실존주의라 있다. 그나마도 죽음을 경시하고 외면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탓에 그것이 어떤 가치규범을 제공할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글에서 내가 의욕하는 것은 세계가 다시금 초월적 인문주의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세속주의가 만연하면서 인간의 삶이 황폐화된 것을 보고 세속주의 자체를 공격하기 위함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가지 가치의 장단점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가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가치규범이기를 내세우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시대는 세속주의가 득세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세속주의만이 유일한 가치규범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심성과 감수성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마치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편한 것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윤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속에서의 성공을 희구하는 사람에게 실존주의를 강요한다면 그는 일단 그것에 공감하지 못할 것일뿐더러, 나아가 죽음의 절대적인 허무함 앞에서 모든 의욕을 잃고 방탕함을 일삼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내면의 쇄신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사람에게 부와 명예와 인맥이 주는 달콤함을 이야기해봤자 그는 그것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나아가 세속에서 도망하여 살아갈 있다. 사회는 사회대로 인재 잃는 손실을 감수하고, 그는 그대로 사회에서 누릴 있는 최소한의 기쁨도 포기하게 된다.

문제는 아직 자신의 가치규범을 분명히 자각하지 못한 어린 아이에게 이런 억압이 가해졌을 때이다. 나는 어렸을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먹거나 급식을 남기기라도 하면 , 그래서는 사회생활을 없다느니, 군대에서는 그런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잊거나 모르고 어겼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들은 한편으로는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데에 최소한의 선을 만들어주기도 하였지만, 도리어 나를 끊임없이 비난하고 압박하는 목소리가 되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사람을 대할 , 과도한 예절을 베풀거나 혹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를 갈등하며 살을 깎아먹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과거에 부모님이나 할머니에게서 특정 프로토콜을 습득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옳은지 혹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옳은지 몰라서 힘들다. 그러면 사람을 마음 마음으로, 다시 말해 진심으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성장과정에 영향을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이나 책임은 없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잘못은 없지만, 잘못된 상황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문제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돈보다는 경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마음 먹는 것은 인문주의자의 훌륭한 동기부여일 있으나, 그것이 기득권자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세속주의자의 위선으로 변질된다. 신을 경배하는 성전을 짓기 위해 기꺼이 부를 기부하는 것은 종교인의 경건한 마음가짐일 있으나, 그것이 에쿠스를 모는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것은 세속주의자의 훌륭한 위선으로 변질된다. 타인의 가치규범마저도 착취하여 위선으로 변질시키는 세상이다.

첨언하자면, 이것이 일반화를 향한 야만적인 의지라는 정신적 제국주의의 결과임은 자명하다. 이것은 현대 대한민국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는 근대의 폐습이다. 모든 인간적 관계를 경제적으로, 권력관계로 환원하며, 과학으로 밝혀지지 않은 모든 것을 무가치하다고 치부한다. 무엇이든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 받는다. 수치화된 자료가 없으면 어떤 주장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정신세계가 멸시 받고 무너지며, 오직 하나의 차갑고 딱딱한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천재는 없어지고 정신병자만 남았다. 사회에서 젊음은 죄이다.

 

§ 아집

그러니 내가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가치규범을 세우는 것이며, 그것이 명이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의 공감을 받을 있기를 바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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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의 생활에 대하여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일단 가장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작년 초-중반 즈음에 5만원 정도 주고 산 회중시계가 고장났다. 요즘 시대에 소위 '빈티지'한 것을 동경하는, 그러나 생활을 그렇게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사람들에게 이런 물건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무척 마음에 들어하면서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으나, 어느 때부터인지 손에서도 마음 속에서도 점점 멀어져 나중에는 그것이 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종종 심심한 날에는 강아지 산책시키듯이 갖고 나가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평소에는 대충 인사만 하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구라도 마주치면 시계 자랑이나 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물론 주머니에 넣어놓고 또 다시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이 시계의 외관은 영화에 나오는 로켓처럼 위쪽에는 쇠로 된 시계줄과 바로 아래에 톱니 모양으로 된 태엽이 있고, 거기서부터 반원을 그리면서 아래로 가면 그곳에 경첩이 있는 모양이다. 이에 더해 쇠로 된 껍질에는 장미꽃과 덩쿨을 미니멀라이즈해서 꾸며놓은 듯한 무늬로 투각되어 있다. 소위 예쁘장한 것들을 다루는 오프라인 매장에 있는 시계들이 하나같이 감수성이 메말라 있는, 예컨대 일반 커피 정도라면, 이것은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서 찾아낸, 예컨대 'T' 무슨 커피와 같달까. 그럼에도 이 물건은 2세기만 일찍 세상에 나왔으면 신사다운 좋은 주인을 만나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제 명을 다했을 텐데,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주인을 만나서 그만 아기자기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물건이 단지 겉치레만 화려한 속 빈 강정 같은 물건인 것은 아니다. 시계 껍데기 앞뒤를 열어서 무브먼트도 보고 손에도 쥐어보고 하면서 이모저모를 뜯어보면 그런대로 실한, 5만원짜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그런 물건이다.


