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한 서유럽 근대 철학자들의 생각은 일면 단순하다. 그들은 '벗어남'으로서의 자유를 이야기했다. 한 개인이 어떠한 초월적 권위(관습, , 인간관계 등)로부터도 자신의 행위에 제약을 받지 않을 때 그 상태를 자유롭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사회계약론자들이 가정하는 모든 사람이 절대적으로 자유로운 상태, 그들의 언어로는 '자연상태'에서는 개인들의 욕구와 의욕이 서로 충돌하거나(홉스) 아니면 아예 서로의 존재조차 모르는 채(루소) 공존한다. 그것들은 하나의 평평한 평면에 있을 뿐 그것들 ''에 있는 다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미 신을 잃어버린 그들 근대인은 인간들이 그런 절대적 자유의 상태에서 어떤 경로를 통해 지금과 같은 초월적 공권력을 만들어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답은 여러 가지였지만, 공통적으로 그들은 국가상태를 개인의 자유가 제약된 형태로 보았다. 특히 홉스의 통찰은 주목할 만한데, 그는 한 개인이 타인의 자유에 대해 불안과 적대감을 갖는다는 사실을 포착했다. , 모든 사람의 무제약적 자유를 동시에, 같은 정도로 제약한다면 모두의 마음 속에 (어느 정도의)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심지어 지금까지도 유효한 통찰이라 할 만하다. 실제로 우리의 관습과 법 체계는 '위험한 자유', 즉 살인, 폭력, 모욕, 사기 등을 모든 사람에 대해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발상이 극단으로 치달을 경우에 대한 대책을 그들은 마련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근대적 사고방식은 '자연'을 문제시 하고, '자유'를 적대시한다. 우리는 인공시설이 들어서지 않은 곳을 '빈 땅' 내지는 '노는 땅', 즉 일하지 않는 땅이라고 부른다. 일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정부는 인간들의 위험한 자유를 감시한다는 명목으로 완전한 치외법권에 놓이게 되었다(한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대중의 의사와 유리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라). 자유를 적대시하는 태도의 극단에는 집단적 편집증이 있다. 뭐만 하려고 하면, 너 위험한 짓 하려고 하지, 너 반역하려고 하지, 너 내 등 뒤에 칼 꽂으려고 하지, 너 의무 이행은 소홀히 하고 받을 것만 챙겨가려고 하지 등등; 한 마디로, 너 빨갱이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그래서 잠재적으로 공동체를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잘못 쓴 것이 아니다. 가능성이 두 번 포함되어 있다) 것으로 상상되는 모든 자유가 의문시되고 초월적 권위의 승인을 받고 감시를 받아야만 하게 되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와 개인이 계약관계라고 말했다. 개인이 생명과 재산을 보호받기 위해서는 국가가 내세우는 계약조건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가가 내세운 조건을 '의무'라 하고, 개인이 내세운 조건을 '권리'라 한다. 그런데, 최초로 계약을 맺은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그들의 자손, 자손의 자손들은 태어나기 전에 계약서에 지장 찍고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럼 이들과 국가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들은 논의의 일관성을 위해 그런 경우(실제로는 현대인들이 대부분 해당하는 경우지만) 국가와 개인 사이에 암묵적 동의가 있다고 보았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야훼와 이스라엘 민족의 관계를 떠올릴 필요가 있다(실제로 다수 칼뱅주의자였던 사회계약론자들은 계약이라는 모티프를 좋아했다). 성서에서 이들 사이에 적어도 두 번의 계약관계가 성립했는데, 한 번은 야훼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던 헤브라이인들을 해방시켜준 대신 열 개의 계명을 내렸고(구약), 다른 한 번은 신 스스로가 모든 인간의 원죄를 대속하고 사랑이라는 새 율법을 내렸다(신약). 그렇다면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를 신과 같은 위치에 놓았다는 말인가?

