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계절

태양을 견디기가 힘들다. 요즈음의 태양은 쇠퇴한 왕국의 왕좌처럼 덩그러니 하릴 없이 떠 있다. 빛은 쇠약해서 그것이 비추는 모든 것들이 다만 허여멀건 어중간한 색채를 걸치고 있어서, 그 어떤 대단한 것도 이 태양빛 아래에서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모든 강렬한 것들이 떠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그저 허여멀건 일상뿐. 생활도 삶도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은 일상이란 도대체 무슨 의미를 품고 있기에 나를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 것일까? 비스듬이 기운 황혼녘의 빛. '이 땅의 빛은 예술을 하기에 적당하지 않아.' 미네르바의 올빼미는 황혼녘에 날개를 편다더니, 황혼빛이 비출 때 모든 의미를 탈각하고 심연 속으로 전락하는 세계에서 비로소 사유가 시작한다는 것인가, 라고 쓰고 지운다. 의욕이 없다. 어쩌면 2월이란 모든 강렬한 것들이 지나가고 남겨진 계절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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