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 가치에 대하여

 


§ 사유와 가치

사유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잃은 사람에게 길을 밝혀주고, 괴로워하는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데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이라면, 그리하여 다음 순간을, 다음 새벽을 꿈꿀 있게 해주는 것이라면, 다시 새로운 삶을 불탈 있게 하는 것이라면, 인간 사유에 대한 우리의 논의는 윤리에서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윤리는 가치에 대한 탐구이다. 가치는 우리가 삶의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추구하고 추구하는 것이다.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를 가지지 못하였을 때에 우리는 가치를 가졌는가 가지지 못했는가를 문제 삼는다. 다음엔 얼마나 가질 것인가가 문제 된다. 마지막 순간에 우리는 쥐었던 주먹을 풀고 손바닥에 깊이 패인 손톱 자국을 바라보며 모든 가치들을 바람에 놓아준다. 모든 가치와 가치에 대한 욕심을 놓아버린 사람을 깨달은 한다면, 우리 삶의 여정은 경지를 위한 것이라 있는지도 모르겠다. 열심히 사다리를 짜고, 사다리를 대고 위에 이르러서는 사다리를 던져 버리는 , 여기에 윤리의 역설이 들어 있다.

모든 사람이 서로 다른 가치를 추구하며 사는 까닭은 아마 그들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출발점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갖고 싶다는 의욕과 욕심일 것이다. 순간도 끊어짐이 없이 우리 머리 속에는 생각이 흐르고, 감정이 흐르고, 그것들에 대한 생각과 감정이 흐른다. 의욕 한다는 것은 내가 바라는 하나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것이다. 생각, 생각에 대한 생각, 생각에 대한 생각에 대한 생각생각이 거듭될수록 원점에서는 멀어지고, 혹여 내가 하고 있다는 생각에, 혹은 하는 것이 생각에 미친다는 생각에 자만심이 생기고, 우월감이 생기고, 열등감이 생기고, 자괴감이 생겨난다. 그러면 우리는 본래 자기가 의욕 하였던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앞뒤가 막힌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다시금 출발점을 상기하려 한다. 우리 삶의 여정은 각자의 출발점에 대한 상실과 회복의 역사이다. 깨달은 자는 오직 출발점을 지키며, 생각을 붙잡는 생각들을 놓아주고 흘려 보낸다. 흔들림 없이 출발점을 고수하는 , 다시 말해 사유하지 않는 , 다시 말해 사유의 죽음을 경험하는 , 그것이 우리의 종착점이다.

그러나 깨달음의 상태가 글의 주제는 아니다. 글은 경지에 이르기 위한, 자각하고 있건 자각하지 못하건 시종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사유들의 줄기를 모색한다. 사유의 역사를 통해 우리는 줄기를 갈래로 잡아서 각각 초월주의, 인문주의, 세속주의라는 이름을 붙여줄 것이다. 각각은 가치의 속성을 초월적, 내재적, 세계-내적으로 파악한다.

 

§ 가지 가치

어떤 사람들은 초월을 희구한다. 초월이란 본래 나에게서, 현재에서, 내가 처한 환경에서 벗어나는 것을 추구한다. 초월주의는 초월적 가치를 추구한다. 초월하는 것은 신성을 체험하는 것이다. 신성함이란 기본적으로 내가 아닌 , 나의 바깥에 있는 무엇이 되는 데에서 생겨난다. 내가 아닌 , 지금 시간이 아닌 , 여기 공간이 아닌 것이 되기’—초월주의는 낯선 타자와의 합일을 희구한다. 내가 아닌 것이 된다는 것은 내가 아닌 무엇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타자의 얼굴이 생겨난다. 자체로 신성한 무엇, 내가 되어야 , 혹은 가까워져야 무엇인 타자그것은 죽은 자의 영혼일 수도, 자연현상의 원리일 수도, 혹은 운명을 주재하는 절대주권일 수도 있다. 종교란 타자와 나의 관계를 새로이 하는 활동이다. 종교의식은 번에 끝나지 않는다. 나와 타자는 본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가만 놔두면 끊임없이 벌어지는 사이를 새롭게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유교의 제사와 기독교의 예배, 불가의 독경이나 힌두의 의식은 모두 하나의 뿌리를 공유한다.

이런 종교적 감성이 널리 퍼져있던 문화에서 세속의 권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신성한 공간들이 있었다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편 축제는 지금-여기를 벗어난 다른 시간을 체험하게 한다. 특히 힌두교의 홀리축제는 신화의 시간이 지상의 시간과 일치하는 때에 행해지는 것이라는 점에서 특기할 만하다. 유목민족의 수렵제나 농경민족의 추수제는 어떠한가 수렵이라는, 농경이라는 행위는 인간이 주체가 되는 행위라 생각할 수도 있으나, 생태계의 순환은 인간의 너머에 있는 시간의 운행이 아닌가? 이런 신성한 공간과 시간에서 사람들은 특별한 옷을 입고, 특별한 행위를 하고, 특별한 언어를 쓰고, 특별한 음식을 먹으며 일상의 자신과는 다른 자신이 되어 타자와 가까워지려 한다. ‘엑스터시ecstacy’ 나에서 탈출하는 순간의 황홀함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의 나라가 이런 초월주의가 가장 만연하였던 국가였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지내고, 최고신인 상제에게 나라의 중대사를 물었다. 후대인 나라가 상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비난할 썼던 주지육림이란 말은 사실 제사 음식을 가리킨다. 종교의식에서 타자를 대접하는 것은 사람들이 구할 있는 최고의 음식이었다. 인신공양 풍습은 보통의 생각과는 달리, 특히 타자의 입장에서 , 사람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겼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제사를 마치면 타자를 대접하고 물려받은 음식은 고스란히 사람들의 몫이 된다. 하나의 음식을 공유함으로써 사람들은 타자와 가까워지려 하였다. 카톨릭 교회의 성만찬 의식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틈에 세속주의가 들어서면 타자에 대한 관심은 사그라지고 오히려 재물과 음식에 대한 욕망이 싹튼다. 추측건대 나라 말기에는 세속주의적 관심으로 인해 본말이 전도되어 왕들이 무리한 제사를 지내며 사치와 낭비를 일삼았을 것이다.

다음에 들어선 왕조는 인문주의적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제사를 중시하고 최고신인 천을 모셨다는 점에서 주는 과도기에 있다. 서주 시대가 끝나고 관학의 위치에 있던 학문이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성립한 것이 제자백가이며, 가운데에서도 특히 주공의 사상과 가장 가까웠던 철학이 유가 철학이다. 공자는 인문주의적 전통을 새로이 세우고자 하였다. 대표적으로 그는 이전 시대에 왕만이 받을 있었던 천명이라는 개념을 개인적인 지평으로 확장시켰다. 초월주의의 핵심이 타자와의 합일에 있다면, 인문주의의 핵심은 내면의 발견에 있다. 공자의 천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안에 자리잡은 어떤 목소리라고 있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다이몬과 같이 목소리는 나이면서 동시에 내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초월주의적 타자가 아닌 까닭은 목소리가 나의 바깥에 있어서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해당될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안에서 나만을 인도해주는 길잡이인 때문이다. 그것은 양심이라 부를 수도, 촉이라 부를 수도, 기분이라 부를 수도 있다.

귀신을 어찌해야 합니까, 제자가 물었다공경하되 멀리하라, 공자가 답했다. 여전히 공자는 초월주의의 배경에서 자라났지만, 그의 사상은 초월주의가 빠질 있는 폐해를 경고하고 있다. 타락한 초월주의는 이스라엘 민족의 율법주의로 수도, 혹은 세속주의와 결합하여 상말의 주지육림으로 수도 있다. 인문주의적 견지에서도 제사는 여전히 유용한 것이었다. <논어>에서는 백성이 화합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제사를 옹호한다. 그러나 공자가 화려한 예식보다는 검소한 마음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인문적 사상을 엿볼 있다.

인문주의가 기울 등장하는 것은 자폐적 사상과 유미주의이다. 위진 시대 죽림칠현의 사상인 현학 그러하고,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철학이 그러하며, 근대의 순수문학이 그러하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영향력을 잃은 인문학이 도피하는 곳이다. 조선후기의 예학 역시 이와 같다. 사회 변혁과 제도 개선에 관심을 잃은 채로 예법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검토하는 것은 인문주의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준다.

타자와의 합일을 희구하는 것으로서의 종교는 세계 어디서든지 있었지만, ‘으뜸의 가르침으로서의 종교는 오직 초월주의와 인문주의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발생하였다. 예수는 이스라엘 율법주의의 환경에서 태어나 야훼와 인간 사이에 있던 계약을 파기하고 새로운 계약을 맺었다. 내용은 오직 사랑일 뿐이었다. 석가는 브라흐마교의 고행을 중시하는 환경에서 태어나 인간의 고통을 발견하였다. 모든 것이 공하다는 , 집착을 버리라는 것은 일견 초월주의적 분위기를 내지만, 반대로 보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흘러가게 두어 내면의 고통을 해방하는 깨달은 자의 면모를 드러낸다. 그러나 모두 안에 있는 무엇, 그것이 죄의식이 되었든 고통이 되었든, 그것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의욕을 보존하고 있다. 초월을 향한 가능성은 여전히 내재적인 것이다.

세속주의의 가치는 세계-내적이다. 그것은 나를 넘어선 것도 아니고, 안에 이미 갖춰진 것도 아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계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오직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 것들이다. , 명예, 인맥과 같은 사회권력이 모두 세속적 가치이다. 초월주의적 인간이 선행을 실천하는 사람이고 인문주의적 인간이 내면의 가치를, 만물의 제일성을 깨달은 사람(장자)이라면, 세속주의적 인간은 노력을 통해 성취하는 사람이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의 과거제도는 세속주의와 인문주의가 결합한 산물이다. 전국시대에 활동했던 맹자는 세속의 시대에 덩그러니 남겨진 인문주의자였다. 그가 국가의 이익을 도모하던 양혜왕에게 일갈하며 말했던 어찌하여 이익을 말씀하십니까(하필왈리)’ 때엔 이미 유효성을 상실한지 오래된 사상에서 떨어진 혜성의 꼬리와 같은 것이었다. 서유럽 중세 말의 제국에게 카톨릭이 가졌던 의미는 다만 국가통치를 효율적으로 하기 위한 조직 정도에 지나지 않았듯이 말이다.

