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사상에서 개념의 지위와 인간의 태도


 

I. 들어가며

 

이 글은 공자 사상에서 개념이 갖는 지위와 의미, 그리고 그것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검토해 보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공자 사상에서 은 인간사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표상된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모순혹은 부조리라 부른다. 현실의 모순은 현실을 합리적으로 파악하고 그것으로부터 정당한 행동 양식을 이끌어내고자 하는 철학 일반에서뿐만 아니라, 인격 수양을 통해 바른 정치를 구현하려던 공자의 사상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합리적으로 해석 가능한 현상의 문제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풀어나가면 충분한 반면, 그렇지 못한 문제는 그것을 마주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합리성뿐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요구한다. 예컨대 죽음의 문제, 과 악의 문제, 길흉화복吉凶禍福의 문제 등이 이런 것들이라 볼 수 있다. 이 문제들은 사마천에게서도 발견되는 바, 선한 사람이 가난과 불행과 요절에 고통 받는 반면 악한 사람이 부와 권력을 누리고 천수를 다하는 등 세대가 거듭되도록 변하지 않고 인류를 괴롭힌 문제라 할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조차 이 문제들은 한 사회의 건전함을 평가하는 기준에서 빠지지 않는다.

이 글은 먼저 공자 사상에서 개념이 차지하는 위상을 검토할 것이다. 기본이 되는 텍스트는 󰡔논어󰡕이다. 그 안에서 이 등장하는 횟수를 살펴봄으로써 그 위상을 가늠해볼 것인데, 이는 기존 연구 성과를 수용하되 그 결점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양적인 통계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개념이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횟수까지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이 글의 주장이기도 하다. 그렇게 하였을 때에 개념의 의미와 그 등장 양상이 상호보완적으로 명료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 후 󰡔논어󰡕에서 등장하는 개념의 등장 양상을 열거하고 종류별로 구분한다. 이 분류를 통해 우리는 인간은 어떤 문제를 통제하고 해결할 수 있고, 어떤 것은 그럴 수 없는가에 대한 공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이어지는 장에서는 그 각각의 경우가 어떻게 인간사에서 모순 혹은 부조리로 드러나는지에 대해 서술한다. 끝으로, 그것들을 통해 공자가 을 대하는 태도를 추론해 보는 것으로 이 글은 마무리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공자 시대의 종교적 배경이 참조되는데, 왜냐하면 전통적인 하늘[]’ 숭배의 퇴조가 공자 사상에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일관되는 문제의식은 종교적 색채를 지우기 힘든 내지는 천명이 공자의 인문주의 사상과 어떻게 정합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공자 사상은 흔히 인간 사회의 문제를 초월적 힘에 의지하지 않고 인간의 주체적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상으로 이해된다. 훌륭한 인격을 갖춘 군자가 덕으로써 정치를 펴면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이 그 근거로 여겨진다. 이때, 초월적 존재인 천과 천명은 그의 사상에서 부수적인 것 혹은 과거 관습의 잔재 등으로 생각되곤 한다.

 

II. 󰡔논어󰡕에서 개념의 지위와 등장 양상

 

1. 󰡔논어󰡕에서 개념의 지위

 

이나 와 같은 개념과 달리 󰡔논어󰡕에 자주 등장하지는 않는다. 표면적으로 해석할 때 우리는 공자의 사상 체계에서 명이 이나 에 비해 중요하지 않은 개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논어󰡕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는 구절은 지명知命지례知禮’, ‘지언知言을 같은 선에 놓으면서, ‘지명을 군자 됨의 필수 요건으로 두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명을 아는 것이 군자 됨의 과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러나 개념의 무게감만으로 단순히 명 개념이 공자 사상에서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다고 주장하기는 힘들다. 󰡔논어󰡕에 명에 대한 언급이 드문 것은 사실이다. 우리는 공자가 실제로 명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인지, 혹은 실제 언급은 자주 하였으나 󰡔논어󰡕 기자에 의해 소수를 제외한 것들이 누락된 것인지 알아야 한다. 이때, 󰡔논어󰡕 󰡔자한편에 있는 한 가지 구절을 참조해볼 필요가 있다. , “子罕言利與命與仁(자한).”

이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은 공자가 세 가지 모두를 적게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택용은 󰡔논어󰡕 전체에서 각각 10, 15 등장한 데 비해 이 압도적으로 109회 등장한 점을 들어 이 해석을 반박한다. 그는 공자가 를 드물게 말했지만 은 허여했다는 것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비록 에 비해 󰡔논어󰡕에서 더 많이 언급되지 않았으나, 대신 과 관련된 사태에 대한 언급이 많다는 점, 또한 가치를 인정하다로 새길 수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정당화한다.

자한편의 위 구절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이 비록 그 구체적인 내용에서 상이할지언정 동등한 지위에서 서술되고 있다는 느낌을 반영한다. 그러나 󰡔논어󰡕에 각 개념이 등장하는 횟수를 따져보았을 때, ‘의 비중이 다른 두 개념보다 더 크기에 세 개념이 같은 선상에서 단순 비교될 수 없으리라는 것은 명백하다. 물론 어떤 개념이 󰡔논어󰡕에 더 자주 등장한다고 해서 그것이 그만큼 더 중요한 개념이라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단순한 수치상의 차이일지라도 그것을 의미 있게 서술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일 있다.

먼저, 위의 주장에 대한 직접적인 동의나 반대에 앞서 우리는 단순한 통계적 견지에서 에 대해 접근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 이런 접근은 󰡔논어󰡕에 등장하는 이 모두 동질적인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나 예컨대 리인편에 등장하는 仁者安仁 知者利仁의 경우, ‘의 목적어로 쓰인 仁德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사람내지는 타인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인덕을 평안케 한다거나 인덕을 이롭게 한다는 해석은 그 자체로 모호하여 정확히 어떤 사태를 가리키는지 불분명할 뿐 아니라, ‘󰡔논어󰡕 전체 맥락에서 상극을 이루는 개념이라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또한 위 구절에서 사람으로 해석하였을 때 공야장편에서 공자가 자신이 품은 뜻을 말한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라는 구절과도 정합성을 이룰 수 있다.

우리의 논의에서는 자가 모두 윤리적 덕목으로서 仁德을 의미했는지 검토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위에서 논의하였듯 󰡔논어󰡕에 등장하는 모든 이 같은 뜻을 갖고 있다고 단언하기 힘들며, 만약 서로 다른 뜻이 한 글자로 통용되어 문맥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졌을 경우, ‘’, ‘’, ‘의 등장횟수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논어󰡕에서 각각의 개념이 갖는 중요성을 가늠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최남규는, 어원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을 의미하던 글자였으며 과 종종 혼용되었고, 󰡔논어󰡕에서 등장하는 仁德의 뜻을 함께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논어󰡕에서 이 쓰인 구문을 분석하면서 그것이 으로 대체될 수 없는 경우는 57번 등장한다고 결론 내렸다.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경우를 제외하기보다 대체될 수 없는 경우를 세는 까닭은, 전자의 결과가 모두 仁德으로 수렴되는지 확언할 수 없을뿐더러 후자의 결과가 더 엄밀하게 신뢰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위에서 이택용의 논지의 근거로 활용되었던 통계는 조금 수정될 필요가 있다.

한편 공자가 말한 내용 가운데, ‘과 관련된 사태 중 직접적으로 이 언급되지 않는 경우는 󰡔논어󰡕28번 등장한다. 공자가 에 대해 언급했다내지는 가치를 인정했다고 할 때, 그것이 과 관련된 사태를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생각하면 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하였던 경우도 위의 통계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자가 실제로 에 대하여 적게 언급했다고 단언하기 힘들다. 󰡔논어󰡕의 기자들이 공자의 언행 가운데 특정 개념을 선호하지 않고 균형 있게 기록하였다고 가정한다면, 우리는 공자가 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43, ‘인덕에 대해 57번 언급하였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논어󰡕에서 에 버금가는 비중으로 등장한다는 것을 확인했으며, 나아가 그것이 공자 사상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이때, 하나의 반론이 존재할 수 있다. , ‘드물게 말했다언급했다/가치를 인정했다는 상반되는 뜻이기에 기초적인 한문 문법 상 子罕言利與命與仁子罕言利與命與仁(강조는 논자)”이 되어야 위의 해석이 자연스럽게 성립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 경우에도 을 빈어賓語로 받는 을 받는 가 각각 허여하다그리고의 뜻으로 쓰인 점도 지적될 수 있다. 한 문장 내에서 같은 글자가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인 것이다.

이런 주장은 분명 유효하다. 그러나 󰡔논어󰡕 단편의 곳곳에서는 서로 상반되는 의미의 용언이 나올 때 없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으며, 비슷한 위상의 용언이 병치될 때에도 그런 경우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논어󰡕의 단편들이 형성될 때에 공자의 구어체 문장을 그대로 옮기려 한 데에서 비롯된 듯하다. 텍스트에서 가 쓰이거나 생략되는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이 들어가거나 생략됨으로써 문장이 말의 리듬에 부합하는지 여부가 주목된다. 둘째로 의 경우 학이편의 단편에서 한 단어가 서로 다른 뜻으로 쓰인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 자금이 자공에게 묻는 바, “夫子至於是邦也 必聞其政 求之抑與之(강조는 논자)”에서 밑줄 친 부분은 의문사로서 쓰인 반면, ‘다음에 쓰인 는 본용언으로서 기능한다.

앞서 논의한 바, ‘󰡔논어󰡕에서 다루어진 경우가 실제로 비대칭적이기에 이런 사실을 효과적으로 해석하려 할 때는 위와 같은 해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비록 이는 텍스트 내적인 분석이라는 한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만약 알려지지 않은 초기 파편들이 더 많이 발굴되어 공자 생전에 ’, ‘’, ‘이 실제로 동등하게 적게 언급되었다는 것이 밝혀지지 않는 한, 우리는 잠정적으로 위의 해석을 받아들일 수 있다. 그렇게 하였을 때 우리는 개념이 공자에 있어 개념에 비견할 수 있을 만큼의 무게와 중요성을 갖는다고 생각할 수 있다.

 

3. 󰡔논어󰡕에서 개념의 등장 양상

 

󰡔논어󰡕에서 개념이 직접 등장하는 경우를 유사한 의미 별로 분류하여 열거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A. 정치권력과 관련된 의미

A-1. “可以寄百里之命” (태백)

A-2. “君召命 不俟駕 行矣” (향당)

A-3. “使於四方 不辱君命” (자로)

A-4. “陪臣執國命” (계손)

A-5. “舜亦以命禹” (요왈)

 

B. 생사生死와 관련된 의미

B-1. “亡之 命矣夫 斯人也而有斯疾也” (옹야)

B-2.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선진)

B-3. “死生有命 富貴在天” (안연)

B-4. “見危致命 見得思義” (자장)

 

C. 운명運命과 관련된 의미

C-1. “五十而知天命” (위정)

C-2. “子罕言利與命與仁” (자한)

C-3. “賜 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선진)

C-4. “道之將行也與 命也 道之將廢也與 命也 公伯寮 其如命何” (헌문)

C-5.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계씨)

C-6. “不知命無以爲君子也” (요왈)

 

이는 앞서 제시한 이택용의 통계와는 차이가 있는데, 이는 앞선 논자가 인간이 주체가 되는 의 경우를 빼고 센 데에 비해, 여기서는 국정이 연루되지 않은 단순한 심부름이나 외침의 경우를 뺀 나머지는 모두 목록에 포함시킨 데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爲命裨諶 草創之(헌문)”와 같은 경우에 외교문서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다. 이에 따를 경우, 결론을 앞서 말하자면 위계적 관계에서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엇을 시키다라는 뜻과 멀어지게 되므로 이 논의와는 관련성이 적어지게 된다. 따라서 󰡔논어󰡕에서 의 등장 양상에 대한 논의는 위의 인용문에 한정한다.

은 본래 입[]으로 명령[]하다라는 뜻이다. ,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뜻이다. 이런 의미는 위의 인용문 묶음 A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 , 등을 포함하는 초월자가 인간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뜻 역시 있다. 이때, 의 구체적 내용은 인간의 노력과 의지를 벗어나 있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인용문 묶음 B생사C운명이 이에 속한다. 이는 특히 인용문 C-4에 잘 드러나 있다. 나라에 도가 행해지는 것도, 행해지지 않는 것도 공자는 모두 에 의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특히 나라의 정치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의미심장한데, 그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노력으로 정치가 나아질 수 있다고 본 반면, ‘가 행해지는 것은 그 노력을 넘어선 무언가가 작용해야 하는 것으로 보았다.

한편, 개인의 노력을 넘어선 어쩔 수 없는 것의 영역이 󰡔논어󰡕에는 더 보인다. 이는 그러한 사태에 대한 공자의 태도에서도 유추해볼 수 있다. 예컨대 인용문 B-2에서 공자는 안회의 이른 죽음을 그의 명이 짧은 탓으로 보면서 그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하늘을 원망하면서도 어느 정도 담담히 수용하는 모습을 보인다. , ‘에 의한 사태는 노력으로서 바꾸고 개선해야할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에 처했을 때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죽음과 운명뿐 아니라 부귀의 문제와 명예의 문제가 이에 해당한다. 모두 열거해보면 다음과 같다.

 

D. 부귀富貴와 관련된 사태

D-1.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可如 子曰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학이)

D-2. "不仁者 不可以久處約 不可以長處樂“ (리인)

D-3. “富與貴 是人之所欲也 不以其道得之 不處也 貧與賤 是人之所惡也 不以其道得之 不居也” (리인)

D-4. “放於利而行 多怨” (리인)

D-5. “賢哉 回也 一簞食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 不改其樂 賢哉 回也” (옹야)

D-6.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吾從所好” (술이)

D-7.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술이)

D-8. “貧而無怨 難 富而無驕 易” (헌문)

D-9. “君子固窮 小人窮斯濫矣” (위령공)

D-10. “君子謀道不謀食 (중략) 君子憂道 不憂貧” (위령공)

C-3. “賜 不受命而貨殖焉 億則屢中” (선진; 중복되는 인용문)

 

E. 명예[人之知己]와 관련된 사태

E-1.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학이)

E-2.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 (학이)

E-3. “不患莫己知 求爲可知也” (리인)

E-4. “夫聞也者 色取仁而行違 居之不疑” (안연)

E-5.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 其天乎” (헌문)

E-6. “君子病無能焉 不病人之不己知也” (위령공)

E-7. “君子疾沒世而名不稱焉” (위령공)

E-8. “年四十而見惡焉 其終也已” (양화)

 

이를 통해 볼 때, 우리는 󰡔논어󰡕에서 직접 언급된 사례 이외에도 공자가 과 관련된 사태에 대해 말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공자는 인용문 묶음 B, C의 경우 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한 반면, 묶음 D, E의 경우는 그와 관련된 사태만을 말하였을까. 한 가지 기준을 제시해보자면, 묶음 B, C는 군자 됨의 과정에 본질적인 것이고, 묶음 DE는 그것에 부수적인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는 인용문 D-10E-6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때, ‘부수적이라 함은 그것이 군자 됨의 과정에 핵심적인 덕목은 아니지만, 군자로서 살아가기 위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임을 뜻한다.

부귀의 경우, 군자는 부당한 방법으로 부를 좇지 않으나 부유함에 처했을 때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하며, 가난에 처했을 때 역시 그에 맞는 행동을 해야 한다. 어떤 행위가 특정 상황에 맞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인용문 D-9에 보면 소인은 곤궁함에 처했을 때 지나침[]이 있다고 말했는데, 이를 통해 볼 때 군자는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중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다. 그 구체적 덕목은 인용문 D-1D-8에도 나와 있듯, 가난에 처했을 때에 (사람이나 하늘을) 원망하거나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첨하지 않고 오히려 그 안에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며, 부유할 때에 교만하지 않고 예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즐거움과 예는 모두 가난함이나 부유함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자신을 되돌아보았을 때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다.

