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대하여

내가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최근의 결론은 이렇다: 나는 상상에 대해 생각하고, 세계에 대해 생각하고, 이데올로기에 대해, 자본주의에 대해, 생명에 대해, 실존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나에게 낯선 것이기 때문에 나는 계속 생각하는 것인지 모른다. 이는 다시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내 바깥에 있는 것과 내 안에 있는 것. 예컨대,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철학, 사유, 생명, 올바름, 예의,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내가 그것에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상상, 세계, 은유, 기억, 과거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내가 특히 단짝을 만난 이후 그것을 내 안에서 '발견'하였고(물론 그에게서도 발견하였고), 그것을 정당화하거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이다. 어쨌든 나는 이것들 안에 푹 빠져서 스스로의 상태를 자각하지 않는 그런 익숙함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첫째, 내 밖에 있는 것들에 대해 사유함으로써 나는 무엇에 이르고자 하는가? 나는 도덕과 예의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사실 내가 그것에 대해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한 것도 아니고, 그것에 대한 글을 읽지 못하고 자란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내 이야기를 할 때, 내 요구를 말할 때, 그들의 요구를 승낙하거나 특히 거절할 때 등 그것을 행하는 방식에 대해 꽤 많은 시간을 먼저 생각하고, 내게 허락된 혹은 내가 스스로에게 허락한 시간을 끝까지 고민하는 데에 쓴 다음 여전히 확신이 없는 채로 그것을 한다. 그 동안 내 머릿속은 내가 혹시 잘못된 방식을 따르거나 미처 단속하지 못한 실수를 흘려서 상대가 나를 나쁘게 생각하거나 오해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무게감으로 가득 차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물론 숱한 실수와 오해를 남겨왔지만, 여전히 그것은 익숙하지 못하다. 실수를 하는 것은 괜찮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잘 수습하는 일이라는 말도 많이 듣고 그런 생각을 많이 하긴 하지만 여전히 나를 지배하는 것은 두려움과 부끄러움이다. 어쩌면 나의 정신이 그렇게 미안함과 죄책감, 절망을 앞당겨 겪음으로써, 내가 우려한 것보다는 나은 결과에 대해 안도하려는 성향에 '중독'된 것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건 습관이니까.


결과적으로 그런 우려들이 나중에 무의미한 것으로 드러나더라도, 그런 상상적 재앙에 괴로워하는 순간은 없던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나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행위의 '프로토콜'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에 따르는 것이 마음 편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많은 경우 그렇듯이 모든 사람에게, 또 모든 상황에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양식은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예의범절'의 모든 디테일을 따로따로 배우거나 모방하는 것도 골치 아픈 일이다. 스스로 따르기로 결정하지 않은 사회의 구조적인 행동양식에 따라야 하는 상황을 원체 싫어하고 그것을 억압이라 여기는 이유도 있다. 예컨대 윗사람에게 술 따르는 법에 대해 들을 때 내 머릿속에 지나가는 생각은 오직 '내가 왜?' 이 한 마디 뿐이다. 애초에 윗사람에게 술을 한 잔 따르는 것을 영광스러운 것으로 여기는 관습도 이해 가지 않을 뿐더러, 술병 라벨을 가린다고 해서 나의 존경하는 마음이 더 잘 드러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는 나 같은 사람을 일러 '노답'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경우는 극단적인 케이스에 속하기는 한다. 일반적인 경우 나는 사회적 프로토콜에 따르려고 하지만, 단, 나 자신의 윤리적 기준에 비추어 부합하는 것은 따르고 아닌 것은 나름대로 변형해서 수용한다. 진짜 문제는 여기에 있다. 나 자신은 나의 기준에 따른다고 하더라도, 나의 행위를 대하는 상대는 이미 한국 사회의 관습에 익숙해져 있지 않을까? 굳이 한국 사회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회나 혹은 그 자신만의 기준이 있을 테다. 이 점이 참 많은 상념을 낳는다. 만약 내가 사회적 프로토콜을 그대로 따른다면 나쁜 인상을 줄 가능성은 낮지만 혹시 나 같은 사람에게 그렇게 한다면 그 사람은 나의 행동이 너무 과하거나 소략하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또 내가 나의 기준을 적용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고전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모르겠지만, 도덕과 예의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이렇다: 물론 사소한 단어 선택이나 표현 등은 오해의 소지를 줄 수 있으니 관습에 비추어 충분히 단속해야겠지만, 예의의 큰 줄기는 나의 마음을 진실되게 표현하는 데에 있다. 특히 윗사람을 대할 때에 사람들은 그 사람의 비위에 거스르지 않기만 한다면 어떤 양식이든 예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아첨에 지나지 않는다. 윗사람과의 관계 역시 인간관계인 이상 언제나 서로 마음에 들 수만은 없다. 윗사람과 싸우는 일이 있더라도 그것 역시 인간관계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기에, 예의는 차라리 표현을 완곡하게 하는 데에 있는 것이지 내 마음을 감춰버리는 데에 있는 것은 아니다.


아, 노답이다.


혹은 자본주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위한 것일까? ***(나중에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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