인문주의가 타락하면 자폐적이 되거나 유미주의를 내세우기 쉬운데, 세속주의는 사회에 대한 시각을 틔워줄 있다. 기술과 경제에 대한 관심은 생활을 윤택하게 해주고, 법과 정치에 대한 관심은 나은 제도를 만들게 해줄 있다. 그러나 세속주의가 자신의 길을 맹신할 , 최악으로는 가치들을 숭배하게 우리는 역사에서 끊임없이 나타난 세기말 상황을 다시 재현하게 된다. 돈이 모든 가치 위에 서게 되고, 법이 기능을 잃고 오직 강자의 이익만을 보존하려 하며, 모든 인간적 관계가 경제적이거나 정치적 관계로 변질될 , 인간의 죽음이 자체로 존중 받지 못할 우리는 이미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죄가 합리화되며, 내면이 공허해진다. 로마 제국의 말기가 그러했으며, 중세의 끝이 그러했으며, 제국주의의 시대가 그러했으며,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세계가 그러하다.

과학이 시대를 지배한다. 세속주의의 타락은 과학이 자신의 영역의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 시작되는 것일 있다. 초월주의 시대는 이상이, 인문주의 시대는 느낌이 존중 받는 시대다. 그러나 세속의 가치는 사실fact 있다. 지금 우리는 종교에 과학적 잣대를 들이대고, 내면의 표현에서 사실과 논리를 찾는 시대에 살고 있다. 사실로 환원할 없는 모든 표현이 무시 받으며, 돈으로 환산할 없는 모든 문화가 사장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가, 법치가, 과학기술이 기울어진 시대를 바로잡을 있다는 믿음은 너무 순진하다. 세속의 세례를 받은 입으로 인문학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베스트셀러가 삶을 풍요롭게 해줄 있다는 믿음은 잘못되었다. 인간이 초월적 가치도, 내면적 가치도 없이, 실체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사회의 여론과 대중의 목소리에 끌려 다니는 , 이것이 몰락의 징후이다.

 

§ 초월적 인문주의

역사적으로 최고의 가르침으로서의 종교가 문화권에서 성립하고 전파되면서, 초월주의와 인문주의 사이의 간격은 질적인 차이라기보다는 정도의 차이로 되는 경향을 보인다. 최초의 문명이 성립하고 발달하면서,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가져온 종교적 심성은 여전히 의례로서 남아서 행해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점점 형식주의적인 경향으로 흘렀고, 종교적 문명이 군사력을 앞세운 세속적 문명에 의해 무너지면서 형식과 의례에 대한 쇄신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때에 등장하는 것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계종교이다. 시대적 필요 이전에도 인간의 감정과 욕망에 대한 자각은 분명 사람들 사이에서, 특히 그들이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 속에서 은은하게 지각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문주의라는 사상적 형식으로 정립되었다고 생각되기는 어렵다. 오히려 그것은 초월주의의 몰락을 통해 새로운 가치의 규범으로서 부상했다. 기독교가 유대 율법주의 시대에 등장해 인간 내면의 죄성에 주목했듯이, 불교가 브라흐마교의 변두리에서 인간 삶의 고통에 주목했듯이, 유교가 춘추시대 말기에 인간다움, 의로움 등의 내면적 가치의 회복을 주장했듯이 말이다. 초월적 인문주의의 탄생이다.

초월적 인문주의는 내면적 가치의 발견과 실현을 초월적인 지점에서 근거 지웠다는 데에 특징이 있다. 기독교는 신앙을, 불교는 성불을, 유교는 천명을 근거로 삼았다. 이런 사상들은 그것이 발흥한 지역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전파되고 연구되면서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했는데, 과장해서 말하면 우리가 말하는 철학사 모두 초월적 인문주의의 계보학이라고 말할 있을 만할 정도이다. 시대 이후에 등장한 모든 초월주의는 그것이 아무리 극단적이라 하더라도 인간 내면에 대한 관심을 결여하지 않으며, 극단적 내재주의 역시 초월적인 힘에 근거하지 않는 것이 없다. 물론 여기서 그리스 철학은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그리스 고전시대의 아테나이는 지중해 상업의 중심지로서 오히려 세속주의적인 경향이 강했다. 당대에 성행했던 소피스트들이 본래 법률가들이었다는 점에서 이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 때문에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은 각각 초월주의적이고 내재주의적인 경향을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공동체의 정치와 경제, 법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는다. 이런 사상적 경향은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 에피쿠로스 학파나 스토아 학파 소극적인초월적 인문주의를 낳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퀴레네 학파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허무주의를 낳았다. 다음 세대에, 과거 헬레니즘의 영향권과, 로마에 편입되려는 게르만 족의 지역을 통틀어서 새로운 가치 규범을 제공하기 시작한 것이 기독교였다. 이후 서양의 중세의 사상사는 기독교를 배제하고 설명할 없게 된다.

이런 탄생과 발전 과정을 거친 초월적 인문주의의 계보는, 현재의 시점에서 보았을 크게 가지로 분류해볼 있다. 사실 작업은 철학사 전체에 대한 세심한 관찰의 결론으로 내놓아야 적절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기엔 나의 역량이 아직 부족하고, 반대로 글이 그런 검토를 위한 선이해를 어느 정도 제공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지금은 비교적 간략하게 제시해보고자 한다. 첫째는 윤리규범의 근거가 현재와 대응하는 종교이다. 여기서의 종교는 초월자에 대한 숭배와 최고의 가르침이라는 측면 모두를 아우르는 것이다. 이는 서유럽 지역에서 성행하였다. 둘째는 근거를 과거에, 정확히 말하면 지나간 시간의 모든 현재인 역사에 두는 역사주의이다. 이는 한대 동중서의 유학 이후로, 공자가 모든 사람(혹은 지식인)에게 허여하였던 천명이 다시 천자의 배타적인 몫이 이후의 중국에서 성행하였다. 사마천의 <사기>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서양인이 신을 두려워할 중국인은 역사를 두려워했다. 마지막 경향은 윤리규범의 근거를 죽음 두는, 정확히 말해 죽음에 대한 인간 내면의 본연적 태도에 두는 실존주의이다. 이런 경향은 사실 동서양 철학사를 통틀어 쉽게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가지 확실히 있는 것은, 씨앗이 칸트에게서 엿보이며 그것이 키에르케고르, 하이데거를 거쳐서 사르트르에 이르렀다는 점이다.

 

§ 지금과 여기

신에 대한 경외도, 역사에 대한 두려움도 없는 현대인들에게 그나마 가장 가까운 것은 실존주의라 있다. 그나마도 죽음을 경시하고 외면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탓에 그것이 어떤 가치규범을 제공할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그러나 글에서 내가 의욕하는 것은 세계가 다시금 초월적 인문주의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혹은 세속주의가 만연하면서 인간의 삶이 황폐화된 것을 보고 세속주의 자체를 공격하기 위함도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가지 가치의 장단점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가지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가치규범이기를 내세우는 상황을 경계하고 있다.

시대는 세속주의가 득세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 아니라, 세속주의만이 유일한 가치규범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각자 서로 다른 심성과 감수성을 갖고 살아가기 때문에, 마치 몸에 맞는 옷을 입어야 편한 것처럼 자신만의 고유한 윤리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세속에서의 성공을 희구하는 사람에게 실존주의를 강요한다면 그는 일단 그것에 공감하지 못할 것일뿐더러, 나아가 죽음의 절대적인 허무함 앞에서 모든 의욕을 잃고 방탕함을 일삼을 수도 있다. 반대로 내면의 쇄신에 지대한 관심을 쏟는 사람에게 부와 명예와 인맥이 주는 달콤함을 이야기해봤자 그는 그것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나아가 세속에서 도망하여 살아갈 있다. 사회는 사회대로 인재 잃는 손실을 감수하고, 그는 그대로 사회에서 누릴 있는 최소한의 기쁨도 포기하게 된다.

문제는 아직 자신의 가치규범을 분명히 자각하지 못한 어린 아이에게 이런 억압이 가해졌을 때이다. 나는 어렸을 내가 좋아하는 반찬만 골라먹거나 급식을 남기기라도 하면 , 그래서는 사회생활을 없다느니, 군대에서는 그런 것은 용서받지 못한다느니 하는 말을 들었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를 잊거나 모르고 어겼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이런 가르침들은 한편으로는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살아가는 데에 최소한의 선을 만들어주기도 하였지만, 도리어 나를 끊임없이 비난하고 압박하는 목소리가 되어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결과적으로 나는 사람을 대할 , 과도한 예절을 베풀거나 혹은 특정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옳은지를 갈등하며 살을 깎아먹는 사람이 되었다. 특히 과거에 부모님이나 할머니에게서 특정 프로토콜을 습득하지 못한 상황에서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옳은지 혹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이 옳은지 몰라서 힘들다. 그러면 사람을 마음 마음으로, 다시 말해 진심으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물론 성장과정에 영향을 어느 누구에게도 잘못이나 책임은 없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잘못은 없지만, 잘못된 상황은 고스란히 나의 몫이 되었다.

사회적으로도 문제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서 돈보다는 경험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고 마음 먹는 것은 인문주의자의 훌륭한 동기부여일 있으나, 그것이 기득권자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세속주의자의 위선으로 변질된다. 신을 경배하는 성전을 짓기 위해 기꺼이 부를 기부하는 것은 종교인의 경건한 마음가짐일 있으나, 그것이 에쿠스를 모는 목사님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것은 세속주의자의 훌륭한 위선으로 변질된다. 타인의 가치규범마저도 착취하여 위선으로 변질시키는 세상이다.

첨언하자면, 이것이 일반화를 향한 야만적인 의지라는 정신적 제국주의의 결과임은 자명하다. 이것은 현대 대한민국에서 여과 없이 드러나고 있는 근대의 폐습이다. 모든 인간적 관계를 경제적으로, 권력관계로 환원하며, 과학으로 밝혀지지 않은 모든 것을 무가치하다고 치부한다. 무엇이든 알지 못하는 사람은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 받는다. 수치화된 자료가 없으면 어떤 주장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모든 정신세계가 멸시 받고 무너지며, 오직 하나의 차갑고 딱딱한 현실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천재는 없어지고 정신병자만 남았다. 사회에서 젊음은 죄이다.

 

§ 아집

그러니 내가 있는 것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가치규범을 세우는 것이며, 그것이 명이라도 좋으니 다른 사람의 공감을 받을 있기를 바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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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의미: 하나의 시론

 


상상인가? 기존의 역사철학에서 내가 가장 아쉬워했던 점은, 그것이 말하자면 역사를 이루는 사건과 사람, 그리고 그들의 질서를 가까이서관찰함으로써 얻어진 통찰이나 이론이 아니라는 점에 있었다. 널리 통용되는 분류법에 따르자면 역사철학은 크게 갈래로 나누어지는데, 역사 자체에 대한 사변적 이론이 첫째이고, 역사를 바라보는 학문적wissenschaftlich이고 분석적인 시각이 둘째이고, 역사를 서술하는 방법에 관한 이론이 셋째이다.