부유함과 가난함, 즉 생계의 문제는 인간을 옭아매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이다. 공자는 생계의 문제에 너무 주의를 기울일 경우 그것에 매몰되어 옳지 못한 행동을 범하기 쉽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을 돌아보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때 오히려 가난 속에서도 지나치게 괴로워하지 않을 수 있으며, 부유함 속에서도 지나치게 사치를 부리거나 부를 잃을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부터 군자다운 행동을 도모하지 않고 그것을 부정하거나 그것에 매몰될 경우 도리어 그는 가난 속에서 무너지고 부를 쉽게 잃을 수 있다(D-2).

남이 자신을 알아주는 것의 문제는 부귀의 문제와는 결을 달리 한다. 인용문 E-4에서 보듯 공자는 남에게 알려지는 것이 마치 교언영색巧言令色하는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한다. 공자는 오히려 남에게 알려지는 것을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자신이 남을 몰라주는 것을 걱정하며(E-2), 차라리 행동을 능히 하지 못함을 걱정하라고 말한다(E-6). 이것만 보면 공자가 명예의 문제를 군자의 길과는 완전히 무관한 것처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인용문 E-78의 내용은 이와 대비된다. 한편 공자는 󰡔논어󰡕 곳곳에서, 훌륭한 인격으로서 주변 사람을 감화시키는 것에 대해 자주 언급한다.

이 세 가지를 종합해 보았을 때 공자에게 남이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은 자신의 인격이 밖으로 드러나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준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다. 훌륭한 인격을 지닌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그의 인격에 감화되어 그의 이름을 높여줄 수 있으나 모든 상황이 꼭 그런 것은 아니며, 오히려 지극한 군자가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지극한 소인이 명예로워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 공자가 그의 삶에서 체험했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그는 사람의 인격이 그의 말과 행동에서 은은히 배어나온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널리 인정하고 높이 여겨주는 것은 개인의 노력을 떠난 일이라고 보았다.

그런 어쩔 수 없는사태에 직면하여 개인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소극적으로 남의 미움을 사지 않도록 스스로를 단속하는 일(E-8), 그리고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여 스스로 가야 할 길에 소홀해지지 않는 것이다. 비록 공자 자신의 말로 전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군자의 길, 의 길은 삶 안에서 끝나리라 생각할 수 없는 것이며, 그 점에서 우리는 생전의 평가보다 사후에 남겨질 이름이 더 중대한 것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E-7). 생전의 평가는 그 사람을 둘러싼 정치적 환경과 여건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반면, 사후의 평가는 그것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옳음으로서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III. 공자 사상에서 에 대한 인간의 태도

 

1. 부조리한

 

전통적으로 하늘의 명은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라 여겨졌다. 󰡔논어󰡕에서 우리는 인간의 목숨과 운명, 그리고 부귀와 명예가 의 영역에 속하는 것임을 확인했다. 공자 사상에서 은 인간의 윤리적, 인격적, 존재론적 경지의 완성이라는 모티프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의 군자학의 목표 가운데 하나인 하학이상달下學而上達이 그것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때, 인격적 완성은 한 순간의 초월transcendence, 황홀경ecstasy, 내지는 종교적 신성 체험과는 관련 없이, 오랜 시간 동안 예악禮樂과 시를 익히고 체화하는 과정 끝에 도달하는 경지이다. 이 점에서 공자의 사상은 종교적이라기보다 인문적이다.

이 점에서 을 대하는 공자의 태도는 춘추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종교적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 서주시대까지 사회통합의 기능을 수행했던 천에 대한 신앙이 기울고, 천의 탈인격화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흐름에서 실제 종교적 기능을 수행했던 의례는 공자 사상에서 한편으로는 인격 수양의 과정으로 흡수되었고, 다른 한편으로 민간인을 대상으로는 상례喪禮와 제례祭禮만이 중시되었다. 그것은 인간의 당연한 정의 발로라는 점 이외에도 사회통합의 기능을 가진 점에서 주목되었다. 한편 상제의 대상이 되는 귀신鬼神에 관하여 공자는 공경하되 멀리하라는 대답을 내놓았다(옹야). 이런 식으로 공자는 과거 천에 대한 신앙을 구성하던 요소들을 인간의 일로, 또한 인간의 일을 위하여 필요한 일로 전이시키고자 노력하였다. 󰡔논어󰡕에서 은 문맥 상 자주 등장하는 데 비해, 그 전통적인 짝이었던 이 드물게 언급되고 있다는 사실은 이런 노력의 반영이다.

그럼에도 󰡔논어󰡕에서 드물지 언급되지 않을뿐더러 공자 사상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나 과 같은 초월자의 개념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그 개념에 귀속되었던 현실적 사태는 여전히 발생한다. 공자가 인문적 견지에서 인간의 관할로 옮겼던 사태들은 그 가운데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에 의한 사태는 인간의 노력으로 가까워질 수는 있지만 닿을 수는 없는, 노력의 영역을 초월한 것들이다. 공자는 바른 정치, 백성의 안정적인 삶, 그리고 사회 통합 등 사회·정치적인 것들을 천의 영역에서 성공적으로 분리해 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앞서 다룬 죽음과 운명의 문제이다.

앞서 언급한 부귀와 명예의 문제는 사회·정치적인 것인 동시에 개인의 노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을 갖고 있는 모호한 영역이다. 노력하는 자가 부유해지기도 하는 반면 자공처럼 상업이 자신의 천직이 아님에도 (시세의 차이에 대한) 단순한 추측으로 부를 쌓기도 하고(인용문 C-3), 아첨하는 자가 명예로워지는 반면 공자 자신처럼 올곧은 자가 기용起用되지 못하기도 한다. 이런 모순은 마치 명과 떼어낼 수 없는 것인 양 환영처럼 등장한다.

죽음과 운명과 관련된 사태들에서 이러한 모순은 극대화된다. 안회와 같은 덕망 있는 인물은 왜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횡사橫死했으며(인용문 B-2), 백우伯牛와 같은 인물은 중병에 걸려 사망했는가(인용문 B-1). 이는 사마천에게서도 발견되는 중대한 문제이다. 백이伯夷·숙제叔齊와 같은 인물은 수양산首陽山에 숨어 고사리로 연명하다가 굶어죽고, 도척盜蹠과 같은 악인은 천수를 누렸는가. 이는 선한 자가 좋은 결과를 받고 악한 자가 나쁜 결과를 받는다는 기존의 천 주체의 정의 인식과는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한 천 사상이 만연하였던 때에 사람들은 위와 같은 일들이 예외적인 사례에 속한다거나, 성경의 욥기에서와 같이 새로운 논리를 개발하여 신을 옹호했다. 그러나 이는 모순 혹은 부조리 그 자체를 합리적으로 해결하거나 삶의 논리로 흡수하고 극복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지 부조리를 은폐하고 망각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운명의 문제를 다룰 때에 우리는, 비록 운명이라는 명칭은 필자가 자의적으로 붙인 것이지만, 그것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먼저 갖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논어󰡕의 구절들에서 그 구체적 내용을 추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앞선 인용문 C-3은 이에 대해 한 가지 비스듬한 빛을 던져주는 구절이다. , 자공은 명을 받지 않았음에도재화를 불렸다. (시세의 차이에 대해) 단순한 추측이 잘 맞아떨어지는 일이 많았다. 여기서 不受命이라는 표현이 주목된다. , 자공이 상업에 대해 명을 받지 않았다면 그의 추측이 잘 맞아떨어지는 일은 예외적이고 비상非常한 일이라는 것이다.

반대로 보면, 사람이 하늘이 그에게 명한 일을 한다면 그 일은 비상한 요행僥倖 없이도 이루어질 것이다. 인간중심적 언어로 표현한다면, 천명을 실천한다는 것은 인간에 내재된 본질을 실현하는 것이며, 이는 즉 자기실현의 과정이다. 인간이 자신이 세상에서 해야 할 바의 것, 능히 할 수 있는 바의 것을 할 때에 그는 마치 하늘이 도운 것처럼 그 일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운명의 부조리는 그것이 인간의 의식적 선택 내지는 결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결단 이전에 이미 주어진 것이라는 점에 있다. 그것은 인간에게 명에 따를 것인가 혹은 따르지 않을 것인가라는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보이지 않는 주체성으로 존재한다.

이 두 가지의 명이 서로 얽혀 새로운 부조리를 만들기도 한다. 하늘이 인간에게 세상에서 이루어야 할 일을 주면서도 그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기 전에 그의 목숨을 가져가는 일이 존재한다. 공자에게는 안회의 경우가 정확히 그러한 일이다.

한편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 운명 또한 󰡔논어󰡕에 등장한다. 인용문 C-4의 경우가 그러하다. 이 인용문의 앞선 문맥은 헌문편에 등장하는데, 인용문은 공백료를 자신의 힘으로 제거하려는 자복경백에 대한 공자의 반응이다. 공자는 자복경백에게 도가 실현되는 것도 실현되지 않는 것도 명에 의한 것일 뿐이니 괜한 움직임을 자제하라고 하는 것이다. 이때, 도가 실현된다 함은 자로를 참소한 공백료에게 벌이 내려지고 자로의 결백이 입증되는 것을 뜻한다. 공자는 이 일이 비단 공백료 개인에게 한정된 일이 아니라 더 높은 차원의 법칙에 따라 흘러갈 일이라고 본 것이다.

이 때의 은 개인을 넘어선 사회 내지는 역사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그것을 앞서 언급한 개인에게 주어진 본질로서의 운명과 대비하여 사태의 추이라고 이름 해볼 수 있겠다. 개인을 초월한 거대한 차원에서 역사를 이끌어 가는 것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에 부합할 때에 우리의 뜻을 이룰 수 있을 것이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거나 반할 때에 뜻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이 역시 인간에게 부조리를 던져준다.

 

2. ‘지명知命의 의미

 

앞서 논의한 바, ‘과 관련된 사태들의 의미를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목숨, 인간 내면적 본질, 사태의 추이(이것과 앞의 항을 묶어 운명이라 칭하였다.), 부귀, 명예[人之知己]. 우리는 이것들이 공통적으로 인간 개인의 노력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들은 그 앞에 처한 인간들에게 어떤 모순 내지는 부조리를 보여주는데, 이는 개인의 힘으로 해결해 버릴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러한 부조리에 당하여 인간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가장 원초적인 반응은 누군가를 탓하는 일이다. 인용문 E-1, 2를 비롯하여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음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공자가 남을 탓하지 말라고 경계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반응이기 때문이다. 부귀와 명예의 문제는 그 탓을 사람에게 돌릴 수 있다고 할 때, 죽음과 운명의 문제에 직면하여 사람들은 하늘을 원망한다. 그러나 하늘을 원망하는 것 자체는 부조리한 사태를 해결해주지 못한다. 그것 역시 문제를 덮어두는 일이다.

물론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사람들의 목숨이 위협받고 운명이 바뀌는 일은 분명 인간의 힘으로 극복해야 할 것이다. 공자가 바른 정치를 주장하는 배경에는, 그렇게 함으로써 전쟁을 막고 사람들의 평화로운 삶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넘어선 어쩔 수 없는 것들에 대해, 그 사태들을 단순히 합리화하거나 원망하지 않으면서도 반대로 그것들을 삶의 논리로 포용할 때, 우리는 더 건강하고 완성된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부유함이나 가난함에 처하여 공자는 그것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즐거움을 찾으라고 말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음에 처하여서는 그것을 통해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반성하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사람은 자기 자신의 시각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 더 넓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이때에 우리는 貧而無諂 富而無驕(인용문 D-1)”하거나 不患人之不己知(E-2)”한 소극적 태도에 머무르지 않고 貧而樂 富而好禮하고 患不知人한 적극적 윤리로 나아갈 수 있다. 이러한 적극적 윤리는 己欲立而立人(옹야)”하는, 지극히 인간적이어서 부조리하기까지 한 경지에까지 이를 수 있다.

죽음의 문제는 한 편의 짧은 글에서 가볍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앞으로의 논의 과제로 미뤄두는 편이 낫겠다.

한편, 어떤 길이 자신에게 맞지 않다고 생각될 때에, 셀 수 없는 노력을 바쳐 해온 일이 자신의 길이 아닌 것 같을 때에, 우리는 그것을 담담히 받아들일 수 있는가? 있다면, 어떻게 하면 그것을 더 나은 삶을 위한 양분으로 흡수해 낼 수 있을까? 공자는 생애 여러 번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럼에도 그 길을 좇다가 몇 번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도 사람인 이상 자신의 길에 회의를 느끼지 않았을 리 없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대화가 주목된다.

 

F-1. “子畏於匡 曰 文王旣沒 文不在玆乎 天之將喪斯文也 後死者 不得與於斯文也 天之未喪斯文也 匡人其如予何” (자한)

F-2. “子曰 天生德於予, 桓魋 其如予何” (술이)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첫째, 공자는 자신의 길에 대해서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요, 둘째, 그 신념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파악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김성기에 따르면 공자가 처했던 시대적 배경은 점복을 통한 受命의 패러다임에서 인간의 주체적인 知命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던 시기였다. 전자는 인간이 하늘로부터 특정한 명을 수동적으로 받아서 실천하는 것이라면, 후자는 하늘에 대한 신앙이 약해진 상황에서의 사태로서 인간이 스스로의 본질을 주체적으로 찾아가는 것에 가깝다. 전자가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늘의 이념을 현실화시킬 한 사람이 선택되는 것이라면, 후자는 누구든 자신에 내재된 가능성을 알고 실천하는 것이다.

위의 인용문을 통해 본다면, 지명知命은 곧 지기知己이다. 내가 세상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하며,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내가 누구인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때의 자기-앎은 논리적이라기보다는 직관적이며, 사변적이라기보다는 경험적이다. 그것이 직관적인 까닭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앎의 최종근거는 직관적 느낌이기 때문이다. 이 누구-물음에 대한 단순한 외면상의 파악은 정답이 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나의 행위와 나의 존재의 공명 내지는 일치를 반영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불일치는 현상적으로 마음의 꺼림, 집중執中의 소실消失 등이 될 것이다. 이는 󰡔중용󰡕에서 개념을 참조해 볼 수 있다.

지명이 경험적 판단인 까닭은 앞서 말한 행위와 존재의 일치가 경험적인 사태인 까닭이다. 공자 자신도 이것저것 많은 일을 해보았지만, ‘사문斯文의 계승자로서 배우고 그것을 가르치는 일 이외의 것들은 잔재주에 머무를 뿐이었다. 또한 공자가 오십 세에 이르러 지천명했다는 말을 본다면 그것은 어떤 직관이되 한 순간의 섬광 같은 직관이 아니라 오랜 경험의 축적 위에 세워진 직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이런 주관적 확신이 흔들리지 않고 유지될 수 있는 근거는 때를 앎에 있다. 앞서 사태의 추이로서의 운명을 살펴본 바 있다. 그것은 인간 집단의 힘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이지도 않으며, 또한 온전히 개인적인 것도 아니다. 역사의 흐름은 그저 그러한 것[自然]으로 주어질 따름이다. 여기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자신이 실현하려는 뜻이 그 흐름과 일치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나아가 그것이 일치하는 때가 언제이며 그렇지 않은 때는 언제인가 하는 것이다. 태백편의 天下有道則見 無道則隱 邦有道 貧且賤焉 恥也 邦無道 富且貴焉 恥也와 같은 문장에서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읽을 수 있다.

때를 안다는 것은 직관적이면서도 논리적인 것이다. 직관적이라 함은 사태의 추이라는 것은 인간사의 영역을 넘어선 무엇이기에 단지 어렴풋한 느낌으로 알 수 있을 뿐이라는 점에서 그런 것이고, 논리적이라 함은 그럼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의 연관성이 그 사태의 추이를 암시하기 때문이다. 때를 알고 그것에 맞추어 처신하기 위해서 사람은 당대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정확히 읽을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 파악된 사태의 추이가 자신의 뜻을 실현시켜 주기에 적합하지 않다면, 그는 숨거나[] 드러나는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고 그것을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공자의 경우가 그러하다고 말할 수 있다.

