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의 생활에 대하여 -2015년 2월 10일 화요일


일단 가장 사소한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작년 초-중반 즈음에 5만원 정도 주고 산 회중시계가 고장났다. 요즘 시대에 소위 '빈티지'한 것을 동경하는, 그러나 생활을 그렇게 바꾸기에는 역부족인 사람들에게 이런 물건들이 그렇듯이, 처음에는 무척 마음에 들어하면서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으나, 어느 때부터인지 손에서도 마음 속에서도 점점 멀어져 나중에는 그것이 있는지조차 잊어버리는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종종 심심한 날에는 강아지 산책시키듯이 갖고 나가서 주머니 속에 넣고 다니면서, 평소에는 대충 인사만 하는 사람이라도 좋으니 누구라도 마주치면 시계 자랑이나 해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품게 된다. 물론 주머니에 넣어놓고 또 다시 잊어버리는 경우가 대다수이지만.


이 시계의 외관은 영화에 나오는 로켓처럼 위쪽에는 쇠로 된 시계줄과 바로 아래에 톱니 모양으로 된 태엽이 있고, 거기서부터 반원을 그리면서 아래로 가면 그곳에 경첩이 있는 모양이다. 이에 더해 쇠로 된 껍질에는 장미꽃과 덩쿨을 미니멀라이즈해서 꾸며놓은 듯한 무늬로 투각되어 있다. 소위 예쁘장한 것들을 다루는 오프라인 매장에 있는 시계들이 하나같이 감수성이 메말라 있는, 예컨대 일반 커피 정도라면, 이것은 인터넷 여기저기를 뒤져서 찾아낸, 예컨대 'T' 무슨 커피와 같달까. 그럼에도 이 물건은 2세기만 일찍 세상에 나왔으면 신사다운 좋은 주인을 만나서 꾸준한 사랑을 받으며 제 명을 다했을 텐데, 잘못된 시대에 잘못된 주인을 만나서 그만 아기자기한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물건이 단지 겉치레만 화려한 속 빈 강정 같은 물건인 것은 아니다. 시계 껍데기 앞뒤를 열어서 무브먼트도 보고 손에도 쥐어보고 하면서 이모저모를 뜯어보면 그런대로 실한, 5만원짜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그런 물건이다.


참 예전 같았으면 그냥 시계가 망가졌나보다 하고 또 잊어버릴 만한 사건이지만, 도대체 몸에서 힘이 다 빠져 나가서는 시간도 공간도 감당하기 힘들어진 요즘에는 이것이 퍽이나 내 모습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제는 고속버스를 타고 이천에서 서울로 오는데 난데없이 폭설이 쏟아져서 평소 같으면 1시간이면 족히 오는 거리를 두 시간 반이나 걸려서 왔다. 몸이 이상하게 각성되어 있어서 그 시간을 잠도 못 자고 오느라 몸도 마음도 지친 나 자신에게 나름의 보상을 주노라고 터미널에 있는 서점을 배회했다. 워낙에 드나드는 사람들이 뻔해서인지 위층에 마련된 인문학 코너는 쭉정이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래에 내려가서 시간 때우기 좋은 소설책이나 한 권 낚으면 좋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테스를 읽을까 하다가 지금의 몸과 마음으로는 이 내용을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긴가민가 하면서 돌아다니다가 보들레르의 '파리의 우울'이라는 책을 발견했다. 대충 서너 페이지만 읽어봤는데, 좀 만성적으로 염세적이고 우울한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유의 씁쓸한 유쾌함이 마음에 들어서 얼른 계산대로 향했다. 그래놓고 이 책도 지금은 방 바닥을 뒹구는 종이뭉치가 되어 있지만, 오며가며 몇 페이지씩 읽고 있노라면, 때로 바보같은 일을 벌이는 나 자신을 두고 헛웃음을 지을 때처럼 기분이 묘하게 괜찮아지는 효과가 있다.


운동을 또 안 해서 허리가 좀 쿡쿡 쑤시면서 아픈데, 허리를 쉬이면서 침대에 누워서는 '좀 언해피한 사람들만 사는 동네에 가서 어울리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사소한 지적일지는 모르나, 불행한 것과 언해피한 것은 다르다. 나는 불행한 사람들 사이에선 별로 살고 싶지 않다. 보들레르의 보들보들한 글을 읽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언해피한 사람들은 무기력한 가운데서도 기상천외하고 괴이한, 그러나 심히 유쾌하고 재밌는 일들을 벌이면서 골치거리를 만들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다. 사회규범은 때로 너무 엄숙주의적이어서 재미가 없다. 남의 사정에는 전혀 관심도 애정도 없으면서 다짜고짜 판단부터 하고 훈수부터 두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탓이다.


최근 나의 생활은 마치 해면 같다. 그래도 해면은 물에서 건져서 가공하면 그릇 닦는 데에는 쓸 수 있다지만 나는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싶다. 물론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애초에 접었지만 말이다. 나는 내가 죽고난 다음에 사람들이 내 말과 글을 기억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것이다. 관에 갇혀서 지하에서 웃을지 아니면 귀신이 돼서 공중에서 껄껄 웃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내가 봐도 나름 괜찮은 사유를 하면서 사는 것 같이 보이긴 해도 이걸 어떻게 글로 써낼 것이며, 또 논리와 증명을 금과옥조로 떠받드는 아카데미즘 속에서 이걸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지는 정말 막막하다. 이런 고민은 솔직히 좀 쓸데 없는 것 같지만, 불행히도 오늘 '인문학자양성세미나'라는, 한 학기 동안 20-25쪽 분량의 논문을 써내는 수업의 수강신청에 성공함으로써 일말의 쓸모가 생겼다.