번째 갈래는 주로 종교나 사변철학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본 것으로, 시간이 과연 직선과 같은 것인가 아니면 원형인가와 같은 문제에서 시작해서 창조론, 종말론, 역사발전론과 같은 문제를 다룬다. 이는 역사라는 말을 하나의 거대한 담론으로 만들어서 통째로 요리해볼 속셈인 같다. 역사의 진보를 말하는 , 예컨대 역사란 자유의 발전과정이라는 헤겔 식의 통찰이나 혹은 생산수단을 둘러싼 계급갈등의 역사라는 마르크스 식의 통찰, 혹은 삶과 죽음이라는 시간의 끝을 맞대어 이어놓은 인도식 시간관, 이런 것들이 과연 땅에서 벌어진 사람들의 사는 양태를 바라보는 데에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나는 없다. 작게는 우리네 일상과 문화에서 시작해서 크게는 정치, 경제, 철학, 예술, 종교 등까지, 이러한 생생한 현상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형상을 증류distill 이론이라면 몰라도 필연성에 맞는, 합리성에 맞는 부분을 추출extract 이론들만을 다룰 의사가 나에겐 없다. 오히려 나는 인간의 삶의 모습은 상당히 비합리적이고 우발적이기 때문에, 이론은 모든 것을 포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사철학의 번째 갈래는 분석적 역사철학이라고 불린다. 이는 번째 갈래의 사유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우리가 역사를 마주했을 직접 얻는 자료들, 예컨대 오래된 외교 문서나 유명한 인물의 일기, 당대의 역사기록, 유적, 유해 등을 엮어서 어떻게 역사의 을 만들 것인가에 관심이 있다. 앞서 말한 이론이 순전히 사변speculation을 통해 얻어진 것이라면, 이 갈래의 이론은 건조한 사실들dry facts을 통해 역사를 얻는 것이다. 19세기 프로이센의 레오폴트 폰 랑케Leopold von Ranke가 이러한 흐름의 선두로 알려져 있다. 그의 역사관은 사실 문학, 예술, 상징까지 포함하는 것이었으나 후대에는 그 중 실증주의적positivist인 부분만 전해져서 그가 과거의 객관적 사실을 강조하는 것처럼 잘못 전해지고 있다. 물론 실제로 그의 후기 역사서들은 처녀작에서 보였던 문학적인 과감함을 상실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이런 이론에 대한 나의 입장은 카Carr가 지적했던 바와 유사하다. 예컨대 랑케는 건조한 사실들을 그대로 서술하기만 한다면, 역사 속의 인물이 책 속에서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그것이 보편적인 방법론으로 여겨질 수 있는가 나는 의심한다. 예컨대 개인적인 자료가 많이 남아 있는 이승만이나 여운형과 같은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많은 것을 알고, 또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에 대해서는 서술자의 개인적인 평가나 추측을 빼놓더라도, 남아있는 자료만 가지고도 그들의 성격이나 사상 등 인간적인 거의 모든 면을 구성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 경우는 어떠한가? 혹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이렇게 떠올려 볼 수 있을 것인가? 역사가는 단지 그것이 정확히 어떠했는지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zeigen wie es eigentlich gewesen는 말은 지금에 와서는 건조한 사실들의 집합만으로 생생한 역사를 구성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고, 나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역사는, 나아가 우리의 정신을 이루는 세계는 하나의 직조물texture에 비유될 수 있는 것이지, 군집mass이나 계열sequence로 환원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갈래의 역사철학은 역사기록학historiography이라고도 말한다. 건조한 사실들을 모아 놓는다고 해도 그것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기를 바라기는 힘들다는 생각에서 사람들은 그 자료들을 서술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인물들의 대화를 직접 인용할 것인가 간접 인용할 것인가, 혹은 자료를 토대로 대화를 구성해낼 것인가에서 시작해서 하나의 거대한 사건을 어떤 인과로써 풀어낼 것인가까지 고려의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되다 보니 후대에는 단지 사료를 써내는 기술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의 인과, 법칙, 역사관까지 다루는 폭넓은 분야가 되었다. 헤이든 화이트의 『메타히스토리Metahistory』는 19세기 역사학이 어떠한 문학적 장치를 통해 역사를 기술했는가를 탐구한 책이고 이한구의 『역사학의 철학』은 반실재주의antirealism 역사학을 비판하며 역사 법칙의 실재성까지 시험해보는 책이지만 그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히스토리오그래피라는 범주에 포함된다.


역사기록학은 말하자면 하나의 기술technique이다. 역사 속 사건과 사람을 분석하고 꿰뚫어보는 관점에 대한 성찰 없이 사료를 배열하는 기술을 탐구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역사기록학은 시간이 지나서는 역사관에 대한 관심까지 보이고 있다. 앞서 언급한 두 영역에서 다루어지던 것이 역사관이라는 형태로 구체화되어서 히스토리오그래피에서 다뤄지는 것이다. 예컨대 유일신에 의한 창조론, 구원론, 종말론 등이 하나로 엮여 기독교적 역사관으로 구성되었으며, 원시공산제에서 고대 노예제, 중세 봉건제, 근대 자본주의 등 생산양식의 변천을 중심으로 실제 역사의 시대를 나누는 방법론은 마르크스주의 역사관 혹은 사회경제적 역사관으로 정립되었다. 후자의 대표적인 예로 한국에서는 백남운을, 외국에서는 에릭 홉스봄과 같은 학자를 들 수 있겠다. 이 외에도 구조적 행위와 소통을 중심에 두는 구조주의 역사학, 민족을 역사의 주체 단위로 두는 민족주의 역사학, 정치 경제 등 거시적 구조가 아닌 사람들의 일상에 주목한 일상사나 미시사, 민족국가라는 프레임을 벗어나고자 하는 탈민족주의, 트랜스내셔널 사학, 문명을 주체 단위로 보는 문명사관 등 여러 갈래가 있다.


학문의 범위가 넓어지다 보니 비판점도 찾기가 힘들지만, 그러나 나의 질문은 단순하다. 이 모든 관점들이 역사라는 하나의 세계의 서로 다른 부분들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이 중 어느 하나라도 그 핵심에 다다랐는가 하는 것이다. 물론 나 개인은 이 모든 관점을 면밀하게 숙지하고 있지는 않다. 기껏해야 그 대강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의 질문은 유효하다고 본다. 역사를 이루는 사회 구조, 사건, 행위의 얼개, 인간 이해, 그 사이의 소통과 반목이 모든 것을 담아낼 그릇이 과연 있는가?


적어도 나는 이 지점에서 역사학과 철학이 만나야 하고, 또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랑케의 역사-신학Geschichitstheologie은 역사학에서 출발하여 이러한 종합적 이해를 지향했지만, 그 신학적 전제의 취약함 때문에 무너지고 말았다. , 모든 시대는 신에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으며, 각각의 시대는 고유한 신의 뜻을 전개해 가는 과정이며 그 고유한 질서를 주도이념die leitende Idee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이는 역사가 시간을 통해 진보해 나아간다는 관점을 비판하여 모든 시대가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는 당대로서는 혁명적인 주장이었으나, 신의 존재를, 정확히 말해 자신의 의지를 시간 속에서 실현하는 신의 존재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널리 받아들여지기 힘든 것이었다. 반면 헤겔의 역사철학은 사변철학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비록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것은 그의 초기 강의 노트 밖에 없지만, 정신의 자기전개, 즉 자유의 발전과정이라는 테마 아래 한 지역의 역사를 다음 계기moment의 전단계로만 파악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테제는 역사 속에 접혀들어가 있는 풍부한 의미를 온전히 담아내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나는 상상imagination이라는 주제를 내세운다. 상상은 세계이다. 사람들이 각자 그 속에서 살아가고 느끼고 소통하는 세계이다. 칸트 이후로 우리는 건조한 실재reality 그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받아들이고 있다. 모두는 모두의 방식대로 현상을 받아들인다. 누구나 자신만의 굴절막이 있다. 그러나 서양 근대식 고독한 주체의 철학은 그 막을 자폐적인 벽처럼 바꾸어버렸다. 그래서 칸트식 구성주의constitutionalism는 거짓을 참으로 여기는 반-실재주의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만의 상상에 갇혀 바깥과 소통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는 소박한 있음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것을 정교화하고자 한다. 돌멩이 하나 혹은 버스가 지나감 같은 단순사건은 누군가의 굴절막을 통과하지 않은 채로 있다는 점에서 소박하다. 그러나 그것들의 나열이 어떤 문학을, 어떤 세계를 만들지는 않는다. 칸트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는 바로 소박한 있음의 세계를 말한 것일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누구나 돌멩이가 그곳에 있다는 것, 버스가 방금 지나갔다는 것 등은 의심하지 않고 분명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은 말하자면 점이다. 그러나 세계는 직조물texture이다. 점을 모아놓는다고 그것이 그대로 평면이 되지 않듯이 소박한 있음들 각각을 우리는 인식할 수 있지만, 소박한 있음이 스스로 짜내는 직물은 알 수 없다. 과연 소박한 있음들이 누군가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세계를 직조할 수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그 상상이 개인의 의식 바깥으로 드러나는 것을 드러냄이라고 한다. 드러냄은 자발적 표현과 자극에 대한 반응이 있다. 한 사람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예컨대 기쁠 때, 슬플 때, 화가 났을 때, 우울할 때, 주장할 때, 명령할 때의 어조와 말투 등은 각각 모두 다르다. 그래서 이 둘을 다시 목소리라는 개념으로 묶을 수 있다. 시도 소설도 음악도 그림도 언어도 모두 한 사람의 여러 목소리로서 나타난다. 드러냄은 한 사람이 순간순간 받아들이는 느낌에서 비롯한다. 성긴 유체와 같은 느낌이 액체처럼 굳어지면 세계 속으로 흡수된다. 그것이 세계 바깥으로 향하면 고체처럼 굳어진다. 이 표현물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거꾸로 따라가 체험할 수 있다. 이것을 해석이라고 하고, 그 두 길을 이해와 공감이라고 한다. 이해는 지성을 통해 표현물을 녹여서 받아들이는 것이고, 공감은 직관을 통해 표현물을 승화시켜서 그대로 느끼는 것이다. 표출과 해석은 소통의 과정이다. 소통을 통해 각각의 목소리는 행위 주체가 될 수 있다. 작게는 일상적 대화에서 크게는 전쟁이나 혁명과 같은 사건도 모두 소통에서 비롯한다. 여기서 소통이란 단순한 언어의 교환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물리적인 행위도 그것이 표출되고 해석된다면 소통의 일부가 될 수 있다.