공자 사상에서 지명지기이며, 다시 그것은 주관적 확신이다. 이것은 과거 수명受命패러다임에서의 주관적 확신과는 달리 인간의 주체성이 짙게 반영된 것이며, 따라서 그 이상의 존재에 호소할 곳이 없는 운명이다. 명을 아는 자는 단순히 명을 받은 자와는 달리 세상의 부조리를 당하여도 그것을 자신 안으로 끌어들이며 따라서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는다(不怨天 不尤人).” 나아가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은 좀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끄는데, 공자 사상에서 그 경지를 이라는 상태로 이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바, 인격의 완성 혹은 자기 본질의 완전한 실현의 상태라 할 수 있다. 이는 심지어 천과 인을 모두 배제한 고독solitude의 상태를 전제하는 것으로서 군자의 길은 결국 자기 자신에로 돌아와야 비로소 완성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IV. 맺으며

이상 우리는 󰡔논어󰡕에서 개념의 위상과 등장 양상을 살펴보고, 그 의미를 따져 명에 대한 공자 사상에서 인간의 태도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논의하였다. “不知命無以爲君子也와 같은 표현에서 보듯이 공자 사상에서 개념이 갖는 무게감은 무시할 수 없는 것인데,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우리는 󰡔논어󰡕에서 개념이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살펴보았다. ‘󰡔논어󰡕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에 비해 명시적으로 많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인덕仁德’, ‘인정仁政등을 뜻하는 경우에 한정하고, ‘이 간접적으로 등장한 사례까지 함께 고려한다면 우리는 에 비해 결코 적은 비중을 차지하는 개념이라 말할 수 없다.

은 기본적으로 초월적 권위를 가진 등이 인간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뜻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 가리키는 사태나 상황 등이 개인 혹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을 유추했다. 이렇게 보았을 때, 󰡔논어󰡕에서 과 관련된 사태로 명시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죽음과 운명의 문제이고, 간접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부귀와 명예의 문제라는 결론을 내었다. 이때, 전자와 후자의 구분은 공자 사상이 목표로 하는 바 군자-됨의 길에 그것이 핵심적인가 부수적인가를 기준으로 한다.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뜻에 비추어 이 과거 종교적 함의를 띠었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하겠다. 그런데 신앙이 쇠퇴하였던 공자의 시대에 명은 다른 함의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공자 역시 어느 정도 종교적인 인물이었을 것으로 미루어지나, 그는 인간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정치의 문제로 명확히 구분하였고, 종교의례 또한 인간의 보편적 삶에 봉사하는 방향으로 조정하고자 했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이나 정치로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공자는 그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궁구하였다. 위의 네 가지 문제를 대함에 있어 공자에게서 보이는 태도는 공통적으로 자기로의 회귀내지는 자기화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운명의 문제를 다루면서 우리는 그것을 다시 두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첫째는 개인에 내재된 인간적 본질로서의 운명이고, 다른 하나는 사태의 추이 즉, 사회, 정치, 역사의 거대한 흐름으로서의 운명이다. 전자는 이 과거 가졌던 의미 가운데 하나인, 이 세상에서 개인이 지니는 사명使命이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적어도 공자 자신에게는 그렇다. 그런데 공자 개인의 삶을 살펴보았을 때, 그 사명의 실현은 번번이 좌절되고 실패할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공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의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를 보고 단순히 공자가 하늘의 사명에 대한 종교적 믿음에 경도된 것이었다고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점에서 앞서 인용한 요왈편의 구절에 등장하는 지명知命의 의미가 드러난다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은 즉 지기知己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것은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또 무엇을 잘 하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과거 수명受命의 패러다임에서 탈종교적인 새로운 사고 체계로의 이행이라고도 해석해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탈신비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앎은 직관적이고, 경험을 필요로 하지만 여전히 부정적 판단만을 허할 뿐 긍정적 판단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운명의 두 번째 의미에 대한 앎을 동반하지 않은 단순한 자기 확신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그것은 자신과 하늘을, 자신과 인간 세상을 대립시켜 후자를 원망하고 매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공자는 그러한 남 탓, 또 반대로 하늘과 세상을 정당화하고 자신을 비난하는 자기 탓도 아닌 새로운 건전한 길을 모색하였다. 그것이 바로 때를 앎이다. 자신의 뜻을 세상에 펴기 위해 사람은 사회 혹은 역사와 관계할 수밖에 없는데, 사회와 역사 역시 그 자신의 고유한 흐름을 갖는 존재라고 보는 것이다. 그 흐름을 운명이라, 혹은 때[]라고 부를 수 있다.

공자에게 군자의 길은 때를 읽고 그것을 앎으로써, 자신의 뜻과 때가 맞지 않을 때에는 은거하는 한편 말을 조심하고 행동을 대범히 하며, 그것이 맞을 때에는 밖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렇게 하였을 때 군자는 혹은 인격적 완성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 공자 사상의 목적은 그 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從心所慾不踰矩내지는 중용中庸의 상태라고 추측해볼 수는 있겠으나, 자세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룬다.

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인간적이고 또한 주체적이다. 이는 세계의 부조리에 마주선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완성된 태도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은 비록 공자 자신의 사상에 천착하면서 󰡔논어󰡕만을 그 분석 대상으로 놓아 다소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유가 사상 일반이 아닌 공자 개인의 사상에 조금 더 집중해볼 수 있었다. 이를 통해 발전시켜볼 수 있는 논의는 앞으로의 과제로 남겨두겠다.

 

 

V. 참고 문헌

 

󰡔논어󰡕

 

김성기, 선진유학의 본질을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한국유교학회, 󰡔유교사상문화연구󰡕 29, 2007.8, 5-63.

宋寅昌, 孔子天命思想에 대한 檢討, 한국유교학회, 󰡔유교사상문화연구󰡕 3, 1988.2, 159-206.

李澤龍, 「󰡔논어󰡕에서의 命論의 함의와 그 위상에 대한 고찰, 한국유교학회, 󰡔유교사상문화연구󰡕 47, 2012.3, 195-231.

최남규, 「≪論語자에 대한 再考(언어학적 연구방법을 통해), 중국인문학회, 󰡔중국인문과학󰡕 26, 2003.6, 4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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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겨울, 종교개혁사

 

종교개혁 이후의 이야기

-서유럽 근대 사상의 계보들-

 

I. 들어가며: 서유럽 사상의 흐름과

무언가를 이해하는 일과 수용하는 일은 사뭇 다른 일인 것 같다. 나는 서양인의 소설과 시와 철학을 읽고 그들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지만 과연 그것이 나에게 꼭 맞는 것인지에 대해선 항상 회의를 품었다. 그것은 종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마음속에 신전을 모시고 있더라도 그것이 꼭 예수 그리스도의 것일 필요는 없다. 나는 그것이 서양인의 정신사를 이루고 있는 사상과 인간의 계보에서 나의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들의 사상이 세계를 지배하고 일상 여기저기에 뿌리 내리고 있는 상황에서 나는 스스로를 찾아가고 굳게 서 있는 것에 대해 늘 불안하고 불편하다. 서양의 사상을 극복하는 일은 내게는 민족적 사명 같은 것이 아니라 내 실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의 관심은 서구의 사고방식을 읽고 이해하는 일에 뒤따라 항상 그것을 비판하고 극복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사실 수업 시간에도 서유럽의 발전이나 동양의 패배 등의 관념에 대해서 항상 불편함을 느꼈다. 그러나 어떤 사상에 대한 가장 좋은 비판은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그것이 나온 토양에 그것을 다시 위치시킴으로써 보편성이라는 환상을 제거하는 일이다. 수업에서 기독교를 다룰 때에도 이런 방법이 돋보였다. 나는 내 나름대로 종교개혁 이후의 유럽을 조망해보고 싶다.

 

II. 각자의 자리: 종교개혁 이후의 서유럽 사유

중세 말과 근대 초에 걸쳐 있던 종교개혁의 시기를 끝낸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의 영향력은 오스트리아로 축소되고, 영국과 프랑스가 또 다른 패권으로 부상한다. 여기서 기독교를 둘러싼 역사는 또 다른 분기점을 맞게 된다. 첫째로 두드러지는 점은, 종교가 사상을 포함했던 중세와는 달리 근대의 사상은 종교의 외피를 벗고자 했으며, 나중에는 사상이 종교를 포함하는 모양새를 띠게 된다는 점이다. 둘째로, 기독교 바깥의 사유가 서유럽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그것이 나중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기독교를 적대시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그들의 적과 하나의 뿌리를 공유한다.

가장 먼저 부상하였던 것은 루터, 칼뱅 등의 종교개혁 세력이었다. 외에 데카르트-스피노자로 이어지는 또 다른 흐름이 등장하며, 한편 부르봉 왕조의 절대왕정 하에서 기독교 자체를 부정하는 유물론적 경향이 계몽주의와 함께 부상했다.

 

1. 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 전통과 스피노자

먼저 데카르트(1596-1650)는 연금술과 신학을 포함하여 그가 프랑스에서 배운 모든 것을 회의하면서 네덜란드로 간다. 그에게 신은 분노의 신도, 사랑의 신도 아니고 다만 물질과 정신으로 나눠진 인간을 매순간 새롭게 창조하여 조화롭게 만드는 근거로서의 신이었다. 스페인에서 네덜란드로 건너온 유대인 상인의 아들인 스피노자(1632-1677)는 데카르트주의의 수정을 내세웠다. 그에 이르러서는 신과 세계가 하나가 된다.

그는 데카르트의 주장을 받아들이면서도 아퀴나스가 제시한 바, 최고 완전성으로서 또 최종 근거로서의 신의 개념을 계승한다. 그러나 그의 철학에서 핵심적인 것은 바로 내재성이라는 개념이다. 아퀴나스의 신학 속에서 우리가 신을 알기위해서는 우리 자신을 낮추고 그 너머에 있는 것을 보기 위해 지성을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러나 스피노자에게 신을 안다는 것은 우리의 내면의 욕망과 감정을 긍정하고, 동시에 내면과 세계를 직관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신과 인간이 분리되어 있던 구약시대, 한 명의 인간이 신이 된 신약시대를 넘어서 모든 존재자는 신의 양태mode이며, 거꾸로 모든 존재자가 하나의 신이라는 생각으로 나아간 것이다. 정치적으로 말해, 그에게는 교황이 필요 없다. 이는 칼뱅주의를 수용했던 네덜란드의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론이다.

한편 그는 종교개혁 시기에도 여전히 신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던 라는 장벽을 허물고, ‘구원을 기쁨과 사랑으로 바꾸어 놓았다. 대개 죄의식의 근원은 자신의 내면의 감정과 욕동 때문인 반면, 스피노자는 오히려 그것을 긍정함으로써 신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신에 대한 사랑만이 가장 고귀하고 드문 것이라고 말한다. 바꿔 말하면, 자신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 경계를 넘어 인류와 모든 존재자에 대한 사랑이 신에게 다가가는 길인 것이다. 스피노자의 신은 죽지 않는 나르키소스이다. 신과 인간이 분리된 상태에서 신에 대한 사랑은 다른 인간 집단에 대한 적대로 이어질 수 있다. 영화 <Kingdom of Heaven>에서 기독교 진영과 이슬람 진영이 서로 신이 이것을 원하신다하며 싸우던 장면이 연상된다. 어쩌면 그의 철학은 예수의 대속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 나와야 할 것이 뒤늦게 도래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피노자의 신-철학은 이데아가 이미 개별자 안에 내재해 있음을 주장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에 서 있다. 그럼에도 같은 전통 안에 있던 아퀴나스의 신학과는 달리 그의 철학이 교황청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었던 까닭은 다음에 있다. 아퀴나스의 신학은 초월적 신에 대한 지성적 앎을 강조한다. 그런데 인간은 모두 같은 정도의 지성적 능력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신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과 덜 아는 사람이 나누어지고, 이것은 카톨릭의 단계적 성직 제도를 정당화할 수 있다. 반면, 스피노자는 내재적 신에 대한 직관적 앎을 강조한다. 직관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교황청이 스피노자를 파문한 것은 정치적인 이유가 크다 하겠다.

요컨대 스피노자의 철학은 칼뱅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아퀴나스 전통의 결합의 산물이다. 그런데 후세에 미친 그 영향력은 크지 않다. 18세기 들어 상업의 중심지가 네덜란드에서 영국으로 옮겨간 까닭에 네덜란드의 국제적 영향력이 적어진 것을 원인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요소는 그의 철학적 정서가 주변국, 특히 영국과 프랑스의 정서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둘은 중앙집권체제를 유지했는데, 왕의 권위는 평등주의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

한편 독일의 라이프니츠, 그리고 헤겔이 그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후에 유물론의 뒤를 이은 기계론이 유럽을 지배할 때, 생명의 내재적 에너지와 자발적인 창조적 진화를 앞세운 베르그손(1859-1941)이 등장하여 이 전통을 계승했다.

 

2. ‘퓌지카전통과 경험주의, 프랑스 유물론

디드로와 달랑베르를 위시한 프랑스의 계몽주의자들은 데카르트의 심신이원론을 공격하며, 인간에게서 정신을 말하는 것은 또다시신을 인간의 주재자로 끌어들이는 꼴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인간의 주권을 말하기 위해 신을 부정해야 한다고 본 것이다.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공동 작업을 했던 1751-80년은 부르봉 왕조의 절대왕정이 극에 치닫고 있던 시기와 일치한다. 루이 14세 때 낭트 칙령이 폐기되면서 당대 프랑스에는 카톨릭을 내세운 중앙집권 체제에 저항하는 개신교도들이 거의 청소당하고 없었다. 또한 전통적으로 로마 교황과 게르만 황제가 서로 명분과 세력을 앞세워 자신이 고대 로마의 정통성을 이어받았다고 주장했던 구도에서 프랑스는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절대왕정에 대한 반대 세력이 반-카톨릭을 넘어 신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 네덜란드의 공기에서 신은 비인격적인, 세계 자체로서의 존재자였던 반면, 프랑스인에게 신은 곧 그들의 왕을 연상케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이들의 사고방식에 하나의 흐름을 더한 것은 이전 시기 영국에서 일어난 지적 발전이 아닐까 생각한다. 애초에 영국인들이 프랑스에 약 100년 정도 앞서 그들의 왕을 처형한 경험이 있을 뿐 아니라, 백년전쟁(1337-1453) 이후 두 나라가 독립적인 노선을 취했다고 해도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하면서 문화적 교류를 끊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 교황과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서로 로마제국의 정통을 내세우는 가운데 프랑스가 그 구도에 포함되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1300년대에 교황을 아비뇽에 가두는 등 아예 손을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반면, 영국은 특히 프랑스에 있던 영토를 상실한 백년전쟁 이후에는 이런 정통성 구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런 영국의 정치적 상황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영국에서는 일찍이 경험주의적 전통이 생겨났다. 베이컨(1561-1626)은 자신의 편견을 경계하며, 인간이라는 종의 눈도 의심하며, 말에 속지 말며, 권위를 맹종하지 말라고 우상의 비유를 들어 경고했다. 그의 주장은 이후 흄(1711-1776)에 이르는 영국 경험론의 기초를 닦았다. 한편 이는 우회적으로 성서가 아닌 전통과 권위에 의존하는 카톨릭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도 있다. 나아가 뉴턴(1642-1727)의 만유인력 법칙은 우주에 중심은 없으며, 어디든 질량이 있는 곳이라면 중심이 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비록 뉴턴 자신은 과학주의를 내세우거나 철저한 경험주의를 내세우지는 않았지만, 그 파급력은 서유럽 전역에 미쳤다. 뉴턴의 역학은 사실 이론 물리학으로서, 측정보다는 계산을 중시했다. 그런데 디드로와 달랑베르가 활동하던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연금술에서 화학으로의 전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화학은 경험적 측정으로부터 이론으로 나아가는 전형적인 경험과학이다. 이런 경향 속에서 칸트 철학의 뒷받침을 받은 뉴턴의 물리학이 적극적인 과학주의로 수용되었다. 이것이 앞서 언급한 당대 프랑스의 정치적 상황과 맞물려 프랑스에 유물론적 경향을 확산시키는 데에 일조했을 것이다.