지난 학기를 끝마치면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한 것이 있는데, 시적인 산문을 쓰고 싶다는 나의 오래된 소망을 묻어둘 것이 아니라 그대로 실천하면서 살자는 것이다. 도대체 대학에서 요구하는 보고서나 독후감 따위의 글들조차 숨 쉴 틈도 없이 꽉꽉 막혀서 이렇게 답답하면 나중에는 어떻게 글로 벌어먹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오히려 내 욕망을 억누르기만 하면 사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솔직히 내가 내 글에 대해서는 일말의 자부심을 갖고 블로그에도 올리고는 있지만, 그것도 며칠만 지나서 다시 보면 도대체 이게 내 글인가 싶을 정도로 낯선 느낌을 갖는 것도 사실이다. 그것은 도서관에서 우연히 옥타비오 파스의 '활과 리라'라는 책을 발견한 뒤로 거진 서너 달 동안을 갈등한 뒤에 내린 결론이다. 특히 그 책의 1장 '시와 시편'은 읽고 있노라면 황홀해질 정도로 문장이 시적이고 아름다운데, 지금 내가 이런 문장을 써냈다가는 그 어느 누구의 칭찬은커녕 온갖 훈수와 비난만 받으리라는 생각에 아찔해졌었다. 그러나 고민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어서 그렇지, 대부분의 실존적인 고민이 그렇듯 결론은 '본래의 나 자신이 되어라'였다.


그러면서 내 나름대로 진행하고 있던 생각정리 프로젝트를 폐기하고 새로운 것을 시작했다. 당초의 주제는 그대로 유지하지만, 글의 스타일을 '혁신적으로' 뒤집은 것이다. 괜히 쩔쩔 매면서 있지도 않은 청자를 설득하려고 진땀을 뻘뻘 흘리면서 궤변이나 늘어놓느니, 차라리 '나를 이해할 테면 이해해 보시지'라는 고고한 태도로 일관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인 것 같다. 어릴 적의 내가,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시를 동경했던 이유는 지금 와서 생각해 보건대 정말 단순한 것이었다. 산문으로 쓴 다른 글들은 내가 다른 사람을 이해시키기 위해 분투하고, 그것에 실패할 경우에는 따끔한 질타를 감내해야 하지만, 시는 (모두까기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오히려 다른 사람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분투한다. 내가 워낙에 자존심이 강해서인지 아니면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해서인지 (혹은 둘 다인지), 나는 시가 좋았다. 물론 윤동주나 한용운의 시가 가진 아름다움과 간결함, 조지훈의 시에서 엿보이는 고즈넉한 초가을의 달빛 같은 분위기가 좋은 것도 있지만, 이건 누구나 시에 대해 느낄 법한 것이기에 제외하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적어도 시에 대해서는 나는 속물은 아니다.


이런 측면에 한정해서 볼 때, 돌이켜보면 계절학기를 들은 것이 나름 악수였던 것 같다. 종교개혁사라는 이름을 걸어놓고 서양 중세-근대 초기의 정치사와 정신사를 아울러서 3주 동안 폭풍같이 고찰했던 수업이었는데, 배운 것도 굉장히 많고 사유의 폭도 전보다 많이 넓고 깊어졌지만, 힘을 다 뺐다. 이 상태로 할아버지 상 때문에 일주일간 부모님 일을 대타로 처리하고, 또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가야 하니 참 기운이 나려다가도 싹 없어진다.  내가 고등학교 입학한 이후로 집에서 나와 산지 벌써 6년을 채웠는데, 집에만 가면 우울하고 무기력해서 '집'에 있는 것 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엄마한테 이런 걸 말할 수도 없고. 부모 마음이 자식은 매일 봐도 또 보고 싶은 것 아니겠나 싶어서 말은 안 하고 있지만, 다른 것 다 제치고 집에 가는 게 나는 제일 부담스럽다.


집 하니까 떠오른 건데, 나는 누가 나 자신을 한 단어로 표현하라고 하면 주저함 없이 '이방인'이라고 말할 것이다. 아니면 '떠돌이'나. 한 단어를 더 허여해 준다면 겉멋 좀 부려서 '당신들의 이방인'이라고 해야지. 어디에도 편하게 속하지를 못하고 꼭 혼자 다니거나 나랑 비슷한 몇 명이랑만 다녀야 직성이 풀리는 게, 일부는 천성인가 싶어도 또 '집' 없이 산 세월이 너무 중요하고(나의 성장기와 일치했으니), 막대해서 어쩔 수 없구나 싶다. 따져보면 대부분이 그렇다. 중학교 때도 또래와 어울리지 않았고, 고등학교에서는 나랑 비슷한 애들이 많아서 낫다 싶지만 여전히 주류 집단에는 속하지 않았다. 대학교에 와서는 과 생활이라는 것은 완전히 남 얘기이며, 동아리에 들어가서도 1년을 못 버티고 나와서 산다. 남들이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렇다. 사람들 틈에 껴서 마음 편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까뮈의 '이방인'은 읽어보지 않았다. 모든 책과 사상을 다이제스트로 가르치는 한국 교육에서 자라난 탓에 내용은 대충 알고 있지만, 왠지 읽어볼 엄두가 안 난다. 한편으로는 이방인이라는 공통의 정체성 뒤에 숨겨진 막대한 차이 때문에, 까뮈에게 압도되어 나 자신을 잃을 것 같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내가 작품에 너무 몰입해서 어느 날 구금 이하의 형을 받을만한 짓을 벌일까 두렵기도 하다. 물론 주된 이유는 귀찮음이지만.


어쨌든 도대체가 요즘은 생산적인 일은 하나도 못하겠다. 또 게임이나 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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