이렇게 의식 바깥으로 영향이 뻗어나가는 것을 사건이라고 부른다. 사건은 생겨나는것이다. 그것은 나타나는 순간 그 자리에 의미를 남기고 사라진다. 작게는 양파를 칼로 써는 것에서 크게는 사람들에게 연설하고 전쟁이나 혁명이 터지는 것까지 모두 사건이다. 하나의 사건은 다시 다른 사건을 불러일으킨다. 그 연쇄의 정도를 영향력이라고 한다. 예컨대 화장실에 들르는 사건은 영향력이 비교적 작지만, 타국의 왕자를 쏘아죽이는 것은 영향력이 큰 사건이다. 인간의 행위에서 비롯되는 사건을 한정하여 행위사건이라 한다면, 행위사건의 소통은 한 사건의 영향력을 키우는 힘일 것이다. 하나의 행위사건이 불러일으키는 소통의 연쇄를 계열이라고 부르자. 이 계열은 힘과 방향을 갖는다는 점에서 벡터와 같다. 힘이란 영향력이며, 방향은 정치적 방향일 수도 있고, 새로움과 낡음의 방향, 혹은 성장과 퇴보의 방향 등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방향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하나의 계열은 결코 제멋대로의 방향으로 마구 뻗어나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 계열에 속하는 과거, 혹은 동시대 다른 계열의 행위사건이 굳어져 조건을 형성하며, 새로이 연결되는 방향은 그 조건을 계승하거나 적대하거나 혹은 변증법적으로 종합하는 식으로 이어진다. 역사는 이러한 무수한 계열들의 마주침과 부딪힘, 흩어짐과 합쳐짐을 통해 직조되는 거대한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거대한 세계 속에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높이서 볼수록 땅 위의 것들은 작아 보이고, 사람들은 개미처럼 보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상상의 주인, 목소리의 주체는 언제나 피와 살을 가진 구체적인 개개인이다. 현대 철학에서 근대적 주체, 고체와 같이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주체는 부정되었다. 다수의 행위주체(니체), 무의식 위에 떠 있는 주체(프로이트), 물적 토대와 이데올로기에 의해 결정되는 주체(마르크스)가 등장했으며, 이전의 근대적인 생각하는 자아는 퇴위되었다. 나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단단한 주체 모델을 밑바탕으로 삼는 대신, 한 사람 안에서 다수의 목소리를 발견했고, 그 목소리를 진정한 행위--행위자로 상정했다. 그럼에도 내가 그 목소리들 아래에서 떠받치는 어떤 것substratum을 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고유한 사람 한명 한명의 대체 불가능성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소리 역시 시간을 통해 엮여가는 계열들이다. 그러나 한 사람을 그 계열의 다발로 환원하기에는, 우리가 너무나 생생하게 목격하는 미친 생성이 낄 자리가 없었다. 말을 더듬는 것 하나, 말 실수 하나, 주춤하는 동작 하나 그 하나하나는 어디에서 나온단 말인가? 그것을 타일 사이에 끼는 곰팡이처럼 무시해 버릴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람을 이루는 소중한 티끌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내 주장이다. 그래서 나는 미친 생성의 원천, 스스로가 직접 행위하지는 않지만 다른 목소리를 떠받치는 사람마다의 고유성, 대체 불가능성을 영혼이라 이름하기로 했다. 베르그송이라면 이를 관습과 습관으로 굳어진 표층 자아, 그 아래에 있는 자유의 원천인 심층자아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기본적으로 나의 생각은 스토아 학파, 스피노자, 마르크스, 베르그송, 알튀세르, 알랭 바디우, 그리고 한국의 이정우에게 영향을 받은 바가 크다. 예컨대 역사에서 필연성이 아닌 우발성과 마주침을 찾는 경향은 알튀세르의 영향이고, 그 기초를 사건에서 찾는 것은 스토아 학파와 이정우의 영향이며, 다시 사건의 뿌리를 실재나 이성이 아닌 상상, 감정, 의지에서 찾는 것은 스피노자의 영향이다. 상상에서 목소리로 이어지는 사유는 한국의 권혁웅 시인의 시론과 니체의 주체철학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목소리의 다수성은 인간을 하나의 규정으로 환원될 수 없는 것으로 본 바디우에게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이 모든 시도의 기초에는 상상은 능력이 아니라 주어진 것으로서의 세계 그 자체라는, 알튀세르의 말년 저작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의 단 한 구절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놓여있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철학사적으로는 고독한 주체의 철학과 필연성을 거부하고 우발성을 내세운 서양철학의 은밀한 흐름을 나의 방식대로 계승하는 것이고, 사학사적으로는 랑케를 현대적으로 계승하는 것이다.


혹 내가 스피노자의 영향을 받았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자유의지를 같이 얘기하는 것을 모순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스피노자의 형이상학과 필연성에서 벗어난 자유가 양립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층위stratum’에 대한 사유에서 뒷받침된다. 프로이트가 인격의 세 부분을 한 평면의 서로 다른 장소에 배치했듯이(그것을 위상학topology라고 부른다), 나는 세계를 위아래의 층위를 가진 것으로 파악한다(층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를 알았다면 용어를 멋지게 하나 만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스피노자에서 신--실체의 필연적 본성으로부터 형성되는 것은 세계의 가장 단순한 골격으로서 우리가 사는 일상 세계 아래에 있는 것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세계는 그 인과의 필연적 사슬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의 세계인 것이다. 이것은 마치 양자 단위의 세계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거시 세계에서는 무시 가능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과 같다. 실제로 과학자들은 미시 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을 사용하여 계산을 하지만, 거시 세계에서는 여전히 뉴턴의 역학을 활용하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의 경험 세계에서는 신의 본성에서 나온 필연성은 우리의 상상 바깥에 존재하고 또 우리 상상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발성을, 자유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상상을 기초로 한 이 역사철학은, 만약 다른 사람이 이미 시도하고 있었다면 나만의 또 다른 시도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새로운 역사철학의 시론이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형이상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그런데 시간을 두고 생각할수록 나의 감수성은 세계의 투명한 구조보다는 피와 살을 가진 사람과 그들이 만드는 구체적인 역사에 더 민감하다. 한편으로 나는 상상 속에서 존재론과 인식론으로 나눠진 형이상학이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왜냐하면 상상 속 존재는 인식된 존재이며, 상상을 통한 인식은 모래알 같은 존재를 하나의 유기적 세계로 구성하는 바탕이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역사철학은 많은 경우 역사를 어떻게 것인가에 관한 문제로 가득 차 있다. 진실로 역사를 이루는 사건과 사람이 어떻게 있는가, 또 어떻게 있었는가를 묻지 않고 그 영역을 괄호 속에 넣어둔 채 인식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한쪽으로 치우친 논의가 아닐까 한다. 철학에서도 존재론과 인식론은 형이상학의 두 날개이다. 나는 역사학이라는 붕새를 더 높이 날아오르게 하고 싶다.


20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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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철학의 출발점은 상황이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역사적 개별자들이 취하는 행동이 역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감정도 욕망도, 혹은 어떤 위대한 사상이라도 표현되지 않으면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개별자들의 행위를 통해 드러날 때 최고의 의미가치를 지니게 된다.


해석학. 해석학은 구체적 개인의 삶을 추후체험함으로써 그것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딜타이). 객관성은 논외로 치더라도, 역사철학은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개별자의 '내부'로 들어가서 그의 상황인식을 재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상황은 상황 그 자체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개인이 그것을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지해야 구체적인 행동의 동인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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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 보충하는 토막글입니다.


어떤 상황을 이루는 요소는 항상 다수이다. 즉, 그것은 한 번의 상황인식으로 모두 파악되지 않을 뿐더러, 또 다른 상황인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한 번 구조화되고 인식된 과거의 상황을 다시 한 번,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해석하는 것을 재해석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재해석을 통해 새로이 계열화된 사건-다발에서 실천되는 변화의 양상 또한 재해석된 사건이 포함되었던 이전의 계열에서 실천되었던 변화와는 어떤 차이를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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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학기 수강한 "서양철학사"의 주제는 '주체' 개념의 역사였다. 고대 그리스 자연철학의 '아르케(arche)'에서 현대철학의 '주체의 죽음'까지를 간략하게나마 다루었다. 최근 본 『시론』(권혁웅, 문학동네)에서도 시적 주체에 대한 이론을 다루고 있다. 이 시적 주체론은 니체의 주체론과 닮아있다. 이 글에서는 주체 개념의 역사, 니체의 주체론, 시적 주체론 등을 참조하여 역사철학에서 유의미한 주체 개념을 스케치해볼 것이다.



주체subject라는 단어의 어원은 라틴어 subiectum이다.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다는 뜻이다. 무엇을 떠받치고 있느냐에 따라 이 개념은 여러 의미로 분화된다. 첫째로 전체로서의 세계와 운동을 떠받치는 주체가 있다. 둘째로 개별 인간의 인식과 행위를 떠받치는 주체가 있다. 셋째로 인간들이 모인 세계(사회)의 운동과 역사를 떠받치는 주체가 있다.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들은 첫 번째 의미의 주체를 탐구하였다. 그들은 세계를 운동하는 것으로 보았으며, 이 운동의 최종근거인 아르케가 세계를 떠받치는 주체라고 생각하였다. 파르메니데스는 일자一者, 즉 전체로서의 세계 그 자체가 그 주체라고 보았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변화가 주체라고 보았다. 플라톤은 이 둘을 종합하였지만 그의 논의에서 형상의 세계와 변화의 세계는 아직 첨예하게 분리되어 있다. 그는 세계가 운동하고 변화하는 양상, 즉 형상eidos에 존재론적 우위를 두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 구분을 거부하고 형상의 세계를 변화의 세계 안에 통합하였다. 개별자ousia는 형상eidos과 질료hyle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운동은 존재의 내부로 향하는 운동인 현실태energeia와 바깥으로 향하는 운동인 가능태dynamis의 길항으로 이루어진다. 이 운동은 목적론적이다. 목적이 이끄는 운동의 끝에는 더 이상 바깥으로 운동할 수 없는 최고의 완전성이 있다. 그것을 제 1원인이라 부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체는 제 1원인이다. 이 개념은 중세 스콜라 철학의 신 개념으로 이어진다. 헬레니즘 시대의 두 주요한 흐름인 스토아 철학과 에피쿠로스 철학은 세계의 우연성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다만 에피쿠로스 학파는 마주침의 우발성을, 스토아 학파는 그 마주침의 결과인 운명의 필연성에 더 비중을 두었지만 말이다.