앞서 네덜란드의 스피노자주의가 큰 사회적 파급력 없이 계승된 것과 달리 프랑스 유물론은 1789년에서 1848년에 이르는 혁명의 시대를 이끌어가기에 적합했다. 한편 유물론자들은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주의(코뮌주의commune-isme)를 구상했다. 한 세대 후의 유물론자인 마르크스가 비판했던 생-시몽(1760-1825)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처음에 기독교 비판을 들고 나왔던 유물론이 이상사회를 그려가는 데에 있어서는 기독교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몽은 아예 기독교적 형제애와 산업사회의 조직이 함께 어우러져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프랑스 혁명의 이념인 자유, 평등, 형제애 역시 종교개혁 시기에 등장한 그리스도인의 자유, 신 앞의 평등, 그리고 평등을 바탕으로 한 인류애인 형제애를 번안한 것으로 보인다.

 

3. 플라톤주의-아우구스티누스 전통과 루터, 하이데거

한편 루터와 칼뱅은 인간을 결여된 존재, 죄인의 영혼으로 파악했다는 점에서 플라톤주의-아우구스티누스 전통 안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전통은 마치 해저의 흐름과 같이 평소에는 잠재해 있다가 역사적 전환기가 오면 물의 흐름을 바꿔놓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대 아테네에서 플라톤이 그랬듯, 로마 말기의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랬듯, 중세 말기에 루터가 등장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와 루터는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았으며, 그 안에서 죄의 가능성을 보고 신에 대한 전적인 의탁을 말하였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죄와 악이 다만 의 결여라고 보았는데, 루터는 여기서 나아가 그 결여가 인간의 행위로 인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채워질 수 있다고 보았다.

루터가 발견한 근대적 자아는 라이프니츠(1646-1716)를 거쳐 칸트(1724-1804)의 자아 철학으로 이어졌다. 라이프니츠는 스피노자의 신--세계를 모나드라는 하나의 자아 안에 압축시켜 놓았다. 그리고 그 위에 서로 소통하지 않는 모나드 간의 조화를 주재하는 신을 또 놓았다. 칸트는 신이 없으면 인간의 도덕적 실천이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여기에 더해 영혼의 불멸이라는 플라톤적 개념을 요청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앎의 영역과 실천의 영역을 날카롭게 나누었다는 점이다. 그는 라이프니츠의 자페적 철학과, 흄의 경험론과 뉴턴의 물리학을 결합시켰다. 칸트는 과학주의를 인식론적으로 정당화하는 한편 실천의 영역에서는 과학주의를 거부했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행위의 준칙이 보편적 입법의 원칙이 되게 하라는 그의 정언명령은 근대의 십계명이다. 한편 그가 죽음 이후의 심판을, 그리고 심판을 주재하는 신을 요청한 까닭은 정언명령만을 가지고는 인간의 끊임없는 도덕적 타락을 막을 수 없다는 루터적인 깨달음이 담겨 있다.

이는 후에 후설(1859-1938)의 현상학으로 이어지기는 한편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그 적통은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1813-1855)의 실존주의이다. 신과 인간 사이에 성직자의 매개를 거부하였던 루터의 정신이 신 앞에 선 단독자라는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는 아브라함이 기독교 신앙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그의 신앙의 양상에서 찾는다. 늦게 얻은 아들 이삭을 번제 제물로 바치라는 신의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음성을 듣고 아브라함은 그것이 보편적 윤리와 대립하는 것을 느낀다. 그 대립에서 비롯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은 그 명령을 이해하려는 의지를 갖지 않고 다만 신에 대한 절대복종으로 결단하여 복을 받았다. 인간의 법은 인간의 법일 뿐, 개별적인 현존재에게 내려오는 신의 음성이 그것에 우선한다는 것이다.

20세기 말에 이 전통은 유물론으로부터 이어진 과학주의, 기계론과 맞서 인간성을 부르짖은 하이데거(1889-1976)의 실존주의로 거듭난다. 하이데거는 키에르케고르의 신을 내면의 목소리로 가져온다. 그것은 나의 존재 자체이며, 군집 속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한 불안을 잊고 안주하는 중성적인 대중(das Mann)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현실에 타협하고 싶은 욕구에 맞서 나 자신으로 곧게 서라라고 외치는 목소리이다.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이 신의 부조리한 음성 앞에서 두려워할 때, 하이데거의 실존은 죽음이라는 절벽에 서서 자신의 본래적 목소리를 듣는다. 오필리아의 묘지 앞에서 덴마크의 왕 햄릿(Hamlet the Dane)’이 되기를 결단한 햄릿처럼 말이다.

이 전통이 루터에서 하이데거로 오면서 가진 특징은 처음의 인간의 윤리적 결여가 키에르케고르에서는 동시에 존재적 결여이다가, 하이데거에 와서는 완전이 존재적 결여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루터는 인간의 윤리적 구원은 오직 믿음을 통해 가능하다 보았고,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적 구원은 오직 죽음 앞에 서서 본래의 자신을 회복할 때 가능하다 보았다. 그의 사상은 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알베르 까뮈(1913-1960), 장 폴 사르트르(1905-1980)로 이어져 세계를 흔들었다.

 

III. 나아가며: 순환하지 않는 순환

고뇌하는 인간, 스스로에게 부과한 양심이라는 짐에 허덕이는 인간, 죄책감과 우울과 죽음의 유혹으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는 인간;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사람들을 멜랑콜리커라고 불렀다. 그는 창조적인 분야의 뛰어난 인물들 가운데 이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인간상은 비록 주류적인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변화의 분기마다 등장하여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경우 헬레니즘 시대에 유행하던 쾌락주의에 반대했으며, 루터의 경우 중세제국이념과, 하이데거는 테크놀로지를 앞세워 인간성을 파괴했던 근대적 기계론과 맞섰다. 이렇게 보면 1517-1648년의 종교개혁은 직선적인 진보의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순환하지 않는 순환의 일부인지도 모르겠다.

비록 이들이 서유럽 사회의 주류는 아닐지라도 이들이 가진 정서, 특히 인간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은 서유럽 문명에 넓게 퍼져 있는 것 같다. 이것이 예수에서 아우구스티누스로, 루터로 이어지는 하나의 전통을 만들었고, 다시 루터에서 하이데거로 이어지는 새로운 전통으로 이어졌다. 근대 철학의 완성자라 불리는 헤겔(1770-1831)은 독일 이상주의라는 루터적 전통과 스피노자를 결합했으며, 마르크스(1818-1883)는 여기에 프랑스 유물론을 결합하여 세계를 뒤흔든 강력한 혁명이론을 만들었다. 그럼에도 그의 철학에는 여전히 형제애에 기반을 둔 인류애와 예술에 대한 흠모(예술은 플라톤적 전통에서 중요한 주제이다), 자유로운 인간성의 회복을 향한 강한 열망이 있다. 이 주제는 교회가 지배하던 서유럽 중세에서도 꾸준히 반복된 것들이다.

그럼에도 미국을 포함한 서유럽 문명은 자본주의의 폭주를 막지 못했고, 제국주의 운동을 통해 강제로 세계화가 이루어진 현대에 들어서는 그 모순이 가난한 국가에 집중되고 있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의 어두운 그림자가 처음에는 프랑스로, 다음은 독일로, 그 다음은 러시아로 향하면서 대폭발을 일으켰듯이 말이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것을 두고 죽음의 문화라 말한 바 있다. 현대의 천박한 자본주의는 서유럽 문명의 피할 수 없는 어두운 면이다. 그것은 사상사적으로 보면, 각 시대의 영웅들이 죽음을 끌어들여 삶을 정당화하고 긍정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 힘을 잃을 때쯤, 생명의 힘 옆에 환관처럼 비켜서 있던 죽음이 사회를 지배하기 시작한다. 예수가 버림받은 자들, 약자들을 향해 원수를 사랑하라고 설하였을 때, 그 말씀은 곧 압제자의 칼날에 깃들었다. 서유럽 사람들이 발달된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죽음을 버리고 삶을 취할 때, 그들이 버린 죽음은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를 향해 날아간다.

그리고 바로 지금, 여기의 우리들이 그 죽음의 문화의 한복판에서 고통 받고 있다. 150여 년 전,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마태복음 구절을 인용하며, 살아남은 자들을 위한 진혼곡을 지었던 브람스의 음악이 하나의 예언처럼, 위로처럼 들린다. 이 수업을 통해 나는 내가 서유럽의 고대와 근대에 대해 따로따로 알고 있던 것들에 중세의 이야기를 더하면서 그것들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는 방법을 배웠다. 이렇게 그들의 사상을 역사 속에 위치시켜 놓고 보니, 과연 그들의 사상 속에서 지금-여기의 문제를 극복할 완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 회의가 든다. 서양 문명의 옷을 입었어도 우리는 여전히 한국인이기 때문이다. 브람스의 진혼곡이 끝나갈 즈음이 되어서도 이 의문은 여전히 남아 앞으로의 숙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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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 주제는 "서구 기독교 역사에 대한 자신의 해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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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가을, 인식론Epistemology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 2장에 드러난 은유의 문제

 

1. 도전과 응전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뉴턴 가버·이승종, 1994, 이승종·조성우 역, 2010, 동연)2장인 "구조와 은유" 장에서 저자들은 은유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를 인용하면서, 은유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이해되어야 하는가를 다루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은유는 한 사물에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어떤 규칙을 어기고있으며, 따라서 논리적으로 볼 때 그것은 거짓된 문장을 구성한다(34-35).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의 두 번째 통찰에 따르면, 은유는 무능력이나 실수, 기만이 아닌 천재성의 소산이다(35). 저자들은 이 두 가지가 어떻게 함께 설명될 수 있을 것인지 질문한다.

우리가 흔히 받아들이고 있는 소박한 실재론naïve realism에서는 우리가 경험하는 사실의 세계만을 인정한다. 여기서 은유와 같이 사실의 연관에 위반되는 명제들은 모두 거짓이 된다. 그러나 이 거짓 명제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여전히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들이 있다. 이에 대해 저자들은 우리의 세계 안에 의미의 기준과 진리의 기준이 있으며, 그 각각을 규칙과 사실이라고 부른다(42).

그러나 여전히, 여러 가지의 규칙이 하나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규칙을 말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43). 여기서 저자들이 말하는 규칙은 기하학에서 도형을 수많은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처럼, 하나의 의미에 관여하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규칙인 것 같다. 뒤에서 저자들은 우리가 느끼는 가장 소박한 경험적 사실, 즉 의미를 규정하는 규칙이 세계 내의 관습과 제도 안에서 성립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후자의 규칙은 경험적이고 어떤 관습체계 내에서 고유한singular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여기서 구조주의가 등장한다. 구조주의는 의미의 체계를 차이가 지배하는 부정적 실재성negative reality으로, 진리의 체계를 사실이 지배하는 긍정적 실재성positive reality으로 구분한다(53). 이런 설명의 강점은, 구조 안의 차이의 고유성을 인정함으로써 우리의 관습과 제도를 이론에 담으면서 동시에 구조와 경험적 사실의 분리를 통해 유의미한 거짓 명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61-62쪽에 등장하는 것과 같이 동일한 음소구성, 동일한 낱말로 이루어져 있지만 경우에 따라 그 의미가 다른 말에 대해 구조주의는 해결책을 제시하기 어렵다.

저자들은 이런 은유의 도전을 회피하거나 부정하는 몇 가지 방식들을 소개한 뒤, 이 도전에 정면으로 응전하는 길을 선택한다. , 언어가 갖는 의미의 다섯 가지 다른 측면을 고려함으로써 은유를 둘러싼 기존의 혼란된 문제들을 정연하게 분류하면서 은유의 문제를 효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수단을 제시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첫째 문법적 측면은 낱말의 형식이 문장 구조 내에서 갖는 위치에 주목하며, 둘째 정의적 측면은 낱말의 쓰임이 관습 내에서 갖는 위치에 주목한다. 셋째 지시적 측면은 실재론적 발상의 결과로 보이는데, 이는 구조주의가 간과했던 점, 즉 어떤 의미는 부정적 실재성을 참고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통찰을 포괄하고 있다. 넷째 범주적 측면은 은유를 구성하는 주어와 술어 사이의 적절한 대응adequate respondence이 유의미성 판단의 기준이 된다는 입장이다. 마지막 상황적 측면은 하나의 발화를 둘러싼 상황이 유의미성 판단의 장field을 여는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74-79).

이런 통찰은 매우 중요한데, 왜냐하면 이 다섯 가지 기준을 통해 저자들은 은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음소, 낱말, 문장 등을 아우르는 여러 층위를 함께 고려해야 하며, 은유의 진리값을 결정하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 역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나아가 저자들은 은유가 텍스트일 뿐 아니라 제스처라고 지적하며(83), 은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말을 넘어선 것, 즉 사람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은유를 둘러싼 전통적인 논의들은 사실상 사람의 체취를 배제한 차가운 담론에 불과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저자들은 이에 대해 그간 언어와 유리되었던 삶의 지위를 복권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는 <논리 철학 논고>에 드러난 비트겐슈타인의 태도와도 일치한다. 은유를 삶과 분리된 과학Wissenschaft’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해결되건 간에 삶의 문제에 전혀 대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논고>, 6.52).

 

2. 원거리 사수

나는 이 논의가 시작되었던 최초의 지점으로 돌아가 보고 싶다. 왜냐하면 저자들이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정의했던 은유는 한 사물에 다른 사물의 이름을 부여하는 것이었던 반면, 논의가 진행되면서 언급된 은유의 사례는 이 정의에 완전히 포섭되지는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엄밀하게 말해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의는 제유 혹은 환유를 설명하기에 적합하다.

첫 번째 인용구에서 나는 사물의 이름을 옮기는 것 자체보다는 그 이름들 사이의 연관에 주목했다. 은유는 일차적으로 서로 다른 것 사이의 연관이다. “시인은 펭귄이다라고 말했을 때, 우리는 그것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일단 시인과 펭귄 사이의 연관을 가능하게 하는 그 무엇을 먼저 찾으려 한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가 은유를 언급하는 두 번째 인용구에서 천재성을 언급하는 것은 흥미롭다. 이에 대한 실마리는 "수면 속의 예언On Prophecy in Sleep"이라는 짧은 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멜랑콜리커들은 격렬성으로 인해 원거리 사수처럼 정확하게 활을 쏜다. 그리고 어느 한 순간에 급변할 수 있는 그들의 태도로 인해 그들 앞에는 연속해서 그 다음 이미지가 급속도로 다가온다.[각주:1]

 

여기서 멜랑콜리커란, 서양 고대의 4체액설 가운데 검은 담즙의 성향이 뚜렷한 사람들 일컫는 말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 정치, , 예술 등 창작을 하는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들이 하나같이 멜랑콜리커라는 사실에 주목하기도 하였다.[각주:2] 어쨌든 주목할 만한 것은, 뛰어난 창조성을 증명하는 천재적 은유가 탄생하는 과정이 마치 원거리 사수가 멀리 떨어진 과녁을 정확하게 맞히는 것과 유사하다는 그의 통찰이다.

주목할 것은 원거리정확함이다. 은유는 겉보기에 서로 유사해 보이지 않는 사물들을 엮어내어 의미를 창출한다. 그러나 사수가 쏜 모든 화살이 과녁에 명중하지 않듯,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과녁을 빗겨간 은유도 있을 수 있다. 예컨대 피자는 빈대떡이다라는 식의 비유는 그 둘 사이의 유사성을 쉽게 찾을 수 있기에 비교적 안정적인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내지는 못한다. 반면 시인은 펭귄이다라는 말은 조금 더 위험을 감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은유의 이러한 성공실패사이에는 깊은 간극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마치 과녁이 10점부터 2점까지의 스펙트럼으로 구성되어 있듯이, 어떤 은유는 유의미하지만 다른 은유보다는 못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것이다. 죽은 은유, 혹은 닳은 은유들이 그렇다. 예컨대 기분이 날아갈 것 같다는 말은 연장extension을 갖지 않는 기분이라는 개념을 날아갈 수 있는 무엇에 빗댄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예컨대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기형도, "오래된 서적")” 같은 종류의 시구를 보았을 때 느끼는 감탄을 똑같이 느끼지는 않는다. 혹은, “내 마음은 호수요,/그대 노저어 오오,(김동명, "내 마음은")”라는 시구는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하지만, 그 강렬함은 낯선 훌륭한 은유를 접했을 때만 못하다. 요컨대 은유의 유의미함과 무의미함은 본질적 차이가 아니다.