사실 이것은 신중히 생각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왜 국가와 신을 (적어도 이야기의 구조상) 같은 위치에 놓을 수밖에 없었을까? 여러 대답이 있겠지만 가장 유효한 답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의 자유가 그 만큼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간의 자유를 제약할 수 있는 존재는 어떠한 인간적, 세속적 존재로 여겨지는 것이어서는 불합리한 것이었다. , 그들이 보기에 인간의 자유는 여전히 중요한 것이고 지켜져야 할 것이었지만, 인간의 공존상태를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자유는 제약 받아야 할 것이었다. , 그들은 중세기 인간의 위험한 자유를 제약했던 준거가 신과 교회에 있던 것에 대비해 새로운 세기의 준거는 법과 국가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회계약자들의 나름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왜 근대국가는 지금 이 모양이 되었을까? 그것은 국가가 변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가 변방을 없애버렸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국 춘추, 전국 시대의 정치에서 이 통찰을 구할 수 있다. 당장 <맹자>를 펼쳐서 아무 곳이나 읽어봐도 우리는 당대 왕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백성들의 여론임을 알 수 있다. 식객들을 향한 그들의 질문은 하나 같이 내 백성들이 내 나라를 떠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를 맴돌고 있다. 뒤집어 피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 그 지배자에게 세금을 내지 않고 도망가거나 숨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고 현실적인 저항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근대 국민국가가 들어서면서, 도망자, 추방자, 이방인, 무법자의 이야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다만 그들에 대한 은유 혹은 값싼 서정적 상품만이 남았다. 예전에는 국가의 성벽을 나서는 순간 광야가 있고, 숲이 있고, 혹은 버려진 자들의 공동체가 있었다. 국가들은 이 지역을 적대국 사이의 완충지대로 인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성벽도 없는 국가의 국경을 넘어도 또 다른 국가가 등장한다. 성벽 바깥의 사람들이었을 사람들은 성벽이 없어진 도시 한 구석 슬럼에 살고 있으며, 그마저도 재개발에 밀려 해체되어 뿔뿔이 흩어져 살고 있기도 하다. 많은 어린이들이 집과 가정 바깥에서는 자신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부모의 무리한 요구도 꾹 참고 살아내는 것처럼, 국가도 변방 없는 지배체제 속에서 견제 받지 않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수 많은 원인 가운데에 자유에 대한 관념이 놓여있다. 사회계약론자들은 국가에 주목한 나머지 그들이 생각했던 자유의 긍정적 측면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베르그손의 통찰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우선 자아를 두 종류로 나눴는데, 바깥에서 주어진 관습이나 금기, 예절 등 나의 의사와 무관하게 행위로 드러나는 표층자아와, 다른 사람의 목소리와는 관계 없는 진정한 나, 즉 심층자아이다. 그는 그 심층자아와 행위와의 관계를 자유라고 보았다. 심층자아에 충실히 따른 행위는 자유로운 것이고, 도덕이나 관습, 금기, 사람들의 눈치에 떠밀려 하는 행동은 부자유이다.

우리는 자유로운 행위 아래에 놓인 것을 발견할 수 있고, 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먼저, 행위가 자유롭기 위해서는 심층자아의 욕망이나 의욕이 그 척도가 되어야 한다. 그 다음에는 의욕하는 바를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나의 능력이 필요하다. 한편 의욕과 능력이 있어도 그것을 제지하는 외적 요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 말해, 자유란 능력과 조건이 충족될 때, 내가 하고 싶은 바를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정도를 말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의 역할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데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해칠 수 있는 위험한 자유는 제한하되, 그 밖의 것에 대해서는 그것을 충분히 실현시킬 수 있도록 적절한 조건을 제공하는 것이 따라와야 한다. 만약 후자를 무시할 경우, 국가는 계약을 위반한 것이고, 국민의 세금에 무임승차하는 것이 된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는 국가를 견제할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

 

(여기까지 쓰고, 내가 말한 내용이 헤겔의 국가철학에 흡수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래서 대부분의 철학도들이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철학자들에게 굴복하나 보다. 앞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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