헬레니즘 시대의 기독교 철학은 첫 번째 주체 개념에서 두 번째 주체 개념으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를 이어받았다. 플로티노스는 최고의 완전성이 바깥으로 향하는 운동을 가정했다. 그것을 유출이라고 부르는데, 유출을 통해 가장 가치 있는 것과 가장 가치 없는 것이 위계적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여기서 최고의 완전성과 가장 가치 없는 것은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최고의 완전성의 자리에 신을 놓았다. 하지만 플로티노스의 존재론에서 신과 피조물은 유출이라는 사건을 통해 연속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의지'라는 개념을 통해 그 연속성을 감추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연속적인 것이라면 악 또한 신의 본성에서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신의 유출은 전적으로 그의 의지에 달린 사건이다. 인간의 모습을 한 주체이다. 인간이라는 존재 역시 본래 신에서 연속적으로 유출된 존재인 만큼 악을 극복하고 선으로 회귀할 의지와 자유를 지녔다.


두 번째 의미의 주체.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이후 사람들은 이전에 신이 있던 자리에 이성reason을 올려놓았다. 신의 빛이 모든 사물을 창조했듯, 이성의 빛은 모든 사물을 명료하게 인식하게 해주는 것이다. 데카르트의 이성론 철학은 정념을 제거하고 이성의 지도를 받는 것을 목표로 했고, 흄이나 아담 스미스의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는 좋은 정념에 따르는 삶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이 두 흐름 모두 좋은 감각good sense을 전제로 하고 있다. 즉 인간은 모두 사물의 참된 실재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성론적 철학은 칸트로 이어진다. 칸트는 인간이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의 영역을 분리했다. 이는 얼핏 이성의 한계를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구분 역시 이성의 한계 내에 머무르고 있다. 첫째로 칸트는 알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인식을, 알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실천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 실천은 이론이성이 아닌 실천이성의 준칙에 따른다. 둘째로 인식할 수 있는 전체는 사물 그 자체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은 사물을 나름의 방식으로, 선험적 방식으로 표상한다. 즉 인식 재료에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의 역할이다. 이는 영국 경험론 철학에서 인간이 인식의 영역에서 다만 수동적인 존재였던 것에 대비된다. 칸트에게 인식의 주체는 인간이다.


세 번째 의미의 주체. 이 개념은 사회철학적 관점과 역사철학적 관점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겠다. 하지만 철학사적으로 후자, 즉 역사철학적 관점은 드물게 제시될 뿐이었다. 먼저 사회철학적 관점은 고대의 폴리스 중심의 사고방식과 근대의 사회계약론 두 가지로 볼 수 있겠다.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 폴리스를 중심으로 한 관점은 폴리스 안에서 자유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에 주목하였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라고 통상 번역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명제가 사실은 "인간은 폴리스적 동물zoon politikon이다"라는 의미임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즉 사회적 존재로서의 개인을 떠받치는 것은 폴리스라는 하나의 사회이자 문화였다. 한편 홉스, 로크 등의 사회계약론은 사회가 아닌 개인에서 출발한다. 이들은 '자연상태'라는 방편적 가설에서 출발한다. 개인들은 무법적인 상태에서 자신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지닌 '권리'를 하나의 기관에 양도하였으며, 그 기관이 국가가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성적 개인은 국가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며, 따라서 존재론적으로도 우위에 있어야 한다. 즉, 개인의 재산과 생명을 지키는 것에 반反하는 국가는 존립의 정당성을 상실하는 것이다.


전통적인 역사철학적 관점에서의 주체 개념. 이것은 역사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누구인가하는 문제인데, 이에 따라 역사관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갖게 된다. 예컨대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개인이 역사적 변화를 일으킨다는 관점은 영웅 사관으로, 평범한 민중이 그 주체라는 관점은 민중 사관으로 불린다. 한편 조금 더 철학에 가까운 관점으로는 칸트의 이성 사관, 헤겔의 유심론적 역사관, 마르크스의 유물론적 역사관 등을 들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관점들은 모두 역사철학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더 큰 철학적 기획의 일부로서 다뤄진 감이 크다. 예컨대 칸트의 사관은 사회계약론을 수용, 확장하면서 형성된 것이고, 마르크스의 사관은 자본주의 비판을 위한 기획 안에서 형성된 것이다. 다만 헤겔의 경우는 조금 특이하므로 아래에서 다루겠다. 결론적으로 이 의미의 주체 개념은 역사학 쪽에서나 철학 쪽에서나 서로가 스스로의 한계에 갇혀있으면서 종합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예컨대 랑케의 신학적 역사관은 "모든 시대는 신에 직접적으로 접해있다"는 테제와 '주도이념die leitende Idee' 개념을 통해 역사를 분석하고자 시도하고는 있지만 아직 주체라는 지점에는 도달하지 못하고 있으며, 헤겔의 역사철학적 기획은 현실 역사의 다양성을 사장하고 관념론적인 관점에서 지나치게 현실을 단순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두 번째 의미와 세 번째 의미를 가로지르는 주체론으로는 하이데거 철학과 그 이후의 실존철학, 그리고 현대 프랑스의 구조주의 철학 두 가지를 들 수 있겠다. 하이데거는 뒤에 다룰 니체의 주체론과 비슷한 전제에서 시작한다. 우선 인간 주체 배후에 있는 어떤 본질, 예컨대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라는 본질에 대한 사유를 거부한다. 그에게 인간은 실존Existenz하는 존재다. 실존한다는 것은 바깥으로ex 존재istenz하는 것, 끊임없이 스스로를 고쳐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만드는 것은 죽음의 존재이다. 죽음은 순수하게 개인적인 것이다. 죽음이라는 불가능성의 가능성, 즉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 인간은 중성적인 군중das Man의 일부로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본래적 모습을 찾아갈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말한다. 또한 사회와 역사는 인간이 서 있는 조건이다. 그 조건을 짊어지고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한다. 그래서 하이데거의 인간은 본질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현존재Dasein이며 죽음을 향해Sein-zum-Tode 실존Existenz하는 주체이며, 세계 안에 있는 존재In-der-Welt-Sein이며 함께 사는 존재Mit-Sein이다. 한편 구조주의 철학의 주체론은 개인보다는 사회 구조의 우위를 강조한다. 특히 라캉과 알튀세르의 주체론은 이론적 반인간주의anti-humanism라고 불리며, 의식적 개인을 중심으로 삼는 철학과 반대의 경향을 보인다. 이들은 개인에 앞서 이미 존재하는 구조, 행동양식과 사고방식 등의 정형화된 구조가 개인의 의식을 형성한다고 말한다. 예컨대 라캉은 그 구조를 상징계the Symbolic라고 부르며 개인은 언어를 습득함으로써 상징계에 참여하게 된다고 말한다. 알튀세르의 경우 그 구조는 이데올로기라는 국가장치를 통해 개인에게 침투한다. 이데올로기는 예컨대 가족, 학교, 종교, 커뮤니케이션 등등 사적인 영역을 광범위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 이론들에서 개인은 다만 사회적 구조에 종속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편 스피노자와 헤겔의 주체론은 세 가지 의미 사이를 가로지른다. 스피노자에게 세계는 전체로서의 신(비인격 신)의 양태mode이다. 즉 모든 개별자는 신 안에 있다. 그러나 신은 개별자를 초월해 있지 않고 개별자에 내재적이다(따라서 스피노자의 유일실체론은 범신론이 아니다). 이 양태들은 신의 속성attribute을 표현하며 무한히 많은 속성 중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은 물질과 정신 두 가지 속성이다. 이 구도에서 세계의 운동은 신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며, 인간의 인식은 다만 정신의 관점에서 본 신 안에 있는 것이 된다. '인간은 사유한다'는 표현은 '그것(신)이 사유한다'와 같다. 하지만 이 구도에서 역사적인 관점은 찾아보기 힘들다.


헤겔은 스피노자의 유일실체론에 시간성을 부여하고자 했다. 헤겔은 자신의 백과사전적 철학을 역사철학 안에 융화하고자 했다. 그 기획은 변증논리학에서 시작한다. 변증논리란 시간적 논리학이다. 형식논리학은 본래 시간을 사유하지 않으면서 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형식논리학의 핵심적 공리는 동일률(A는 A이다), 모순율(A는 not A가 아니다), 배중률(A는 A이거나 not A이다)이다. 하지만 변증논리학에서 이 공리들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동일률의 경우, 'A = A'라는 수식에서 전항 A와 후항 A는 주어와 술어로 분리되어 같지 않게 된다. A는 A이면서 동시에 not A인 것이다. 이는 '존재와 무의 변증법'에서 조금 더 명료해진다. 존재자는 자신 안의 모순을 매개로 변증법적으로 고양하는 활동을 통해 절대자를 향하는 목적론적 운동을 한다. 이 때의 절대자는 모든 대립이 통일된 상태로 스피노자의 신-즉-실체와 비견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절대자는 타자를 갖지 않으므로 즉자적이다. 즉자적인 것은 무규정적이다. 즉 바깥은 갖지 않는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은 무에 대해 말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존재는 곧 무가 되어야 한다. 이 때, 존재와 무를 매개하는 것이 시간이다. 절대자는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여 무가 되었다가 다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운동, 즉 생성 운동을 한다. 한편 의식을 갖지 않는 존재는 자신 안의 모순을 외적 원인에 의해서만 고양시킬 수 있지만 정신적 존재는 의지를 통해 자기고양운동을 할 수 있다. 따라서 헤겔의 역사철학에서는 절대자의 정신적인 면이 강조된다. 역사적으로 이 고양운동은 개별자의 지성을 매개로 실현된다. 반대로 말하면 개별 지성의 활동이 마주치는 지점에서 헤겔은 절대정신의 실현을 본 것이다. 논리적으로는 절대정신이 앞서지만 현실적으로는 개별자의 지성이 앞선다. 그렇다면 이 역시 개별자의 이성을 중시했던 칸트 철학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 된다.



철학사적으로는 근대 철학과 현대 철학을 가르는 분수령으로 니체, 프로이트, 마르크스를 꼽는다. 이들은 이성을 중심으로, 다시 말해 자기동일적 의식을 중심으로 한 주체 이론을 비판했다. 니체는 동일성을 해체했고, 프로이트는 의식의 바깥을 강조했고, 마르크스는 정신이 아닌 물질적 관계의 존재론적 우위를 주장했다. 이 셋 중 이 글에서는 니체의 주체론에 주목할 것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시적 주체론도 곁들여서.


