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산문

시는 직관적인 글이며, 산문은 지성적인 글이다. 시에서 줄 바꿈, 각운, 음보와 같은 특성은 단지 이미지의 직관성을 살리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은 테크닉이다. 테크닉은 시대와 사조에 따라 바뀐다. 테크닉에는 유행이 있다. 그러나 시의 본질은 직관성에 있다. 산문에서는 문장이 문장에 종속된다. 문장이 문장을 설명한다. 물질을 다루듯이 이미지를 자르고 나누고 붙인다. 뒤에 나오는 문장이 앞에 나오는 문장에 종속된다. 산문에서 시간은 계속 지연된다. 가장 바람직한 산문은 완전히 논리적인 글이며, 가장 논리적인 글에는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산문은 탈시간성, 즉 완전한 타성inertion을 지향한다. 시는 우주적 지속 안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흐르는 이미지를 하나의 근원적 은유 속으로 응축하고 펼쳐낸다. 그것은 섬광과 같이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다. 서로 다른 힘과 방향으로 흐르는 흐름들을 모으고 펴낸다. 앞의 시구와 뒤의 시구는 서로에 의해 해명되지 않는다. 시는 우주적 지속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낸다. 시의 탄생은 세계의 탄생이다. 시는 도처에 있다. 줄 바꿈과 각운, 복잡한 상징을 모아놓은 글은 시가 아닐 수 있다; 해 지는 가을 하늘은 시가 될 수 있다. 시의 외관을 흉내 낸 무시간적인 글은 시가 아니다; 길게 늘여 쓴 글이라도 그 안에 시간이 존재한다면, 이질적인 흐름이 존재한다면, 그 글이 자신만의 지속을 점유한다면 그것은 시이다. 시가 음악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늙은 궁정 음악가의 말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에서 단 하나의 음이라도 더하거나 빼기라도 하면 그 완전함이 무너져 버리고 말 것이다. 세계의 균열을 그려내는 시에서조차 우리는 우리 마음껏 자르고 더하고 빼고 붙여도 되는 틈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산문에서 문장은 병치된다; 시에서 문장은 흐른다. 산문에서 언어는 배치된다; 시에서 언어는 펼쳐진다. 늙은 별이 우주 한 가운데에 거대한 불꽃놀이를 펼쳐내듯이.


P.S. 물론 시도 산문도 못 되는 글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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