참 예전 같았으면 그냥 시계가 망가졌나보다 하고 또 잊어버릴 만한 사건이지만, 도대체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가서는 시간도 공간도 감당하기 힘들어진 요즘에는 이것이 퍽이나 내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제는 고속버스를 타고 이천에서 서울로 오는데 난데없이 폭설이 쏟아져서 평소 같으면 1시간이면 족히 오는 거리를 두 시간 반이나 걸려서 왔다. 몸이 이상하게 각성되어 있어서 그 시간을 잠도 못 자고 오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나 자신에게 나름의 보상을 주노라고 터미널에 있는 서점을 배회했다. 워낙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뻔해서인지 위층에 마련된 인문학 코너는 쭉정이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래에 내려가서 시간 때우기 좋은 소설책이나 한 권 낚으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테스를 읽을까 하다가 지금의 몸과 마음으로는 이 내용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긴가민가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대충 서너 페이지만 읽어봤는데, 좀 만성적으로 염세적이고 우울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씁쓸한 유쾌함이 마음에 들어서 얼른 계산대로 향했다. 그래놓고 이 책도 지금은 방 바닥을 뒹구는 종이뭉치가 되어 있지만, 오며가며 몇 페이지씩 읽고 있노라면, 때로 바보같은 일을 벌이는 나 자신을 두고 헛웃음을 지을 때처럼 기분이 묘하게 괜찮아지는 효과가 있다.


운동을 또 안 해서 허리가 좀 쿡쿡 쑤시면서 아픈데, 허리를 쉬이면서 침대에 누워서는 '좀 언해피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에 가서 어울리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소한 지적일지는 모르나, 불행한 것과 언해피한 것은 다르다. 나는 불행한 사람들 사이에선 별로 살고 싶지 않다. 보들레르의 보들보들한 글을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언해피한 사람들은 무기력한 가운데서도 기상천외하고 괴이한, 그러나 심히 유쾌하고 재밌는 일들을 벌이면서 골치거리를 만들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다. 사회규범은 때로 너무 엄숙주의적이어서 재미가 없다. 남의 사정에는 전혀 관심도 애정도 없으면서 다짜고짜 판단부터 하고 훈수부터 두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최근 나의 생활은 마치 해면 같다. 그래도 해면은 물에서 건져서 가공하면 그릇 닦는 데에는 쓸 수 있다지만 나는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죽고난 다음에 사람들이 내 말과 글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관에 갇혀서 지하에서 웃을지 아니면 귀신이 돼서 공중에서 껄껄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봐도 나름 괜찮은 사유를 하면서 사는 것 같이 보이긴 해도 이걸 어떻게 글로 써낼 것이며, 또 논리와 증명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아카데미즘 속에서 이걸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는 정말 막막하다. 이런 고민은 솔직히 좀 쓸데 없는 것 같지만, 불행히도 오늘 '인문학자양성세미나'라는, 한 학기 동안 20-25쪽 분량의 논문을 써내는 수업의 수강신청에 성공함으로써 일말의 쓸모가 생겼다.


지난 학기를 끝마치면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는데, 시적인 산문을 쓰고 싶다는 나의 오래된 소망을 묻어둘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도대체 대학에서 요구하는 보고서나 독후감 따위의 글들조차 숨 쉴 틈도 없이 꽉꽉 막혀서 이렇게 답답하면 나중에는 어떻게 글로 벌어먹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내 욕망을 억누르기만 하면 사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내가 내 글에 대해서는 일말의 자부심을 갖고 블로그에도 올리고는 있지만, 그것도 며칠만 지나서 다시 보면 도대체 이게 내 글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느낌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라는 책을 발견한 뒤로 거진 서너 달 동안을 갈등한 뒤에 내린 결론이다. 특히 그 책의 1장 '시와 시편'은 읽고 있노라면 황홀해질 정도로 문장이 시적이고 아름다운데, 지금 내가 이런 문장을 써냈다가는 그 어느 누구의 칭찬은커녕 온갖 훈수와 비난만 받으리라는 생각에 아찔해졌었다. 그러나 고민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그렇지, 대부분의 실존적인 고민이 그렇듯 결론은 '본래의 나 자신이 되어라'였다.