"일반 민중이 섬광을, 번개라고 불리는 주체의 '행위'이며 작용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민중 도덕도 또한 강한 것을 강한 것의 표출에서 분리하여 마치 강한 것을 나타내거나 나타내지 않거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중성적인 기체Substratum가 강자의 배후에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행위, 작용, 생성의 배후에는 어떠한 '존재'도 없다. '행위자'란 행위에 덧붙여진 단순한 상상의 허구일 뿐이다. 행위가 전부인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도덕의 계보학』 中


"주체라는 '원자'는 없다. 주체의 영역은 예컨대 계속 증대하고 있거나 계속 감소하거나 하며, 체계의 중심점은 계속 변동하고 있다. (중략) 주체는, '실체'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강화를 향해 노력하는 어떤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힘에의 의지』 中


아직 직관적으로 와닿지 않는다. 이런 것은 어떤가?


"시에서 구현되는 목소리는 1) 일련의 대상들을 취합하고 정돈하고 배열하는 지배자가 아니라 대상들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고, 2) 쪼개지거나 변형되지 않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라 특정한 언술들을 낳는다고 가정된 가상의 지점이며, 3) 대상 전체에 특별한 성격을 부여하는 감정의 주인이 아니라 그런 감정이 흘러드는 귀결점이다. 각 항목에서 전자를 '자아'의 것이라 한다면, 후자는 '주체'의 것이다." 권혁웅, 『시론』, 문학동네, 33쪽.


목소리의 주체론에 대해서는 이미 이곳에 서 다룬 적 있으니, 참고하길 바란다. 하지만 이전 글을 다시 찾아보는 불편함을 줄이기 위해 여기서 짧게 설명하고자 한다. 목소리의 주체론은 한 사람이 가진, 서로 다른 상황에서 내는 서로 다른 목소리에 주목한다. 전제들은 다음과 같다. 1) 한 사람은 여러 목소리voice를 가진다. 2) 각각의 목소리는 시간적으로 연장extension을 갖는다, 다시 말해 지속한다. 3) 이렇게 계열화된 목소리 각각을 주체라고 부른다. 4) 목소리들의 생멸 가운데에 유지되는 목소리가 하나 있다. 이것은 현시present될 수 없고 다만 재현represent될 수 있을 뿐이다. 하이데거 식으로 말하면 이것이 드러난 것이 바로 기분상태Stimmung이다.


목소리는 행위 수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니, 목소리가 곧 행위이다. 왜냐하면 행위는 어떤 방식으로든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텍스트의 관점에서 행위는 넓은 의미의 목소리에 포함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위에 인용한 니체의 문구들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목소리들의 배후에는 그 목소리를 '가능하게 하는' 원인으로서의 행위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역으로 그 목소리들이 행위자를 구성해 낸다. 시론에서 주체를 "특정한 언술들을 낳는다고 가정된 가상의 지점"이라고 지적한 것과 같다. 니체는 기존의 이성 중심철학에서 하나의 단단한solid 실체로 가정되었던 동일자적 주체를 해체한다. 예컨대 데카르트의 코기토cogito나 칸트의 통각의 선험적 통일, 혹은 헤겔의 동일자적 정신과 같은 것이 이에 포함될 수 있겠다. 니체는 이것이 주어와 술어의 문법적 형식에서 비롯된 환상이라고 비판한다. 즉, 주어는, 헤겔의 변증논리학에서와 같이, 즉자적이고 확고한 사태인 데에 비해 술어는 주어에 속하는 것으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이 때 주어는 술어의 '배후에' 있다. 아래에서 떠받치고 있음으로서의 주체이다. 목소리는 감정도 포함한다. 왜냐하면 한 사람 안에 다수의 목소리가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것은 바로 상황의 다수성이며, 그 상황의 다수성에서 직접 파생되는 것이 감정의 다수성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논하기 위해서는 신체성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스피노자의 이론이다. "감정이란 신체의 활동능력을 증대시키거나 감소시키며, 촉진하거나 억제하는 신체의 변용인 동시에 그러한 변용의 관념이라고 나는 이해한다." (『에티카』 3부, 정의 3 中) 감정은 신체를 빼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목소리의 주체론에서 목소리의 의미는 기존의 용어인 '성격'으로도 충분히 나타내질 수 있다. 그러나 '성격'이라는 말은 정신적인 측면을 가리키는 것이 큰 데 비해 '목소리'는 신체성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에서 포괄적이다. 왜 신체성을 포괄해야 하는가? 왜냐하면 정신의 관점에서 개별자는 구분 없이 큰 '하나'에 참여할 수 있는 반면, 신체는 개별자를 구분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개별자들이 보이는 현실적 차이를 사유하기 위한 방편이 바로 신체이기 때문이다. 정신은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체는 하나가 될 수 없다. 신체는 개별자 사이에 놓인 최초의 구분선이면서 영원한 간극이다. 신체의 고통은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으며 누구도 함께 나눌 수 없다. 현실은 이 고통에서 출발한다.



그렇다면 텍스트의, 목소리의 주체론은 역사철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을 것인가? 앞서 언급한 '주체' 개념의 세 가지 의미 중 세 번째 의미와 첫 번째 의미를 가로지르는 사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사유해야 한다. 이를 위해 검토해볼 만한 존재론은 몇 가지가 있다. 화이트헤드의 과정적 존재론, 스피노자의 일원론적 존재론, 바디우의 수학적 존재론, 김상환의 계사존재론 등.


한편 원자적 주체 사유에 대한 대안으로 '에너지적'인 주체론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스피노자의 존재론과 니체의 주체론을 통해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에너지적 사유의 필요성은 철학의 영역에서보다 역사의 영역에서 더욱 필요해 보인다. 왜냐하면 역사적 변화의 '흐름'은 어떤 원자적 충돌과 결합의 산물이라기보다는 전체의 일부로서 어떤 '힘'의 이동과 집적, 해산으로 설명하는 것이 적절하기 때문이다. 이 힘의 이동을 원자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등장하였던 것이 영웅사관과 민중사관이다. 그러나 이 둘은 모두 각자의 한계 안에 갇혀있다. 한계에 갇혀있다는 말은 역사적 사건을 충분히 설명하여내지 못했다는 말이다. 영웅이란 어떤 힘의 흐름이 선행하지 않았을 경우 등장할 수 없고, 민중은 그 자체로 힘의 근원일 수 있지만 일관된 방향을 갖지 않는다.


목소리의 주체론은 이 힘의 사유와 친화력을 지닐 것으로 보인다. 목소리의 주체론은 원자적이고 동일자적 주체론이 갖고 있는 '소통'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어떻게 서로 다른 개인이 하나의 행동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 원자론적 주체론은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한다. 예컨대 알튀세르의 마주침의 유물론의 경우, 마주침 이후의 원자들의 결합은 원자들의 '내적 본성'에 의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원자 각각의 내적 본성이란 것은 내용 없이 설명되고 있다. 다시 말해 신비주의적인 설명이다. 그러나 목소리의 주체론을 통해 보면 여러 사람들이 그 안에 갖고 있는 목소리 중 공통된 것의 공명 현상으로서 그것을 설명해낼 수 있다. 둘째로 후기-구조주의적 사유와의 친화력도 생각해볼 수 있다. 후기-구조주의 사유의 특징은 구조의 변혁까지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구조주의적 사유가 개인에 대한 구조의 우위를 강조한 나머지 구조 자체의 기원과 변화에 대해서는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지 못했다면, 후기-구조주의적 사유는 구조의 역사성까지 고려한다. 목소리의 주체론에서 개인에 대한 구조의 영향은 역시 또하나의 목소리로 생각해볼 수 있겠다. 그것이 개인 안에서 영향력을 키우려는 경향, 혹은 어떤 계기를 통해 개인이 그 목소리를 몰아내려는 시도를 통해 역사의 미시적 면부터 거시적 면까지를 포괄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목소리의 주체론은 아직 착상conception 단계에 머무르고 있다. 앞으로 존재론적 사유 안에서 그것이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2014.01

Comments

  1. 괴델 2014.01.31 22:10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상당히 일관성있고 재미있는 사유네요. 문학~철학~역사~정치를 뛰어넘는 사유를 보고 놀랍니다. 다만 니체와 하이데거 쪽은 아직 공부하지 않아서 이해하는데 좀 애먹었네요ㅋㅋ
    재밌는 것은, 니체의 사유와 함께 기존의 실체론 주체론을 해체시킴과 동시에 변증법적으로 발전시켰다는 겁니다. 또한 성격과 목소리를 대립시킬 때는 동양(주자)철학에서, '개별자로서 타인과 나를 통합(仁)하고 동시에 대립시킨다(義)'는 부분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네요.
    그리고 글 마지막 부분으로 오면서 느낀건데 구조주의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네요. 두 번째 주체론(개인)과 구조주의적 사유가 통합될 수는 없을까요? 개인이 첫째 셋째 흐름에서 나타나는 것은 맞지만, 그 개인이 흐름을 읽어내고 이끌어가는 주체(?)로서의 능력이 없으면 안되잖아요ㅋㅋ
    여튼 저에게도 좋은 사유기회를 제공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2. 괴델 2014.01.31 22:13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아 그리고 '목소리의 주체'가 서술되는 부분은 상당히 감탄했습니다 신선하네요ㅎㅎ

    • 네온하늘 2014.02.01 13:19 신고 Permalink Modify/Delete

      구조주의 짱짱맨... 알튀세르 공부하면서 영향을 많이 받았고 라캉도 관심이 좀 있습니다. 이정우 선생님 글 보면서 들뢰즈 등의 후기-구조주의 사유에도 많이 감동을 받았고요. 음 역사적 흐름을 읽고 이끌어가는 의식적 개인에 대해서는 아마 바디우 철학을 공부하면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싶습니다 아직은 전 구조주의 짱짱맨 ㅋㅋㅋ 그리고 목소리의 주체는 사실 '시론' 책 보면서 영감을 얻은 건데 철학적으로 한 번 사유해보고 싶어서 시도를 해봤습니다

  3. dqowpdn 2015.03.18 14:54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ㅇ안녕하세요. 네이버 검색하다가 이 글을 읽고 궁금한 점이 있어 댓글로나마 질문드립니다~

    제가 궁금한 구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러나 신은 개별자를 초월해 있지 않고 개별자에 내재적이다(따라서 스피노자의 유일실체론은 범신론이 아니다)."
    저도 어디선가 스피노자를 범신론이라 지칭해서는 안 된다고 들었는데, 그 이유를 까먹었습니다.
    워낙 철학 윤리학자들에 대한 해석은 상이하므로 절대적 해석은 없다지만, 스피노자의 경우는 대부분 범신론으로 보는 입장이 맞다고들 하는데요.
    위의 글에서는 신은 개별자를 초월해 있지 않고 개별자에 내재적이기 때문에 범신론이 아니라고 했는데, 오히려 범신론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세계의 밖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인격적인 신을 인정하지 않고 신을 세계와 동일시(네이버 철학사전, 범신론)하는 것 아닙니까??
    시기가 많이 지난 글이지만, 혹 보신다면 저의 궁금증을 해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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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많은 '~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정의(define)하는 일은 논의를 시작하기에 앞서 반드시 거쳐가야 할 문제 중 하나이다. 그러나 단어를 정의하는 일의 역할은 어떤 논의 안에서 그 말의 쓰임을 분명히 하는 것, 그것까지일 뿐이다. 정작 논의를 구체적으로 이끌어가는 것은 공리(axiom)에서 정리(theorem)와 법칙(law)으로 이어지는 체계인 것이다.