 

3. 사유의 모험

한 번 더, 연관의 문제를 생각해 보자. 이름과 이름이 만날 때, 실제로 우리 머릿속에서는 무엇이 만나는가?이미지. 자신 이외의 다른 것에 의해 정의define될 수 있으며, 따라서 그 형태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개념과는 달리, 이미지는 서로 구별되지만distinct 그 자체는 여전히 모호obscure하다. 개념이 원circle이라면, 이미지는 엷은 구름 뒤에서 자신을 은밀히 내비치는 보름달이다. 이미지는 느낌이다. 브람스의 음악을 들을 때에 느껴지는 견고함과 장중함은 다시 얼마든지 다른 말을 써서 표현될 수 있지만, 그 어느 것도 결코 나의 근원적 느낌original feeling을 완전히 표현해 낼 수는 없다.

이미지는 단신으로 만나지 않는다. 이미지는 늘 자신의 주변에 가까운 다른 이미지들을 몰고 다닌다. 그래서 확장된 은유extended metaphor가 가능해진다. “내 마음은 호수요,” 그러니 호수에 배를 띄우듯이 그대는 내 마음에 노저어오시오, 한다. 확장된 은유는 진부한 것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우리 일상의 위트나 지적인 농담들은 대개 닳고 닳은 은유를 기우고 덧대서 새 생명을 준 경우가 많다.

개념 사이에 난 길을 규칙이라 한다면, 이미지의 길은 질서이다. 전자가 식물세포와 같이 단단한 벽을 삼투해야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다면, 후자는 동물세포와 같아서 세포 자체가 움직여 다른 이미지에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질서는 관습과 제도의 한계를 받아들인다. 그래서 호수에서 뱃전에 다다르기는 쉽지만, ‘마음에 이르기는 어렵다. 은유metaphor는 질서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 넘나드는meta- 운동phora이다. 이미지의 자유연상을 통해 반성해보면, 머릿속에서는 외면상 비슷한 이미지들이 서로 가깝게 붙어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다. 원거리 사수의 은유는 산 넘고 물 건너 나의 반쪽을 찾으려는 사유의 모험이고, 그리하여 맺어진 유의미한 은유는 다른 은유에 비해 탁월한 것이 된다.

이렇게 이름들이 제 각기 자신의 질서를 이끌고 만나면, 그곳에 하나의 세계가 탄생한다. (앞선 자연주의의 세계를 자연세계라고 부름으로써 대별할 수 있겠다.) 옥타비오 파스가 훌륭한 예를 들고 있듯이, ‘태양과 만나 이 되며, 다시 태양은 빛나는 음식이 된다.[각주:3] 이것은 의 질서와 태양의 질서 각각 혹은 그것의 단순한 합으로는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의미의 출현emergence이다. 이렇게 질서와 질서는 서로 융합되고 보완하기도 하지만 서로 충돌하기도 한다. 예컨대 삶은 불치의 병이다라고 해보자. 이때, ‘이 갖고 있는 생명의 이미지와 이 가진 죽음의 이미지가 상충한다. 만약 후자가 강하다면 이 은유는 염세적인 말로 읽힐 수 있지만, 전자가 강하다면, 삶은 스캔들과 같고 고통으로 찼지만 오히려 그 고통 때문에 아름다워지는 그 무엇(폐병 때문에 아름다워진 서시처럼)이 될 것이다.

 

4. 하늘과 바다 사이

은유가 멀리 떨어진 이미지의 결합으로 유동적인 유의미성을 갖고,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다면, 이때 그 진리값은 어떻게 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본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 시대의 지배적 견해는 자연주의이다. 즉 의미는 자연 세계라는 단 하나의 세계의 일부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의미의 기준과 참의 기준을 모두 찾아야 한다는 것(42, 강조는 원문)

 

지금까지의 나의 논의와 자연주의의 강령doctrine이 모순됨을 나는 느끼지 못한다. 여전히 은유의 세계는 자연이라는 큰 세계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이때, 은유의 세계가 둘 이상의 원소로 이루어진 집합이라면, 자연세계는 그것의 멱집합power set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제 자연세계는 은유의 세계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으로서, 그리고 이 세계들이 서로 마주치고 충돌하고 또 결합하는 장으로서 존재하고 기능하게 될 것이다.

물론 수정의 여지는 있다. 저 강령에서 의미는 자연세계라는 집합에 속한 원소로 이해되고 있다. 그래서 의미의 의미론적, 진리적 근거가 자연세계에서 직접 찾아져야 한다. 전자의 문제는 다음 절에서 다루기로 하고 후자에 집중해 보자. 의미의 진리성의 근거가 자연세계에서 찾아져야 한다면, 두 가지 대안이 가능하다. , 하나는 각각의 의미가 자연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그것을 결정하는 구조주의적 방법이다. 이는 2은유의 도전절에서 그 난점을 드러냈다. 다른 하나는 각각의 의미가 자연세계에 직접 대응하는 것인데, 이런 소박한 실재론 역시 거짓 명제의 도전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이 두 문제는 의미를 은유의 세계에 속한 것으로 볼 때 해결될 수 있다. 은유는 자연세계에 다리를 내린 공중의 성이다. 하나의 세계를 창조한 은유와 그 결합된 이미지에서 뻗어나간 다른 가지들의 체계 안에서 새로운 은유는 그 결합의 적합성을 판단 받을 수 있다(의미의 범주적 측면). 이는 은유의 세계 안에서 은유들이, 혹은 언명들이 갖는 부정적 실재성과 긍정적 실재성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61-62쪽 장면 1에서 커밍스는 시인은 펭귄이다라고 말하면서 그 증거로 펭귄의 날개는 날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영을 하기 위해 있다는 것을 제시한다. 은유의 세계 안에서 이 증거는 실재 세계에 직접 손을 뻗는 것이라기보다는 은유의 확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때 시인 : 펭귄 = ? : 날개라는 관계가 성립한다. 이를 성립하게 하는 것은 구조이다. 한편 ‘?’의 정체는 날개가 가진 실재적 특성을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펭귄의 날개는 하늘을 날 수 없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시인은 자유로운 상상력을 통해 날 수 있는 에 비유되어 이해되었다(이 세계가 선별적으로 취한 기존의 관습). 이 관계를 통해 우리는 시인과 펭귄의 관계가 ‘?’날개의 관계에 대응되는 것이 적법하다는 사실을 이끌어낼 수 있다. , 이 세계 안에서 시인은 펭귄이다라는 언명은 참이다.

 

5. 너의 의미

어쩌면 장면 1에 제시된 은유의 세계를 만들어낸 최초의 이미지를 추측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펭귄의 날개에 대응하는 시인의 ‘?’를 통해 말할 수 있겠다. , 장면 1을 만들어낸 근원적 은유는 시인은 (더 이상) 날 수 없다.”에 가깝지 않을까? 그것의 표현 방식이 어찌되었든, 우리는 이와 비슷한 이미지로부터 커밍스의 파격적인 주장(!)이 성립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언명의 진리성 혹은 의미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가? 세계를 보는 눈은 세계 바깥에 있다. 따라서 세계 내의 논리로는 그 관점 자체를 정당화할 수 없다. 그것은 결과를 들어 원인을 설명하려는 오류이다.

분명 그것은 세계 내의 논리로는 파악되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발화자(혹은 발상자)인 커밍스 자신이 처했던 상황이나 그의 사상의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그것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 하나의 은유의 세계를 가능하게 만든 근원적 이미지는 자연세계에서 그 근거와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점이다. 이는 앞서 제시한 집합의 비유와도 얼추 맞아 보인다. 은유의 세계가 집합이라면, 자연세계는 멱집합이다. 멱집합에서는 본래 집합의 원소들을 아무리 조합해도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 하나 드러난다. , 공집합ø이다.[각주:4]

비유를 조금 더 밀고 나가면, 오직 자연세계만을 염두에 둘 때, 의미의 의미근거가 찾아질 수 없는 이유는 ZFC 공리계의 두 번째 공리인 정칙 공리axiom of regularity[각주:5], 즉 자기 자신을 원소로 갖는 집합은 존재할 수 없다는 원리에 의해 정당화될 수 있다. 의미의 의미근거 역시 공집합에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공집합은 그러나 어떠한 신비적인, 혹은 자연세계에 외적인 존재자가 아니다. 앞서 커밍스의 예에서 살펴보았듯, 또한 이 책 2장의 뒷부분에서 제시되고 있듯, 그것은 사람이다. 은유의 세계에 속하거나 그 세계 자체가 아니면서 그것의 의미를 가능하게 하는 무엇은 바로 사람인 것이다. 사람에 대한 고려 없이 은유의 세계는 주인 없이 하늘을 떠다니는 헬륨 풍선과 다르지 않게 된다. 한 번 보고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거기서 어떤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은유의 문제는 해석학의 문제로 이어진다. 물론 이때의 해석학은 딜타이 이후의 삶의 해석학이다. 삶의 체험과 표현의 이해를 중심 문제의식으로 삼는 이 해석학은 은유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딜타이 해석학이 갖는 객관주의적인 분위기를 떨쳐내기 위해 다음 두 가지를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 첫째는 이해의 대상이 되는 것은 나와 관련 없는 제 3자인 그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지대한 관심을 쏟는 내 앞에 선 여야 한다는 점이다. 이때 은유는 의 세계의 가까운 정도에 따라 그 유의미성의 정도를 가질 것이다. 둘째로 의 제스처는 의 관점에서 우선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다.[각주:6] 왜냐하면 은유의 진리성은 그것이 속한 세계 안에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6. 매듭짓기

나는 저자들이 은유의 문제를 통해 다다르고자 한 지점에 대한 개인적 이해를 통해 이 글을 구성해 보았다. 내가 파악한 바로 저자들은, 첫째 은유가 철학에 유해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참이며 또한 불가피하다는 점, 둘째 이를 통해 삶의 생명성과 에너지를 철학에 담아야 한다는 점을 역설하고 있다. 이는 책 전반에서도 드러난 점이기도 하다. 소박한 경험적 사실에서 출발하여 우리가 가진 자유와 판단의 권리를 철학적으로 옹호하려는 이러한 움직임에 나 자신도 매우 동조하고 있다. 하지만 그 방법에서 조금 차이가 있긴 한데,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 지점이 바로 은유의 문제였다. 저자들은 소박한 자연주의의 입장에서 우리의 경험적 삶을 하나의 거대한 세계 안에 위치시켜 논의를 진행했다. 그 결과 은유의 문제에 접근하는 데에 꽤 많은 우회로를 지나야 했고, 단순함을 추구했던 논의가 언어의 복잡성을 시인하는 데에 이르렀다.

이 논의가 본래 영미권의 독자들을 위해 쓰인 점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이 책의 논의가 갖는 효과는 어떤 파장을 일으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은유에 대한 언어 분석이라는 지점에 집중하느라 그 이상, 즉 삶의 문제를 다루는 데에서 부족함이 느껴졌다. 은유의 문제를 둘러싼 이 두 가지는 사실상 동등한 권리를 지니는 날개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은유가 창조하는 세계를 자연세계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이 문제에 접근하고자 했다. 세계라는 이미지를 통해 우리의 경험은 자연세계에 산발된 것 혹은 관습과 제도에 종속적인 것이 아니라 그 나름대로 견고하게 조직된 자율적 운동이라는 점을 부각했다. 오히려 이 세계는 관습과 제도를 자신의 관심에 따라 선택적으로 취하며, 때로는 그것을 위반하며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 운동의 근원을 따진다면, 우리는 몸의 느낌-이미지()와 상상의 운동(별자리를 만드는 것)과 마주칠 것이다.

이 상상을 통해 개인의 세계는 그 자체의 완결성과 진리성을 갖는 것으로서 정당화될 수 있으리라 본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의 말을 참으로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것이 표현하는 세계를 인정하는 것이 곧 그 사람의 고유한 삶과 실존을 인정하고 자연세계의 다양성을 보존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광인에게 태양은 폭력이다. 실제로 우리는 객관 혹은 객관성의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사람의 생각은 과학적으로 실증되어야 하며, 사람의 가치는 점수와 자격증으로 증명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 속에 살아야 한다. 나아가 그 누군가의 목소리가 나를 지배해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 사실의 문제가 의미의 문제에 앞서며 오히려 그것을 무화無化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고유한 실존은 설 자리를 잃는다.

한편, 미처 해결하지 못한 문제도 있다. 61-62쪽에 등장하는 장면 1과 장면 2의 차이에 대한 논의가 그것인데, 사실 장면 2의 경우 나는 상징symbol’ 개념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왜냐하면 장면 1에서 시인펭귄은 둘 다 추상적 이미지로서 기능하는 반면, 장면 2에서 시인펭귄이라는 구체적 대상과 관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상징은 질서가 하나의 이름에 압축되어 다른 세계에 들어간 뒤, 그 다음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장면 2에서 시인은 우선 펭귄을 지시하는 말로 인식된 뒤에, 그 의미를 드러내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시인과 펭귄의 관계는 은유적인 관계와는 다르다고 나는 보았다.

이 문제뿐 아니라 다른 여러 주제들도 이 글이 이 책 2장의 내용을 온전히 담아냈다고 말할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일로 남겨두고, 이만 이 글을 줄이고자 한다.


  1. Aristoteles, On Prophecy in Sleep(in; Parva Naturalia), in; The Loeb Classical Library, trans. by W. S. Hett, London and Cambridge, 1964. 464a33-464b6 이하, 김동규, "멜랑콜리 – 이미지 창작의 원동력", <철학탐구> 제 25집, 2009, 119-149, 143쪽에서 재인용. 한국어 번역은 김동규. [본문으로]
  2. 김동규, 위의 논문, 127쪽 참조. [본문으로]
  3. Octavio Paz, The Bow and the Lyre, trans. by Ruth L. C. Simms. Austin and London: University of Texas Press, 1973. p. 24 [본문으로]
  4. 집합론을 활용하는 이런 발상의 근거를 알랭 바디우, <존재와 사건>, 조형준 역, 새물결, 2013에서 발견하고 배운 것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본문으로]
  5. ZF2. 기초 공리axiom of foundation이라고도 불리며, 다음과 같이 형식화된다. . 즉, 자기 자신과 서로소disjoint인 원소만을 자신의 원소로 삼을 수 있다는 말인데, 뒤집어 말하면 자기 자신은 자신의 원소로 삼을 수 없다는 말과 동치이다. [본문으로]
  6. 이해의 관점의 문제에 관해서는 이승종, 「여성, 진리, 사회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철학적 시론-」, 『철학연구』 Vol. 33, 2007 참조.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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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인터스텔라>는 서구적인, 나아가 미국적인 상상력을 현대 과학과 기술을 통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의 첨단에 서 있다. 그러나 그 무의식에 흐르는 서유럽 전통은 이 영화를 진부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했다. 특히시간에 대한 그들의 뿌리깊은 의식에 나는 주목했다. 초반 영화의 줄거리를 이끌어가는 프로젝트의 이름은 ‘Lazarus’, 즉 예수에 의해 부활의 기적을 체험한 나사로의 이름을 따왔다. 전 지구가 사막화되고 해마다 병충해가 휩쓰는 가운데 식량이 부족해지고, 사람들의 모든 관심과 역량이 생존에 집중되는 상황이었다. 인류 차원에서죽음이 임박하는 가운데 소수의 과학자들이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인류를 부활시킬 계획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이 일에 참여하게 된 주인공 쿠퍼가 기약 없는 탐험(?)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가족에 대한사랑’, 특히 딸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었다.