그러면서 내 나름대로 진행하고 있던 생각정리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당초의 주제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글의 스타일을 '혁신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괜히 쩔쩔 매면서 있지도 않은 청자를 설득하려고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궤변이나 늘어놓느니, 차라리 '나를 이해할 테면 이해해 보시지'라는 고고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인 것 같다. 어릴 적의 내가,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를 동경했던 이유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정말 단순한 것이었다. 산문으로 쓴 다른 글들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그것에 실패할 경우에는 따끔한 질타를 감내해야 하지만, 시는 (모두까기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한다. 내가 워낙에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해서인지 (혹은 둘 다인지), 나는 시가 좋았다. 물론 윤동주나 한용운의 시가 가진 아름다움과 간결함, 조지훈의 시에서 엿보이는 고즈넉한 초가을의 달빛 같은 분위기가 좋은 것도 있지만, 이건 누구나 시에 대해 느낄 법한 것이기에 제외하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시에 대해서는 나는 속물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 한정해서 볼 때, 돌이켜보면 계절학기를 들은 것이 나름 악수였던 것 같다. 종교개혁사라는 이름을 걸어놓고 서양 중세-근대 초기의 정치사와 정신사를 아울러서 3주 동안 폭풍같이 고찰했던 수업이었는데, 배운 것도 굉장히 많고 사유의 폭도 전보다 많이 넓고 깊어졌지만, 힘을 다 뺐다. 이 상태로 할아버지 상 때문에 일주일간 부모님 일을 대타로 처리하고, 또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가야 하니 참 기운이 나려다가도 싹 없어진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로 집에서 나와 산지 벌써 6년을 채웠는데, 집에만 가면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집'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이런 걸 말할 수도 없고. 부모 마음이 자식은 매일 봐도 또 보고 싶은 것 아니겠나 싶어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다른 것 다 제치고 집에 가는 게 나는 제일 부담스럽다.


집 하니까 떠오른 건데, 나는 누가 나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주저함 없이 '이방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면 '떠돌이'나. 한 단어를 더 허여해 준다면 겉멋 좀 부려서 '당신들의 이방인'이라고 해야지. 어디에도 편하게 속하지를 못하고 꼭 혼자 다니거나 나랑 비슷한 몇 명이랑만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게, 일부는 천성인가 싶어도 또 '집' 없이 산 세월이 너무 중요하고(나의 성장기와 일치했으니), 막대해서 어쩔 수 없구나 싶다. 따져보면 대부분이 그렇다. 중학교 때도 또래와 어울리지 않았고, 고등학교에서는 나랑 비슷한 애들이 많아서 낫다 싶지만 여전히 주류 집단에는 속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와서는 과 생활이라는 것은 완전히 남 얘기이며, 동아리에 들어가서도 1년을 못 버티고 나와서 산다. 남들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다. 사람들 틈에 껴서 마음 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까뮈의 '이방인'은 읽어보지 않았다. 모든 책과 사상을 다이제스트로 가르치는 한국 교육에서 자라난 탓에 내용은 대충 알고 있지만, 왠지 읽어볼 엄두가 안 난다. 한편으로는 이방인이라는 공통의 정체성 뒤에 숨겨진 막대한 차이 때문에, 까뮈에게 압도되어 나 자신을 잃을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작품에 너무 몰입해서 어느 날 구금 이하의 형을 받을만한 짓을 벌일까 두렵기도 하다. 물론 주된 이유는 귀찮음이지만.


어쨌든 도대체가 요즘은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못하겠다. 또 게임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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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계절

태양을 견디기가 힘들다. 요즈음의 태양은 쇠퇴한 왕국의 왕좌처럼 덩그러니 하릴 없이 떠 있다. 빛은 쇠약해서 그것이 비추는 모든 것들이 다만 허여멀건 어중간한 색채를 걸치고 있어서, 그 어떤 대단한 것도 이 태양빛 아래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강렬한 것들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허여멀건 일상뿐. 생활도 삶도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은 일상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를 품고 있기에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것일까? 비스듬이 기운 황혼녘의 빛. '이 땅의 빛은 예술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더니, 황혼빛이 비출 때 모든 의미를 탈각하고 심연 속으로 전락하는 세계에서 비로소 사유가 시작한다는 것인가, 라고 쓰고 지운다. 의욕이 없다. 어쩌면 2월이란 모든 강렬한 것들이 지나가고 남겨진 계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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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겨울, 종교개혁사

 

종교개혁 이후의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