 

예컨대 고전경제학은 "자원은 희소하다",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그리고 "인간은 언제나 합리적인(이성적인) 선택을 내린다" 등의 공리에서 출발하여 수요-공급의 법칙을 산출하면서 하나의 체계를 구축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경제학에 심리학을 접목했다고 평가받는 행동경제학은 위의 마지막 공리를 뒤집으면서 성립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겠다. 마치 비-유클리드 기하학이 "평행한 두 직선은 영원히 만나지 않는다"라는 유클리드의 공리를 뒤집어 성립한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어선 안 된다. 더구나 그러한 논의는 대부분 '역사는 어떠하다'라는 명제들보다는 '역사는 어떠해야 한다'는 당위와 관련된 것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당위들에 앞서 역사학에서 성립하는 공리들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역사철학이다.

 

20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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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형이상학의 역사는 데카르트를 기준으로 전후를 나눌 수 있다. 데카르트 이전 시대의 사람들은 세계와 사물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한 탐구를 우선시했다. 예컨대 헤라클레이토스(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나 데모크리토스(모든 것은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와 같은 자연철학자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 뒤로 헬레니즘 시대의 스토아와 에피쿠로스 학파 역시 독특한 우주론을 전개한 바 있다.

 

그러나 데카르트 이후로 서양 형이상학은 존재론보다 인식론을 앞세우게 되었다. , 객관적인 세계가 어떻게 존재하는가를 탐구하기보다는 그것에 대한 인식 자체가 참인지를 의심하게 된 것이다. 데카르트의 제 1명제 "Cogito, ergo sum"은 당시 철학의 관심이 객관세계가 아닌 주관성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후 칸트에 이르러서는, 한 주체가 평생 경험할 수 있는 경험의 한계가 곧 그가 인식할 수 있는 세계의 한계라는 주장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과 더불어(비록 약간의 시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역사학에서도 역사적 사실보다는 역사 서술자의 주관을 먼저 생각하는 경향이 생겼다. 대표적으로 베네딕트 크로체는 역사학을 과학이 아닌 특수한 종류의 예술로 분류하고, 역사가를 한낮의 풍요가 아닌 달빛에 비춘 어두운 풍경을 그리는 화가에 비유했다.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인기 있는 에드워드 카는 역사책을 읽을 때에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먼저 알아보라는 말을 남겼다. 이들은 과거의 사실보다는 현재적 관심에 의해 역사를 연구한다는 공통점 때문에 '현재주의' 역사가들로 분류된다.

 

철학적으로 근대 형이상학, 역사학적으로 현재주의 교설이 공유하는 문제는 다음과 같다. , 사물을 인식하는 인식주체의 주관과 세계의 객관성을 대립시키고, 그 객관성을 달성할 수 없는 영역으로 밀어넣었다는 것. 그로 인해 역사가의 주관성은 불가피한 것으로 설정되었고, 극단적으로는 사료에 위반되지 않는 선에서 어떠한 역사적 해석도 가치가 있다는 주장까지 등장하게 되었다.

 

위와 같은 문제가 등장한 가장 큰 이유는 근대 인식론이 수학과 과학(뉴턴 역학) 위에 세워진 결과라는 데에 있다. 감각적 경험이 지닌 주관적 불확실함과 수학이 보여주는 객관적 정확성의 날카로운 대립에 중간지대는 없다. 요컨대 위와 같은 주장의 문제점은 객관성을 달성할 수 없는 영역으로 치부한 점이 아니라, 주관성에 객관성을 대립시키고 역사적 사실을 후자에 귀속시킨 전제 자체에 있는 것이다.

 

현대 과학에서도 객관적 사실 그 자체는 우리가 인식할 수 없는 것들로 여겨진다. 대표적인 예로 원자 스케일의 세계에서 제기되는 인식의 불확정성을 들 수 있으며, 현대 과학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의 "객관성은 사실이 아니라 목표이다"라는 언명 또한 그 예로 들 수 있다. 다시 말해, 객관성은 우리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끊임 없이 추구할 가치는 있다는 것.

 

역사 연구에서 객관성을 추구하는 방법으로 나는 단일 주체의 주관성이 아닌 다수 주체의 주관성인 '-주관성(inter-subjectivity)'을 생각하고 있다. 일단 이것은 뒤에 얘기하도록 하자. 그에 앞서 역사학에서 극복되어야 할 주관성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역사 서술자의 주관성이며, 둘째는 역사 서술 속의 주관성이다.

 

첫번째 주관성에 대한 설명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겠다. 문제는 두 번째 주관성인데, 역사가의 주관성이 역사를 '보는' 사람의 주관성이라면, 이 주관성은 역사 '안에' 있는 사람들의 주관성이라 말할 수 있다. 언뜻 보면 이해가 안 되는 얘기일 수 있는데,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역사를 보는 사람이 자신을 역사 속의 어떤 인물 혹은 집단과 동일시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한국사'가 가능한 이유는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근대 한국, 조선, 나아가 고대의 국가들까지 자신과 동일시하기 때문에, 달리 말해 감정을 이입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동일시된 역사를 한 데 묶으면 그것이 바로 한국사인 것이다.

 

이러한 주관성이 바람직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한 가지, 편협함 때문이다. 그것의 정치적 영향력도 물론 그렇거니와 학문적으로도 이는 보편성을 추구하는 일반적 경향과 정반대가 된다. 역사를 이루는 것은 사건이다. 사건을 만드는 것은 이전 사건의 영향력(, 상황)과 주체의 행위이다. 그런데 주체는 하나가 아니다. 보편적으로 말해 모든 사람은 잠재적으로 역사적 주체이며, 현실적으로 모든 단체, 민족, 국가, 또 다른 어떠한 역사적 단위가 있다더라도 그것은 모두 주체의 자격을 갖고 있다. 그 중 하나의 특정한 주체를 골라 그의 시각만을 취하는 것은 부당하다.

 

-주관성은 이러한 주체들의 욕망과 감정을 모두 고려하는 데에서 시작된다(모든 행위의 계기는 욕망과 감정 뿐이므로). 예컨대 <밖에서 본 한국>(김기협)에는 이런 설명이 있다. ()이 고조선을 공격한 이유는 한민족의 영토를 정복하려는 야욕 때문이 아니라(기존 한국 중심의 시각), 흉노를 상대로 키워놓은 군사력이 더 이상 쓸 데가 없어져서 그것을 이용할 겸 주변 국가들에 예방 차원의 전쟁을 시행했기 때문(한나라의 시각)이라고 한다. 이는 이라크 등지에 대한 현대 미국의 '예방 전쟁'과 일맥상통한다.

 

역사의 주체를 민족으로 설정하든, 국가로 설정하든, 아니면 개인에게 주목하든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의 편협한 이해가 아니라 주체 일반에 대한 보편적인 이해이다. 그리고 주체들과 그들의 행위를 만드는 욕망이라는 동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돈과 권력에 관계된 현실정치적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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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그러니 우선 이 책이 그저 비에 관한 책이 되기를."

 

더 없이 시적이고 매력적인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글은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 1918-1990)<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이라는 논문이다. 원제는 <Le courant souterrain du mate'rialisme de la rencontre>. 우리말 '은밀한'에 해당하는 단어는 'souterrain', 영어로는 'underground'이다. 알튀세르는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이 전통이 서양의 "철학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 진술되자마자 즉각 반박되고 억압된 심오한 주제"라고 말한다. 왜 이 전통은 빛을 보지 못한채 지하에서 은밀하게 흘러와야 했는가? 그는 이것이 로고스(λογο?)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εν αρχε ην ? λογο?; 요한복음 1:1). 로고스란 무엇인가? (words) 혹은 이성(reason), 나아가 목적(end; 이 말은 또한 종말을 나타내기도 한다.)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다시, 태초에 로고스가 있었다는 말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성경) 혹은 이성이 있었다는 말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태초에 '목적'이 있었다는 말로 이해할 때 우리의 주제에 가장 근접할 것이다. 이 우주가 처음 시작할 때 그곳에 로고스가 있었다는 말은 이 세계가 달려가야 할 목적이 있다는 말과 상통한다.

 

그러나 이 은밀한 전통 속에 로고스는 없다. 세계는 무언가를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자연은 인간에게 이용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영양을 위한 식물과 동물, 비추기 위한 태양, 물고기를 기르기 위한 바다(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에티카> 1부 부록)"...이런 생각은 모두 인간중심적인 사고방식이다. 예컨대 바다는 단지 거기 있었을 뿐이고, 인간이 그곳에서 맛있는 물고기를 잡아올린 건 나중의 일이다(물론 물고기를 잡아올린 것이 먼저고 그것이 맛있다는 것을 깨달은 사건은 나중에 올 것이다; 바닷물은 왜 짠가? 물고기 밑간을 위해서). 로고스는, 즉 목적론은 이렇게 어떤 일의 결과와 원인을 뒤집어놓는다. 다시 말해, 어떤 일의 결과를 두고 그것을 원인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그렇다면, 로고스가 없다면 무엇이 있는가? 아무 것도 없다. 만약 있다면 그것은 "허공 속에 평행으로 내리는 에피쿠로스의 원자들의 비"일 것이다. 원자들의 비, 이것이 이 논문을 단순한 비(la simple pluie)에 관한 글이 될 수 없게 만든다. 에피쿠로스의 세계관에서 최초의 상태는 이렇게 원자들이 서로 마주치지 않고 평행하게, 허공 속을 무한히 내리는 광경이다. 그러나 이 상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세계라는 것이, 다양성이라는 것이 만들어진 후의 관점으로 보건대 거기에는 원자들의 마주침을 가능하게 한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을 클리나멘(clinamen)이라고 부른다. 클리나멘이란 빗겨남이다. 평행하게 내리는 원자의 비, 그러나 그곳에 인식할 수 없을 만큼 미세한 빗겨남이 생겨난다. 이 빗겨남으로 인해 원자들 간의 충돌이 일어나고 어떤 원자들은 서로 얼음처럼 응고하면서 더 큰 물질들을 만들어낸다.