 

죽음과 사랑이라는 이 사태는 서로의 중력장 안에서 서로를 끌어당기며 회전하는 펄서pulser와 같이 한 번씩 번갈아 등장하며 영화의 줄거리를 짜 나간다. 인류의 구원을 위해 우주로 떠난 이들이 토성 근처의 웜홀을 통해서 맨 처음 도착한 곳은 물로 뒤덮인 행성이었다. 이곳에서 이들은 동료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곳에서 지구 시간으로 23년을 보내고 돌아온 그들은 부족한 연료로 남은 두 후보 행성 중 한 곳을 선택해야 했을 때, 사랑과 이성reason 사이에서 갈등한다. 결국이성을 선택한 그들의 기대는박사의 기만으로 배신당한다. 하지만 달리 보면, 죽음이 임박한 그 행성의 환경에서 탈출하고 살아남기 위해 데이터를 조작하는 일은 만 박사에게이성적인선택이었다. 생존을 위해서그러나 생존을 앞세운 이성이 충돌할 때, 오직 죽음만이 그들을 기다린다. 이성이 가져오는 파국을 뒤로 하고 쿠퍼와 아멜리아는 각자의 사랑의 장field로 갈라졌다.

 

사람들은 이어지는 블랙홀 내부 장면을 영화의 복잡한 갈등을 한 번에 잘라버리는기계장치 신Deus ex Machina’으로 이해했다. 실제로 이 장면은 정말 뜬금 없이 등장해서는 영화 내내 불가능할 것으로 비쳐졌던 플랜 A를 극적으로 성공시켰고, 심지어 과학적으로도 상식에 어긋난다. 그러나 영화의 논리에 따르면, 이 장면은 불가피했다. 영화 초반에 등장한 대사오직 중력만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전달될 수 있지가 여기서는오직 사랑만이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지로 변주된다. 이 지점에서 시간(시공간)과 중력의 대립은 죽음과 사랑의 대립으로 치환된다. 중력이 시공간의제약을 뛰어넘듯, 사랑이야말로 죽음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생각이 담겨있는 것이다. 주인공 쿠퍼는 딸 머피에게 비밀스러운사랑의 언어로 그 열쇠를 건네주었다시간이 멈추는 곳에 사랑과 생명이 있을지니.

 

여기까지만 보면 이 영화는 훌륭하게 진부한 헐리우드 블록버스터 한 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단순한 블록버스터보다는 더 신선하게 만들면서, 한편 다른 방향으로 또 진부하게 만든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것은 앞서 언급한 죽음, 사랑, 시간, 중력 등을 다시 하나로 묶어내는 논리, 멜랑콜리Melancholy의 상징이다. 서유럽의 지적 전통에서 태초로부터 슬금슬금 제 모습을 드러내던 멜랑콜리가 <인터스텔라>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과시했다. 주인공 일행이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 통해 갔던 곳, 토성은 고래로 점성술astrology에서 멜랑콜리를 상징하는 행성으로 알려져 있다. 통상우울내지는우울증으로 알려진 멜랑콜리는, 이 글의 주제인 시간과 관련해서 보자면, 항상 죽음과 직면하고 있는 기분 내지는 상태를 의미한다.

 

항상 죽음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미래를 향해 있던 모든 주의와 의식이 과거와 현재, 그 중에서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어둠 같은 이 순간으로 철회되는 것을 말하며, 내면의 공허와 모든 것의 무의미에 짓눌려 있는 것을 말하며, 눈먼 분노와 자책 가운데 심지어 고통을 욕망하는 상태를 말한다. 실재가 어떻든 간에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끝, 사라짐, 마지막을 계속 의식한다. 멜랑콜리에게 시간이란 단지 죽음으로 가는 여정을 의미할 뿐이며, 하루를 산다는 것은 죽음에 하루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가리킬 뿐이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지 않게 될 때, 시간은 가고 순간moment은 멈춰버린다.

 

그래서 멜랑콜리는 초월을 꿈꾼다. 시간의 흐름에 의미가 닳아 없어지지 않을 진리를 원하며, 공허한 존재를 가득 채워줄 아름다움을 원한다. 플라톤의 대화편들에서부터 등장하는 이러한 가치 가운데서도 으뜸은 사랑eros이다. ‘에로스의 원래 뜻은 서로 다른 것들을 끌어당겨 하나로 만드는 것이다. , 만유인력이다. 모든 의미와 아름다움과 선함을 잃고 세상에서 외따로 떨어져 있는 자기 자신을 끌어당겨줄 어떤 것을 원하는 것, 또 그러한 다른 이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이다마치 블랙홀 속의 쿠퍼와 지구의 머피처럼. 플라톤은 우리의 영혼이 에로스를 통해 점점 더 높은 상태, 이데아에 가까운 상태에 이르면 육체를 벗고, 즉 시간의 제약을 넘어, 죽음을 넘어 영원한 아름다움의 세계로 초월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인터스텔라>에서 이런 원형적 사유는 가감 없이 드러났다.

 

문제는 현실에 있다.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가—‘사랑하라, 내일 죽을 것처럼’? 놀란 감독이, 혹은 그 누가 되었든 혼자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존중한다. 그러나 타인에게 그 생각이 미치면 조금 곤란해진다. 얼음 행성에서 만 박사가 쿠퍼에게 그렇게 강조했던생존본능이 바로 그 직접적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생존본능에 충실히 따랐던 합리적인 만 박사는 더 없이 부끄럽고 처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다윈의 진화론을약육강식’, ‘적자생존으로 받아들였던 그 정신상태가 지금 평범한 우리네 삶을 이렇게 각박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지적할 수 있다. 내일 죽을 것처럼 살라는 메시지가 대단한 교훈인 것처럼 메스컴에 떠돌며, 그 육화incarnation인 스티브 잡스가 영웅처럼 숭배 받고 있다. 실재가 어떻든 간에 당장에 모든 것이 망해버릴 위기가 눈 앞에 항상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말한다. ‘밀러의 행성에서처럼 1시간을 7년처럼 써야 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숭고한 죽음의 파도 앞에 서게 된다. 멜랑콜리에게 생존본능은 삶을 향한 욕동impetus이고 투쟁이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것은 삶의 모든 의미와 아름다움을 퇴색시키고 무화(無化)하는 칼날이다. 죽음을 극복하려는 자의 논리가 죽음을 조장한다.

 

중요한 것은 시간관이다. 물론 멜랑콜리에 대한 공감이나 반발은 논리와 이성 이전의 영역이기는 하다. 그러나 논리와 기분은 또 상호작용하는 측면이 있어서, 이미 널리 퍼진 서유럽적, 종말론적 세계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다른 시간관의 가능성은 유용할 것이다. 서유럽의 멜랑콜리한 시간관의 대척점에 서 있는 것으로 힌두의 시간관을 꼽을 수 있다. 흔히 순환적 시간관으로 알려져 있는 이 관점은 한 삶의 끝과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맞닿아 있다. 또한 <성경>에서 천지창조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수천 년에 지나지 않는 반면, 힌두에게 우주는 43 2천만년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로 다가온다.

 

이 말을 본 이는 바로 이렇게 반박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거대한 시간 속에서 나 하나의 삶과 죽음쯤은 거대한 도서관 가운데 떨어진 티끌 하나와 같이 미미한 것 아닌가? 이렇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정당화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두 가지의 핵심은 단순히 삶이 순환하며 우주가 장구하기 때문에 삶에 집착을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열쇠는 시간의 경계를 의식하지 않음에 있다. 오직 그 시작과 끝을 생각할 때 43 2천만년이라는 시간은 위압적이고 심지어 숭고한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볼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은 그 가운데 100년도 안 되는 일부에 지나지 않으며, 장구한 우주의 역사의 시작이나 끝에 대해서는 어떠한 암시도 포함하지 않는다. 또한 여기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날카롭지 않다. 서유럽 시간관에서 죽음은 나의 존재가 심연 속으로 사라져 흩어지는 절벽과 다르지 않다. 그들에게 죽음은 영원한 형벌이며, 삶은 기약 없는 집행유예이다. 그러나 힌두에게 이 생과 다음 생은 연속적이다. 시간을 흐름에 비유할 때, 힌두의 시간은 죽음을 개의치 않고 도도하게 흐르는 것이다.

 

나는 심정적으로 이러한 시간관에 동의할 수 있다. 삶이 순환한다거나 우주가 43 2천만년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시간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 말이다. 실로 우리가 서유럽 시간관에 동의하는 것은 삶과 죽음이라는 부동의 사실로부터 우주를 유추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의미의 차원에서 보면 삶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영혼이 불멸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태어남과 죽음은 경험할 수 없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는, 기억 속에 남지 않게 되는 그러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시작도 끝도 분명하지 않은 순간과 순간의 흐름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끝을 의식한다면 우리는 유한한 삶 안에 더 많은 시간을 우겨 넣고 싶은 의욕에, 또 사회에서 주어진 그러한 의무에 시달리게 된다. 내가 볼 때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1시간을 7년처럼 '아껴 쓰는' 것도 아니고, 반대로 7년을 1시간처럼 보내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 역시 양면성을 갖는다. 순간의 감정과 순간의 의욕과 순간의 요구에 충실하게 따라 산다면 분명 삶은 풍요로운 의미의 도원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방향성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인도 사람들에게 그러한 일관성을 부여하는 것이 카스트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시간관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은 또 다른 위험을 낳을 수 있다. 그러나 서유럽적인 세계관에 깊이 물들어 있는, 그 속에서 고통 받는 우리 입장에서 또 다른 세계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위로가 될 듯하다. 누구나 사람답게 살 권리가 있으니 말이다.

 

이리하여 <인터스텔라>의 포스터를 다시 본다. 영화관에서는 잔뜩 몰입해서는 울며불며 보았지만, 막상 영화의 캐치프레이즈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라는 문구를 보니 그것에서 배어 나오는 미국적인 무엇이 가슴 속에 괜한 반항심을 만든다. 또 최근 나는 '사람답게 사는 것'에 관심을 갖고 나의 머리 속을 점령하고 있는 온갖 생각들을 하나하나 시험대에 올려보고 있다. 시간에 대한 생각은 그 가운데에서도 중요한 것에 해당했는데, <인터스텔라>를 통해 훌륭한 계기를 얻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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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학년도 가을, 한국사학입문

 

금석문 연구와 상상력

-하일식 1996의 논리구조 분석을 통해 금석문 연구에서 상상력의 역할 보기-

 

 

이 글에서는 하일식 1996, 1997, 2003, 2005 네 논문을 검토한 뒤, 그것에 나타난 논리구조 분석을 통해 고대 금석문 연구에서 상상력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를 탐구할 것이다. 흔히 역사는 사실의 탐구이기 때문에 상상력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지만, 오히려 상상력 없이는 역사연구가 진행되기 어렵다. 하지만 상상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환단고기> <규원사화>와 같은 책들의 주장까지 인정하게 되어 사실의 문제에 충실하기가 어렵다. 사실 탐구와 상상력은 서로 반대되는 듯하면서도 보완적인 관계인 것인데, 나는 상상력이 엄격한 사실 탐구의 과정과 양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보이기 위해 특히 논증 과정이 복잡하고 다채로운 하일식 1996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지면의 제한 상 네 논문을 다 다룰 수 없기에, 이 논문을 분석하면서 다른 세 논문에 나타난 사례를 덧붙이는 식으로 진행할 것임을 밝힌다.

우선 하일식 1996에 나타난 논리의 주요한 흐름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창녕 인양사비에는

 

(1) 다양한 해에, 다양한 사찰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작업들이 적혀 있다.

           1) 그 가운데 연대가 착오된 기록이 보인다.

                     (i) 작성자가 비문을 급하게 새겼을 것이다.

                                - ‘同年이라는 표현이 불규칙하게 사용된다. (뒷받침)

           2) 대부분의 기록은 인양사에서 행해진 작업을 새긴 것이다.

                     (i) 인양사비가 일종의 기념비일 수 있다.

                                - ‘기념과 무관한 사업도 발견된다. (반증)

                                - 굳이 771-810년만을 대상 삼을 이유가 불분명하다. (설명가능성)

                     (ii) 인양사의 재정지출을 적은 비일 수 있다.

                                - 이를 굳이 비석에 적을 필요는 없다. (배타성)

                                - 1)-(i)을 통해 비문에 앞선 저본이 있음을 확인했다. (정합성)

                                - 僧像 좌측면 존재이유를 설명하지 못한다. (설명가능성)

(2) 비문 머리에 標題 있다.

           1) ‘順表□’는 사람의 이름일 것이다.

                     - 施食, 入食 등의 주체는 인양사가 아닌 제 3의 개인일 것이다.

                                - 본문에서當寺가 아닌인양사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뒷받침)

                     - 771-810년만 대상 삼은 것과 승상, 송의 존재가 해명된다. (설명가능성)

                     - (1)-1)-(i): 주인공이 入寂 뒤 급하게 비를 세운 것이다. (정합성)

∴ 창녕 인양사비는 인양사에 있으면서 많은 절에 佛事 등을 벌였던 상당한 재력의 소유자가 입적한 뒤 그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일 것이다.

 

저자는 비문 판독을 통해 얻어진 파편적인 정보들을 통해 그것이 나오게 된 배경을 하나하나 짚어보고 있다. 그 주요한 방식은 각각의 정보들로부터 그것이 포함된 더 넓은 상황적 배경을 추측해보고 그것을 검증하는 것이다. 첫째로, 추측은 제한된 가능성 안에서 이루어진다. (1) 2)에서 저자는 예컨대, 인양사비가 개인적인 기록을 목적으로 하였다든지 하는 추측을 배제하고 있다. 물론 이 예시가 너무 터무니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다시, 이것이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생각되는 까닭은 碑文 갖는 일반적 성격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가 추측한 바, 인양사비가 기념비 혹은 재정지출기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은 비문의 일반적 성격이라는 범위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일식 1997 5-11쪽에서는 귀족, 왕족에 대한 포상 기사에 나타난 범위 내에서 所內 성격에 대한 추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일식 2003 135-143쪽에서는 당대 비문에 인명이 기록되던 관행에 비추어 元千毛主 정체에 대한 추측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일식 2005 22-25쪽에서는 菁堤 왕 개인, 왕을 배출한 가문, 왕이라는 공적 지위 가운데 어느 것에 속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세 가지 가운데 두 번째는 특히 원성왕을 기점으로 지증왕계가 내물왕계로 대체됐던 당대 신라 왕실의 계보에 대한 이해가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비문 혹은 어떤 지역이 처했던 상황에 대한 이해는 추측의 범위를 제한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창의적인 새로운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둘째로, 이 추측들은 여러 방법으로 검증되고 있다. 하일식 1996에 등장한 방법을 분류 해보면, 크게 반증, 설명가능성, 배타성, 정합성으로 나누어볼 수 있을 것이다. 반증이란 하나의 파편적 정보에서 출발한 추측이 다른 부분과 충돌할 때 그 추측을 기각하는 것이다. 설명가능성은 하나의 부분에서 출발한 추측이 다른 부분까지 설명할 수 있음/없음을 나타낸다. 배타성은 (1)-2)-(ii)에서 한 번 발견되는데, 재정지출기록은 비문이 아니라 종이에 기록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도 수행될 수 있으므로, 인양사비가 재정기록이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유보하는 것이다. 정합성은 하나의 추측과 다른 추측이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하나의 체계 안에 공존할 수 있음을 말한다. 이렇게 공존하게 된 추측들은 그것을 포괄하는 더 상위의 가설을 기다린다.

하일식 1997에서는 소내가 대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속하는 것도 아니라는 점, 그리고 보다 앞서 적히면서 더 많은 포상을 받았다는 점을 포괄하여 설명하기 위해 그것이 왕실 직할지였다는 소결론을 내놓고 있다. 하일식 2003에서는 元千 혹은 元千毛 관직명일 것이라는 추측을, 다른 비문에 나타난 관례와의 정합성을 통해 기각하고 있다. 이때, 중요한 것이 관문성 명문석의 제작연대인데, 저자는 앞서 명문석에 나타난 자의 字形 다른 비문들에 나타나는 변화의 연속성 안에 있어야 한다(정합성)는 원칙을 통해 7세기 후반을 비정했다. 하일식 2005에서는 菁堤 536년 이전에도 왕실 직할지였다는 추측을, 병진명 뒤편의 정원명과의 정합성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금석문 연구에서 주로 사용되는 방법은 정합성과 설명가능성임을 알 수 있다.