 

이제 '마주침의 유물론'이 의미하는 바를 대충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주침이란, 위의 원자들과 같이, 철저히 우연한 만남을 가리키며 유물론이란 로고스를 거부한 사유방식을 의미한다. 물론 알튀세르는 에피쿠로스의 원자론을 있는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조금 더 확장시켜서, 유비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마키아벨리의 관심을 그는 흩어져 있는 원자적 상태의 이탈리아를 하나로 응고하게 해 줄 마주침의 계기를 찾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게 아무런 관련이 없어보이는 것들이 서로 우연히 마주치고 응고함으로써 현실을 창조해 나가는 관점, 그것을 우리는 마주침의 유물론 혹은 '우발성의 유물론(aleatory materialism; aleatory는 주사위 놀이를 가리킨다.)'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원자'들의 움직임을 '위에서' 내려다 본다면, 아직 이 그림은 조금 난삽하게 보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쿠르노(Antoine Cournot, 1801-1877)의 이론을 만나게 된다; 미리 요약하면 "독립된 계열들의 마주침." 예컨대 지하철-버스 환승을 생각해 보자. 환승이라는 사건은 지하철이라는 계열과 버스라는 계열이 만나는 지점에서 성립한다. 물론 지하철과 버스는 가야할 길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비유는 불충분하고 오해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이 마주침조차 우연적인 상황을 생각해 보라; 길을 가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 혹은 아는 사람과 마주치는 경우, 수업을 빼먹고 돌아다니는데 조교와 마주치는 경우 등등...

 

어떤 것이 시간적인 연속을 통해 하나의 계열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자기동일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인식론적으로 재-(-; re-cognize)이 가능해야 한다. 그것을 나는 주체라고 부른다. 주체는 신체를 통해 성립한다. 어떤 신체에 그가 한 행동들과 속성들이 쌓이고 새겨질 때 하나의 주체가 탄생한다. 주체를 움직이는 것은 감정과 욕망이다(그리고 때로는 상황적 필연성이 인간을 움직이기도 한다.). 이성이란 의식의 작용, 즉 반성과 정당화를 담당하는 능력일 뿐이다. 그런데 욕망에는 목적이 속한다; 사람들은 특정한 행위와 그 결과의 개연적 연결을 기대하고 행동하므로. 여기서 난점이 하나 발생한다. 이 이론은 목적에 대한 관점을 거부하는 유물론적 사유에 기반하고 있지만,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목적에 대한 성찰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조심스럽게 분석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 마주침의 유물론이 부정하는 '목적'이란 것이 과연 어느 차원에 속하는 것인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먼저 위에서 스피노자의 주장을 언급했듯 모든 자연적인 것에는 목적이 없다. 그렇다면 인간 행위의 마주침만으로 발생하는(emerge) 하나의 사건과 그 연속에는 목적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 예컨대 역사의 거대한 흐름 속에는 어떤 종착역이 있을 것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각각의 시대는 신의 섭리를 반영하며 성장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레오폴트 폰 랑케), 한 사람만이 자유를 갖는 전제 군주 국가에서 모든 사람이 자유로운 시대를 향해 역사가 움직인다고 보기도 하고(게오르크 헤겔), 또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계급의 지배가 종말하여 모두가 평등하게 사는 세상이 오리라 믿기도 한다(칼 마르크스).

우리가 모두 하나의 정신이었다면 역사 또한 이렇게 하나의 정갈한 길을 따라 걸어갔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통일을 이루기에 우리에게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신체이다. 정신은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하나의 정신은, 즉 주체는 신체에 새겨진 고유한 흔적을 통해 성립한다. 따라서 정신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밖에 없다. 한 명의 행위자가 있으면 그 반대자가 있게 마련이고, 함께 움직이기로 약속해 놓고서는 중도에 빠지는 자도 있게 마련이다. 혹은 적대적인 이들과 우연적으로 마주칠 수도 있고, 갑자기 바람 방향이 바뀌어서 다 이긴 싸움을 질 수도 있다. 이렇듯 하나의 사건에 개입하는 요소가 많을수록, 나아가 관여하는 주체가 많을수록 그 흐름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럼에도 여기까지의 논의는 아직 불충분하다. 주체라는 선(line)들과 그들이 만나는 역사라는 평면(void)에 대해서는 언급하였지만 규모(scale)의 차원은 아직 논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규모는, 무언가를 위에서 '내려다 볼 때' 우리가 종종 간과하는 점이기도 하다. 예컨대 삼삼오오 모인 작은 동아리의 규모와 하나의 도시, 혹은 국가의 규모는 비교할 수 없다. 주체에 대한 위의 논의에 규모라는 또 하나의 차원을 도입했을 때 우리는 새로운 잠정적 결론에 도달하게 되는데, 그것은 어떤 사건의 규모가 클수록 하나의 일관된 경향이 존재할 가능성이 낮아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우리는 목적에 대한 성찰을 아직 조악한 수준에서나마 마무리 지을 수 있을 것이다. , 목적은 하나의 주체를 이끌 수 있다. 이는 명백하다. 그러나 더 많은 주체가 관여하는 사태에서 우리는 어떤 목적을 찾기 힘들 것이다. 하물며 역사라는 거대한 스케일의 사건-복합체에서 단일한 종착점, 혹은 목적을 찾는 것은 합리적인 관점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렇게 우리는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급진적인(radical), 그러나 매력적인 사상을 통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관점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 목적과 의미는 현실에 선행하지 않는다는 것, 사건은 주체들의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 목적은 하나의 주체를 이끌 수는 있지만 역사 전체를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것.

 

2013.04


Comments

  1. 이재웅 2013.08.21 17:45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반갑습다. 책을 사러 나가기 너무 어려운 상황이라 알튀세르의 '마주침'을 검색을 하다가 네온하늘님의 글을 봤습니다. 제 블로그에 포스팅했고,댓글 형식으로 의견 달겠습니다. 혹시 알튀세르의견 요약 안에 네온하늘님의 생각이 섞여 있어서 제가 혼동할 수도 있으니 나중에 시간이 나면 제 댓글 코멘트보시고 오류가 있는 부분은 바로 잡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2. 황진규 2015.12.22 09:21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덕분에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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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출발점에서 멀어져 길을 잃었을 때, 최초에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과 내가 원했던 결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왔던 길의 흔적을 더듬으며 찾아간 출발점에서 나는 '역사적(historic)'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무엇을 뜻해야 하는지 고민했었다. 역사의 표면으로 올라와 우리에게 알려진 사건들은 무슨 자격으로 표면에 있는 것인지, 표면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사건들은 어째서 그곳에 있어야 하는지 말이다. 교과서는 수많은 역사적 사실 중에서 '중요한' 것을 가려내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라고 말한다. 그리고 랑케와 같이 그 기준을 철저히 과거에 두는 사람들과, 반대로 콜링우드와 같이 그 기준을 철저히 현재에 두는 사람들이 있으며 E.H.카라는 사람이 이 둘의 종합을 꾀했다고 설명한다. 저 유명한 문구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과 함께.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다만 카의 관점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니, 그렇게 단순해서는 안 된다. 과거는 말이 없다. "과거와 현재의 대화"는 현재적 입장의 일방적인 폭력으로 변질될 것이다. 이것이 역사철학자들이 카를 '현재주의' 사상가로 분류하는 이유이며, 내가 카보다 랑케의 사상에 더 관심을 갖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랑케의 역사철학은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 <근세사의 여러 시기들에 관하여>에 잘 드러남. 알고보면 랑케는 카가 묘사하는 것처럼 앞뒤가 막힌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카 방식의 현재주의의 한계에 실망했기 때문이었지, 현재적 해석을 배격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칫 모순되어 보이는 실증주의와 사실주의를 어떻게 종합할 것인가가 더 큰 화두였다.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써둔 일기의 한 구절을 발견했다.


"책이나 글을 읽을 때에는 주의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저자가 진리의 어느 면을 보았는지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엄밀한 의미의 '모순'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사람들은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조금 다른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주장은 서로 모순을 이루지 않고도 종합될 수 있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주장들이 위치한 '층위(level, layer)'에 주목하는 것이다. 사실 실증주의와 현재주의가 대립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럼에도 이들이 모순을 이루는 주장들로 보였던 이유는 그들을 요청한 최초의 문장 속에 숨어 있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 중에서 중요한 것을 가려 서술해야 한다는 언명 말이다. 이 언명에서 '역사 서술'이라는 지평은 '/어둠', 또는 '있음/없음'과 대응되는 '중요함/안 중요함'의 구조를 띤다. 이 때 모든 역사가는 단일한 층위에 고정되며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오는 개개의 역사적 사실들의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일에 불과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관점은 너무나 편협하다. 위와 같은 생각은 개개의 사건들 중 처음부터 특별한 의미가 있거나, 그런 의미를 부여받아야 하는 것들이 정해져 있다는 전제에서 비롯된다. 굳이 말하자면 일종의 영웅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사건에는 그것에 수반되는 의미가 반드시 있으며, 이 의미들은 서로 다른 '층위'에 머무른다. 예컨대 우리 집 주방 수도관이 얼었다가 다시 녹은 것은 '우리 집'이라는 미시적 층위에서는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이지만, 국가적 차원에서는 별 일이 아닌 것이다. 한편 다양한 층위에 걸쳐 의미를 행사하는 사건 또한 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제 공황이나 전쟁을 생각해 볼 수 있겠다. 이런 관점 아래 역사가의 '임무'는 단순히 중요한 사실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것에 있지 않고, 개개의 사건이 과연 어떤 층위에 머물러야 하는가를 판단하는 것에 있다. 과거에는 특정한 지역적 차원에서만 중요하게 인식된 사건을 국가적 층위에서 인정하도록 '승격'시킬 수도 있는 것이고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 것이다.


한편 우리는 실증주의와 현재주의의 공존을 가능하게 할 수도 있다. 실증주의에서 중시하는 사건들은 항상 당대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과거에 높은 층위에서 의미를 지니던 사건이 시간이 지날수록 낮은 층위로 내려갈 수도 있는 것이다. 반대로 현재주의가 중시하는 사건은 항상 현재를 기준으로 한다. 따라서 과거에 낮은 층위에 머물던 사건이 시간이 지나 높은 층위까지 올라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 변화와 역동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이 두 관점은 모순적으로 대립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두 관점은 역사 서술에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할 것들이다. 하나를 취하고 다른 하나를 버리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역사 서술은 현재를 위한 서술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는 '역사적(historic)'이라는 말의 의미가 '중요/안 중요'라는 단순한 구도에서 비롯해서는 안 되고, 다양한 의미의 층위를 인정하는 지평에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20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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