하일식 1996은 이러한 추측과 검증의 방법을 통해 비문에 등장하는 모든 부분들을 포괄하여 설명할 수 있는 가설을 골라내고 있다. 이 논문에서 최종적으로 도출된 가설은, 이 비문이 인양사에 있던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세워졌을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가설이 세워지고 나면 앞서 다소 추상적이고 모호하게 제시되었던 추측들이 구체적인 형태로 재조직된다. 예컨대 (1)-2)-(i)는 그저급하게라는 상황만을 강조하였지만, 이것이 (1)-2)-(i)의 두 번째 요소와 만나서 비문의 주인공이 입적한 직후의 상황으로 구체화되었다. 또한 (1)-2)에서는 비문에 기록된 많은 사업들이 상당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고만 제시되었지만, 가설이 도출되고 난 후에는 비문의 주인공이 상당한 재력가라는 상황으로 구체화되었다. 여기에 더해 그가승려였다는 사실에 입각하여, 그 재산이 개인이 모은 것이라기보다는 선대의 유산일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 성립하였다. 하일식 2003에서는 元千毛 食邑主였다는 가설을 통해 서울과 지방 사이에 서로 다른 표기 관행의 차이( /受地 受作)가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금석문 연구는 탁본 등의 방법을 통한 글자 판독 이후, 내용의 부분들로부터 추측을 던지고, 그것을 반증하거나 증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았다. 특히 사료가 처했던 구체적 상황에 대한 추측은 조금 더 추상적인 상황 이해에 의해 제한을 받지만, 과감한 추측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검증이란 추측에 대한 검증이기 때문에, 추측 없이는 성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 오히려 추상적인 상황 이해로 인해 더 창의적인 추측이 가능해지기도 한다. 이는 앞서 보인 바와 같다. 검증의 과정은 이렇게 투사된 상상력의 결과를 논리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실증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더 정합적이고 적용 가능한 가설이 도출될 수 있다. 얼핏 반대되어 보이는 상상력과 논리성 내지는 실증성이 실은 이렇게 주고받는 작용을 통해 더 유효한 학설을 내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도출된 역사상은 텍스트에 엄밀하게 충실한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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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애도, 역사

영화 「러브레터」를 보고

 

기억은 무서운 병이다. 그러나 오직 기억만이 그것을 치료할 있다.


문장을 해명하기 위해서 나는 조금 길을 돌아가고 싶다.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사랑하는 사람, 관심을 기울이던 대상, 혹은 그런 관념을 상실했을 사람들은 가지 정서적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1] 사랑하는 대상의 상실이라는 아픈 사태를 마주하여 고통스럽게 낙심하며 바깥 세상에 대해 관심을 끊는 것은 모두에게 공통적이지만, 어떤 이는 나아가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마저 저버린 나머지 부끄러움 없이 자신을 비난하고 처벌한다는 것이다. 단순한 슬픔에 처한 사람들은 잃어버린 대상에 주었던 관심과 정신적 에너지를 다시 되찾아 새로운 대상을 사랑할 있게 된다. 하지만 프로이트가 애도작업(Trauerarbeit)이라고 부르는 과정에 실패하는 사람들은 우울증에 빠져서는 공허한, 사랑할 없는 자아를 끌어안고 고통에 허우적댄다.


실상 애도작업이란 잊어버리는 일이다. 사랑하는 이의 형상이 자꾸 떠올라 자신을 괴롭히는 일에서 벗어나고, 그를 잃어버린 것이 자신의 부도덕과 추함 때문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극복해 내는 일이다. 그와 관련된 기억들을 다만 좋은 추억으로 묻어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일이다. 그것은 장례(상례와 제례) 같이 어떤 특수한 의식(ritual) 통해서, 혹은 단테가 『신곡(La Divina Commedia)』을 쓰면서 그러했듯 사랑하는 이를 상상 속에서 기억하고 변형하고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킴으로써 할 수 있다. 조금 더 일상에 가깝게 생각해 보면, 친구들끼리 모여 헤어진 연인에 대한 자신의 애증을 이야기하면서 묵은 감정을 풀어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사랑했던 대상을 특별한 방법으로 기억함으로써 그를 잊는 길들이다. 상실은 소통의 단절이다. 말하고 싶었지만 하지 않은, 할 수 없던 것들, 전하고 싶었지만 아직 품고 있던 감정은 상실이라는 사건 이후 내면에 고여 썩기 전에 내보내야 한다.


영화에서 이런 애도는 크게 세 갈래로 드러난다. 첫째는 주인공 와타나베 히로코가 죽은 연인 후지이 이츠키()을 마음 속에서 떠나 보내는 과정, 둘째는 후지이 이츠키()의 어머니와 할아버지가 이츠키()를 병원으로 데려가며 폐렴으로 죽은 그녀의 아버지를 기억하고 화해하는 장면, 마지막으로 후지이 이츠키()가 히로코의 부탁으로 이츠키()의 옛 모습을 회상하면서 자신의 과거를 아름답게 다시 기억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모든 계기에는 이츠키()가 중심에 있다.


영화 초반, 히로코가 죽은 이츠키() 두고 동시에 중학교 동창인 시게루 아키바와 가까워지는 사건은 히로코의 내면에 갈등을 유발한다. 아직 충분히 애도되지 않은 이츠키에 대한 책임감이 그녀를 붙잡았을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도 이츠키의 주소로 보낸 편지에 답장이 왔다. 그것은 이츠키의 중학교 동창이자 동명이인인 후지이 이츠키() 보낸 것이었는데, 이를 알고 히로코는 그녀에게 자신의 애인에 대한 기억을 공유해달라고 한다. 이를 통해 히로코는 자신이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그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이 알고 있던 그의 모습을 이츠키() 기억을 통해 확인함으로써 위안받는다. 결국 히로코는 아키바와 함께 이츠키() 조난을 당해 죽음을 맞이했던 산으로 가서 끝내 그에 대한 슬픔을 털어낸다. 이것이 유명한 오겡끼데스까( 지내나요)? 아타시와 겡끼데스(나는 지내요)!” 장면이다. 지내나요-나는 지내요를 반복함으로써 히로코는 자신 안에 쌓인 이츠키() 대한 묵은 감정을 해소한다. , 이츠키() 자신의 기억을 공유해준 것이 히로코에게 과거를 털어낼 용기를 것으로 보인다. 덧붙여, 마지막 장면의 장소에서 히로코와 아키바 일행은 이츠키() 조난될 당시 함께 있었던 3자인 중학교 동창의 집에서 하루를 묵는다. 아키바와 그가 이츠키() 마지막 순간에 불렀던 노래를 계속 흥얼거리는 것은 그들 나름대로 이츠키를 기억하고 애도하려는 노력일 것이다.


겉으로 때에는 위에 적은 번째 갈래의 애도가 영화의 줄기를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번째 갈래의 애도, 과거에 대한 기억과 망각을 영화에서 읽을 있다고 본다. 이츠키()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에서 등장한 책이 있다. 바로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1922)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이다. 한 번은 두 이츠키가 도서부 활동을 할 때, 다른 한 번은 그녀가 아파서 학교에 못 나왔을 때 그가 그녀의 집으로 찾아가 책을 한 권 준 장면에서 나왔다. 장면 구성의 비중으로 보았을 때 사실상 이 영화의 시간은 대부분 이츠키()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 할애되었다. 실제로 히로코의 부탁을 받아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회상하는 첫 장면에서 이츠키는 그 과거가 별 것 없다고 말했지만, 이후에 이어진 장면들은 그런 판단과는 상반된 것을 증명했다.


한 사람의 과거에서 유용한 일이 거의 없다는 말은 달리 말해 그 사람의 기억이 제대로 소화되지 못한 채 현재와 단절되어 있는 것이다. 잃어버린 시간이다. 어떤 시간의 기억이 현재의 나와는 단절된 채 있다면, 그것은 곧 내가 그 기억에서 어떠한 현재적 의미도 찾을 수 없으며 그 안에서 현재의 나를 이루는 어떤 전조도 발견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시간이라는 관점에서 나는 서로 소통하지 않는 부분들로 분열되어 있으며, 이는 나 자신에 대한 슬픔과 애도를 불러 일으킨다. 이렇게 되면 삶의 희망은 별 쓸모가 없게 된다. 실제로 이츠키()는 잦은 감기에 시달리고 당장 아버지를 폐렴으로 잃었으면서도 병원에 가려는 의지를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이런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특별 처방은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먼저 서로의 가치를 조건 없이 인정함으로써 삶에 활력을 찾는다. 하지만 본격적인 애도는 그들이 서로 자신의 생각과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같은 점과 다른 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그럼으로써 사랑하는 이들은 자신의 과거가 자신에게 가치 있는, 어떤 큰 시간의 한 부분으로서 기억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를 때 스스로에 대한 애도는 일단락된다. 비록 이츠키가 거친 과정은 직접적인 남녀 간의 사랑에 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이는 개인의 차원에서도 그러하지만 역사의 차원에서도 유효한 같다. 역사는 기억의 일종이기 때문이다. 외른 뤼젠(Jörn Rüsen, 1938-현재) 브루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 역사를 바라보는 방식을 분석하며 그것을 애도작업으로서의 역사라고 말한 있다.[2] 역사적 단절이 생기는 변화에는 항상 고통받는(suffering) 사람들이 생기기에 마련인데, 그들을 기억하고 역사라는 하나의 전체 속에서 그들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진정한 인간성의 회복으로 향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뤼젠이 대표적인 예로 드는 것이 아우슈비츠의 기억이다. 실제로 독일인들은 기억을 처음엔 덮어두려 하다가 나중에는 그것을 끊임없이 기억하고 애도하며 극복해 나아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렇게 기억은 실천이 되고, 새로운 역사를 동력이 된다. 우리의 역사에서도 끊임없이 기억해야 부끄러움들이 있다. 친일파 문제, 전쟁성노예(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문제 기억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애도 없는 망각은 부끄러운 일이다. 기억은 오직 기억으로만 치료될 있다.



[1] 이하 문단의 논의는 지그문트 프로이트, 윤희기 ,「슬픔과 우울증」,『무의식에 대하여』, 열린책들, 1997, 247-270쪽을 참고하였음.

[2] 이하의 논의는 Jörn Rüsen, 2005 “Historical Thinking as Trauerarbeit”, History: Narration—Interpretation—Orientation, New York: Berghahn Books, pp. 147-162 참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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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ric Poetry

20 June 2014

 

Bird Images in Canto One of “Pale Fire” and Mysticism Poetics

 

1. Introduction

“Pale Fire” is a poem consisting of four Cantos, and also a part of bigger book Pale Fire (1962), which is a novel written by Vladimir Nabokov the author of Lolita (1955). This novel is completely delivered by an imaginary voice of Charles Kinbote, who is a literary critic and at the same time a neighbor of a poet John Shade. John Shade is a main character who is told to be an exile from the northern kingdom of Zembla, and who is the writer of the poem in the novel.

This poem is written in heroic couplet, of 999 lines divided into four Cantos—and supposed 1000th line is identical to the first. In this retrospective work, John Shade writes on his life and his ambitious life-long pursuit towards “survival after death”[1] (Canto Two, line 169), which he delusively thinks everyone but he knows and others conspire to hide from him.

Amongst, Canto One (lines 1-166) is about his early life before he knows of the survival after death. Here appear numerous examples of symbol of bird, which attracted my attention. Traditionally in western literature, bird, especially nightingale represents an image of melancholy poets, especially in Romantic era[2]. This is well shown in John Keats’ poem “Ode to a Nightingale” and Percy Bysshe Shelley’s “Ode to a Skylark”, that “a poet is a nightingale who sits in darkness and sings to cheer its own solitude with sweet sounds. (Shelley)”[3]

Nabokov himself intends ‘pure literature’, relatively indifferent to participations towards social problems or questioning moral or ethical problems existing, as he says “a work of art has no importance whatever to society. It is only important to the individual.”[4] His Lolita was of this perspective, and so is Pale Fire. Closely reading the Canto One of “Pale Fire”, I hope, would give a more specified view of his on art and literature. It will be carried through the variations of symbolism of bird in this Canto. In this paper I would like to analyse these symbols in aspect of art composing.

 

2. Form and Meter

“Pale Fire” is composed in heroic couplet, in iambic pentameter. This implies that the poet, John Shade considers himself as a heroic character. This will be discussed later. The meter of the poem seems to support this assumption, in that iambic pentameter is generally understood as similar to the rhythm of routine speech, contrary to tetrameters which represent more musical rhythm as in ballad form and nursery rhymes. It is also used at significant and crucial monologues of main characters in Shakespeare’s poetic dramas, like that of Act III Scene 1 in Hamlet.

Secondly, when we closely skim the poem, we can figure out that enjambments are so frequently used that we can scarcely encounter end-stopped lines. Actually, excluding the last lines of each stanza, we can only find only 24 end-stopped lines in Canto One which consists of 166 lines. This causes the reader to follow the lines in a hurried tempo as if he the author speaks with a nervous heart. However, thinking oppositely, we can understand that the poet wanted to mark some specific statements as significant, in each end-stopped line midst each stanza. These lines contain specific information about the speaker, as of his identity, his parents or his belief. For example, the first couplet “I was the shadow of the waxwing slain/By the false azure in the windowpane. (lines 1-2)” or “I was an infant when my parents died. (line 71)” and “My God they died young. Theolatry I found/Degrading, and its premises, unsound. (lines 99-100)”, these make the readers to slow down at the end of each line, who had been running on through the lines busily, and let them remark the statements there. This fact could be interpreted as a strategy of this long-length poem to give weight to some lines that contain important contents.

 

3. Hero and Heroic Melancholy

Above I mentioned melancholy heroes. However here we should be careful to distinguish between melancholy figure and melancholy hero. Generally we think of Oedipus of Sophocles, Hamlet of Shakespeare, Satan of Milton’s Paradise Lost and captain Ahab of Melville’s Moby Dick as typical heroic characters. Of their common characteristics we can say roughly three: first, one could be called a hero when one pursues not one’s own interest but what one values most, e.g. justice, beauty, fate and love. And secondly, in the course of the pursuit, one encounters one’s counterpart, or say, enemy. Lastly, the action or behavior of a character should represent a specific value(s) that could be sympathized and accepted as universally valid.

They are also said to be, but more than normal melancholy characters. However, Melancholy in general is, in cultural context, understood as “a sad thoughtful state of mind; pensiveness.”[5] Melancholy characters have outstanding faculty of reasoning as of Hamlet, are monomaniac as captain Ahab, and are bound to think of origin and end, especially essence and death of men, world, and universe i.e. everything—these are also the main themes of “Existenz” philosophy. These factors are together obviously presented in Canto Two of “Pale Fire.” Though deliberate analysis of these lines is not of interest in this paper, they are worth citing here for showing the melancholy of this poem.

 

There was a time in my demented youth

When somehow I suspected that the truth

About survival after death was known

To every human being: I alone

Knew nothing, and a great conspiracy

Of books and people hid the truth from me.

 

There was the day when I began to doubt

Man’s sanity: How could he live without

Knowing for sure what dawn, what death, what doom

Awaited consciousness beyond the tomb?

 

And finally there was the sleepless night

When I decided to explore and fight

The foul, the inadmissible abyss,

Devoting all my twisted life to this

One task. Today I’m sixty-one. Waxwings

Are berry-pecking. A cicada sings.

 

“Pale Fire”, Canto Two, lines 167-182.

 

As we can see, the speaker is a monomaniac character who believes there exists “survival after death” but everyone “hid the truth” from him, so that his life was “The foul, the inadmissible abyss” to “explore and fight” for all his time. He thinks it is hardly sane to “live without/Knowing for sure what dawn, what death, what doom” is waiting for him.

This exploration had taken place from his “demented youth” to the age of “sixty-one.” Though we cannot call him a hero, we could say that the speaker is somehow ‘heroic’, as he had pushed ahead his melancholy to such extremity though his confrontation against those who hid the “survival after death” remained imaginary till the end of this poem.

 

4. Bird Metaphor and Forlorn Melancholy

The symbol of bird is the kernel of Canto One, sophisticatedly built up with numerous bird-metaphors, each representing different meanings. To list all the bird metaphors in Canto One here: line 1(waxwing), line 24(pheasant), line 63(mockingbird), and again line 131(waxwing). Metaphors related to birds appear in: line 72(ornithologists), line 79(preterist) and line 106(cage). Here I would like to show that these bird-metaphors are together indicating the speaker’s three different aspects.

 

4.1. Waxwing: Forlorn Solitude

Waxwing is a common bird species in the United States. The speaker of the poem lives in New Wye, Appalachia, U.S.A.(as shown in Canto Two, line 250) The commonplaceness of this bird makes a vivid contrast to the rarity and ethereality of Nightingale or Skylark which are the symbol of Romantic poets. This will be discussed later.

The speaker claims that he “was the shadow of the waxwing slain/By the false azure in the windowpane. (Canto One, lines 1-2)” This bird is assumed to have tried to fly off the cage adoring the azure brightness of the sky, but fails to escape, being crashed into the window. This metaphor is quite abject and even self-depreciating. It needs close interpretation. In the core of this metaphor lies the solitude(which is also a significant keyword to melancholy) of the speaker. He says:

 

I was an infant when my parents died.

They both were ornithologists. I’ve tried

So often to evoke them …

 

Lines 71-73

 

And Then,

 

My God they died young. Theolatry I found

Degrading, and its premises, unsound.

No free man needs a God: but was I free?

            

             Lines 99-101

 

Ornithologist is who studies birds. Common birds would be of no interest for them. The speaker feels alienated from his parents in that supposedly they gave little attention to their child, and critically, they “died young”, when the speaker “was an infant.” The fact, immediately, caused his belief in God(theolatry) to become “degrading” and “its premises” to seem “unsound.” Precisely what premise that the religion presupposed here is not clear.

This feeling of loneliness is closely linked to its consequence, that the speaker thinks he is not free, “most artistically caged. (line 114)” Cage is an extended metaphor that came from the original metaphor of waxwing, a bird. In Canto One, there appear various lines that depict sceneries from his home and around. However, the boundary is not wide. From the first stanza the speaker starts from a view from his room, then snowy outdoor scene, to the lake and the “Lake Road to school (line 43)”. Then he comes to his old house, never to mention any scenery outside.

Of his narrow range of activity we can say that his ‘problem’ is somehow related to it. At first we might come up with his illness:

 

                           A thread of subtle pain

Tugged at by playful death, released again,

But always present, ran through me. One day,

When I’d just turn eleven, as I lay

Prone on the floor and watched a clockwork toy—

A tin wheelbarrow and pushed by a tin boy—

Bypass chair legs and stray beneath the bed,

There was a sudden sunburst in my head.

 

Lines 140-146

 

In this pain he experiences:

 

And then black night. That blackness was sublime.

I felt distributed through space and time:

One foot upon a mountaintop, one hand

Under the pebbles of a panting strand,

One ear in Italy, one eye in Spain,

In caves, my blood, and the stars, my brain.

There were dull throbs in my Triassic; green

Optical spots in Upper Pleistocene,

An icy shiver down my Age of Stone,

And all tomorrows in my funny bone.

 

Lines 147-156

 

His forlornness is also well presented in his past living with his aunt Maud (line 86) after his loss of both parents. However, she was no complete substitute for his parents or his model to learn from, as he writes she was “dear” yet “bizarre (ibid.)” with “grotesque growths and images of doom (line 89).” The words here at the Index of a open verse book support this: “Moon (line 94)” for lunatic, “Moor (line 85)” for barren land and “Moral (ibid.)” for spirit or mentality; and moor and moral together point out that the mental state of aunt Maud (or furthermore John Shade himself) was quite desolate. As Freud puts:

 

The melancholic displays something else besides which is lacking in mourning—an extraordinary diminution in his self-regard, an impoverishment of his ego on a grand scale. In mourning it is the world which has become poor and empty; in melancholia it is the ego itself.[6]

 

4.2. Mockingbird: Empty Self and Mannerism Life

This state of life would have made him feel dull and bored. All his interest became his picture book (line 105) and celestial things in the book and in the sky, as constellations (“the Great Bear”; line 120) and Milky Way (line 126). These were what built up his spiritual ‘world’ of his youth. (lines 105-106)

But those would be not enough to fulfill his emptiness. The metaphor of mockingbird seems to demonstrate his early mannerism life. It is dramatically presented when the speaker revisits his old home. In that scene he encounters a mockingbird echoing “all the programs she had heard (line 64)”, “rasping out (line 66)” some fragments she remembers and then “Returning to her perch—the new TV (line 70)”, as if he witnesses his own early life at the very moment of reminiscence.

However, when we carefully grope in dark around the first and third stanza, we find there is a possibility that the speaker had not at all been entirely anchored in that dull living. It can be found in ‘fancy.’

 

And from the inside, too, I’d duplicate

Myself, my lamp, an apple on a plate:

 

Lines 5-6

 

Whatever in my field of vision dwelt—

An indoor scene, hickory leaves, the svelte

Stilettos of a frozen stillicide—

Was printed on my eyelids' nether side

Where it would tarry for an hour or two,

And while this lasted all I had to do

Was close my eyes to reproduce the leaves,

Or indoor scene, or trophies of the eaves.

 

Lines 33-40

 

In these lines, words as ‘duplicate (line 5)’ and ‘reproduce (line 39)’ are remarked. These are the evidence that the poet has a faculty of fancying and he had made it as a part of his world. But just copying the world outside into inside?

 

4.3. Pheasant: Lunatic Creativity of Imagination

That seems not the case. Scenery of falling snow the speaker is amazed at is described in the first stanza and then continues through the second. There appears our pheasant:

 

Whose spurred feet have crossed

From left to right the blank page of the road?

Reading from left to right in winter's code:

A dot, an arrow pointing back; repeat:

Dot, arrow pointing back...A pheasant's feet!

Torquated beauty, sublimated grouse,

Finding your China right behind my house.

Was he in Sherlock Holmes, the fellow whose

Tracks pointed back when he reversed his shoes?

 

Lines 20-28

 

These lines can be understood as an implied allusion to Ted Hughes’ “The Thought Fox (1957).” In both, an animal, symbolizing creativity, had passed through the snow, the “blank page”, and the speaker only discovers the foot prints and traces its tracks. It is clearer in those lines above, that the “feet” of an animal “have crossed” “the blank page” of winter snow “from left to right” in a hurried, “spurred” feet. The speaker but figures out that the foot prints are of an ethereal bird that has “Torquated beauty (a ring-shaped shade around the neck)” and is a “sublimated” one.

Then alluding Sherlock Holmes, he curiously asks: “Was he in Sherlock Holmes, the fellow whose/Tracks pointed back when he reversed his shoes?” ‘He’ here is a killer who committed the crime in the snow-covered mountain cottage and then disappeared without any trace left behind. The fact was that, on the way back down he reversed his shoes and trod the very prints that were made on the way up. Alike, the speaker says the trace of the pheasant is not of easy pursuit.

In the context up to here, the pheasant can be viewed as a faculty or an aspect in the poet John Shade. However, unlike the other two metaphors i.e. waxwing and mockingbird, the pheasant is depicted as rather mystical one. He can only see the track left behind that allows no chase after it, as its feet are “spurred.” The move of imagination, the poet himself could not get any hint of it. It is lunatic.

At this point of analysis, we could say that the pursuit towards the mad imagination is what made John Shade live. His grave confrontation against death here will be mentioned, as art survives any death, it is a fertile fountain of meaning. Melancholy makes people solitary, and then makes them feel deep nothingness, deficiency and meaninglessness of the world and their ego, following Freud above. The struggle to find out the meaning and essence in their life often chooses its way to the art. In this respect we can understand Shakespeare’s obsessive pursuit towards immortality and other people like John Keats or Jean Paul Sartre and so on. John Shade is one of them.

 

5. The Mysticism Poetics against Romantic Scheme

I insist here that the image of the pheasant is John Shade’s, furthermore Nabokov’s view on Imagination which is a sole true origin of poetry composing. This becomes clear when we refer to the following excerpt from Canto Four:

 

I’m puzzled by the difference between

Two methods of composing: A, the kind

Which goes on solely in the poet’s mind,

A testing of performing words, while he

Is soaping a third time one leg, and B,

The other kind, much more decorous, when

He’s in his study writing with a pen.

 

In method B the hand supports the thought,

The abstract battle is concretely fought.

The pen stops in mid-air, then swoops to bar

A canceled sunset or restore a star,

And thus it physically guides the phrase

Toward faint daylight through the inky maze.

 

But method A is agony! The brain

Is soon enclosed in a steel cap of pain.

A muse in overalls directs the drill

Which grinds and which no effort of the will

Can interrupt, while the automaton

Is taking off what he has just put on

Or walking briskly to the corner store

To but the paper he has read before.

 

Canto Four, lines 840-860

 

Here the poet conflicts between abstraction (method B) and agony (method A), but soon he raises the hand of the latter. The muse in the poet’s head “directs the drill” of inspiration like the “spurred feet (line 20)” of a pheasant, and “no effort of the will/Can interrupt” it. This view on art composing is kind of a reminiscence of Plato, who thought “poiēsis”, which indicates a human creation especially of art, that cannot be reduced to technical training, to come solely from the “divine madness” inspired by Muses. And the divine madness, later by Aristotle was understood as an imaginative power of Melancholy.

However, in Renaissance and following Romantic era, the focus of creativity had moved to human being, as to change the concept of “poet” from a divine person to rather a normal character, and especially in Romantic era, yet who must be sensitive to one’s deep heart. This Romantic scheme is believed to begin from William Wordsworth, who regards poem as “spontaneous overflow of powerful feelings” of the poet.

Yet the foreshadow of its failure was cast by John Keats and his poem “Ode to a Nightingale (1819).” Spite that Shelley announced the poet is a nightingale, Keats’ speaker ends up failing to identify himself with his admirable Nightingale.

 

Forlorn! the very word is like a bell

         To toll me back from thee to my sole self!

Adieu! the fancy cannot cheat so well

         As she is fam'd to do, deceiving elf.

 

John Keats. “Ode to a Nightingale”. Lines 57-60

 

Then he is left forlorn. Romantic dilemma of poetics here unravels itself. The Imagination, especially artistic and poetic imagination is what an individual cannot grasp and possess for whole, because when it is completely caught up in any consciousness at all, it would cease to be imagination. Imagination always has its indigenous realm that is not reduced to any consciousness. It moves like a pheasant. This is why the poet in the first hand compared himself not with an ethereal bird like Nightingale but with a common figure of waxwing.

In “Pale Fire”, a poet struggles to seize at least a flash, or “a sudden sunburst (“Pale Fire”, Canto One, line 146)” of imagination (pheasant’s spurred feet), between his/her melancholy (waxwing) and lethargic mannerism (mockingbird). Yet the poet does not release the hands just waiting for un-promised arrival of divine inspiration. In his/her mind goes a “testing of performing words. (line 843)” This poetics, based on the belief in human imagination, is rather a dialectic one, opposing both the archaic view of Plato and the self-contradictory Romantic scheme, yet sublimating both to a higher degree.

 

6. Conclusion

The very title of this poem is also an allusion to Shakespeare’s Timon of Athens: “The moon's an arrant thief,/And her pale fire she snatches from the sun” (Act IV, scene 3). The fire here means creativity and inspiration. It would be of no trouble to read the Canto One of “Pale Fire” as subtle rhymes implicitly concerning poetry itself. In this poem Nabokov created a heroic melancholy character John Shade who obsessively pursues the “survival after death.” The speaker alludes himself to specific kinds of birds i.e. waxwing, mockingbird and pheasant.

Why he did not identify himself direct with a waxwing but a “shadow” of the waxwing, it is still a mystery (one reason—an allusion to his name, Shade). But through these peculiar metaphors we can draw our conclusion that, John Shade, furthermore Nabokov himself viewed the process of art composing as a witty yet painstaking work in which the poet tries to grasp a hint of his/her swift-moving imagination, carefully following the trace of it, at least to catch its tip of the tail. The poet has to struggle between his/her forlorn solitude of melancholy, which waxwing symbolizes, and the torpor of mannerism, which mockingbird represents, to hold the moment of flash. The process of art, mainly confronting death, in that it never ends as a complete form, is heroic. This rather mysticism poetics is in conflict with both the ancient view of poetry and the Romantic view of poets, dialectically uplifting both to a more refined level.


 

Reference

 

§ Sigmund Freud. “Mourning and Melancholia”. The Standard Edition of the Complete Psychological Works of Sigmund Freud, Volume XIV (1914-1916): On the History of the Psycho-Analytic Movement, Papers on Metapsychology and Other Works.

§ Tom Furniss, Michael Bath. Reading Poetry. London and Ney York: Routledge.

§ Vladimir Nabokov (1962). Pale Fire. New York: Vintage International.

§ Percy Bysshe Shelley  (1903). A Defense of Poetry. Boston, MA: Ginn & Company.

§ “Nabokov's interview(03)”. Playboy [1964]. http://lib.ru/NABOKOW/Inter03.txt. Date of Access: 16 June 2014.

 


 

 

Appendix: “Pale Fire(A Poem in Four Cantos)”, Canto One

 

I was the shadow of the waxwing slain

By the false azure in the windowpane

I was the smudge of ashen fluff--and I

Lived on, flew on, in the reflected sky,

And from the inside, too, I'd duplicate

Myself, my lamp, an apple on a plate:

Uncurtaining the night, I'd let dark glass

Hang all the furniture above the grass,

And how delightful when a fall of snow

Covered my glimpse of lawn and reached up so

As to make chair and bed exactly stand

Upon that snow, out in that crystal land!

 

Retake the falling snow: each drifting flake

Shapeless and slow, unsteady and opaque,

A dull dark white against the day's pale white

And abstract larches in the neutral light.

And then the gradual and dual blue

As night unites the viewer and the view,

And in the morning, diamonds of frost

Express amazement: Whose spurred feet have crossed

From left to right the blank page of the road?

Reading from left to right in winter's code:

A dot, an arrow pointing back; repeat:

Dot, arrow pointing back...A pheasant's feet!

Torquated beauty, sublimated grouse,

Finding your China right behind my house.

Was he in Sherlock Holmes, the fellow whose

Tracks pointed back when he reversed his shoes?

 

All colors made me happy: even gray.

My eyes were such that literally they

Took photographs. Whenever I'd permit,

Or, with a silent shiver, order it,

Whatever in my field of vision dwelt--

An indoor scene, hickory leaves, the svelte

Stilettos of a frozen stillicide--

Was printed on my eyelids' nether side

Where it would tarry for an hour or two,

And while this lasted all I had to do

Was close my eyes to reproduce the leaves,

Or indoor scene, or trophies of the eaves.

 

I cannot understand why from the lake

I could make out our front porch when I'd take

Lake Road to school, whilst now, although no tree

Has intervened, Ilook but fail tosee

Even the roof. Maybe some quirk in space

Has caused a fold or furrow to displace

The fragile vista, the frame house between

Goldworth and Wordsmith on its square of green.

 

I had a favorite young shagbark there

With ample dark jade leaves and a black, spare

Vermiculated trunk. The setting sun

Bronzed the black bark, around which, like undone

Garlands, the shadows of the foliage fell.

It is now stout and rough; it has done well.

White butterflies turn lavender as they

Pass through its shade where gently seems to sway

The phantom of my little daughter's swing.

 

The house itself is much the same. One wing

We've had revamped. There's a solarium. There's

A picture window flanked with fancy chairs.

TV's huge paperclip now shines instead

Of the stiff vane so often visited

By the naive, the gauzy mockingbird

Retelling all the programs that she had heard;

Switching from chippo-chippo to a cl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