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학년도 봄학기 정치철학 중간과제

 

역사 기억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정치적 문제와 광주 5·18 묘역

 

 

죽은 자의 묘를 파내어 다른 곳으로 옮기는 일을 일러 이장移葬이라 한다. 이장은 비교적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앞에 높은 첨탑을 세우고 애국가를 틀고, 사람들이 모여 묵념을 하고 연설을 듣는 일은 특별하다. 그것은 거기에 묻힌 자들이 국가 정부와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감각적으로 가장 분명하게 선언하는 일일 것이다. 내가 아는 바로는 국내에서 위와 같은 시설을 하는 곳은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현충원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묘역이다. 국가 정부의 유지와 발전에 공로가 있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의 묘이다.

19805월 전국적으로 일련의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군사정부는 계엄령을 확대 적용하고 광주 지역에 군사를 파견하여 유혈진압을 단행하였다. 이에 맞서 무장을 하고 시청을 점령했던 시민군은 결과적으로 전멸하였고, 언론은 이들을 반국가적 무장 폭도로 보도하였다.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정부는 이들을 국가에 공이 있는 자들로 인정하여 그들을 투박한 구묘역에서 번지르르한 신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이 아이러니 뒤에는 정치적 구도와 역관계가 숨어 있다.

먼저, 정부가 광주 5·18 희생자들을 유공자로 지정한 데에서 끝내지 않고 그들을 신묘역으로 이장한 것에는, 역사가 기억되는 양태를 바꾸어 보려는 정부의 의도가 들어 있다.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 놓은 구묘역은 그 투박함이 민중성을 상징하는 듯하며, 정부의 폭력에 맞서 싸웠던 이들을 잊지 않으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그곳을 찾는 이들은, 비록 1980년 당시와 현재 정부의 성격이 크게 달라졌지만, 정부의 폭력에 맞서 민중의 삶을 지키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를 계승하고자 한다. 그러나 정부가 조성한 말끔한 신묘역은 인민의 의식에 존재하는 그러한 정부와 민중의 대립을 완화하거나 혹은 은폐한다.

이런 완화 혹은 은폐는 다시 두 가지로 살펴볼 수 있겠다. 한 가지는 정부가 정치적으로 민중과 뜻을 달리 하지 않는다는 암시적 주장을 신묘역 조성을 통해 상징화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현재의 정부가 1980년의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정부이며 과거와 달리 지금의 정부는, 적어도 5월의 광주 사건에 대해서는 민중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일 것이다. 두 가지는 그 표면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두 정부라는 기관의 본질적인 폭력성을 은폐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억의 문제를 두고 그러한 은폐를 시도한다는 점이 특기할 만하다.

루이 알튀세르Louis Althusser에 따르자면, 이러한 시도는 정부가 이데올로기를 통해 인민의 의식을 지배하려는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알튀세르는 전통적 맑스주의 국가론에 구조주의를 도입하여 사유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먼저 그는 전통적 맑스주의 국가론에서 상부구조superstructure-하부구조infrastructure 이론을 받아들인다. , 정치, 사회, 문화, 예술과 같은 정신적 활동은 경제적인 하부구조에 의해 결정determine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결정이라는 말은 그러나 철저하게 환원주의적인 입장을 띠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상부구조는 하부구조에 의해 그 성격이 정해지기는 하지만, 전적으로 결정되지 않는 상대적 자율성을 갖는 것이다.

그의 유명한 논문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에서 알튀세르는 이 상대적 자율성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deological State Apparatuses’에 대한 논의로 구체화한다. 전통적 맑스주의 국가론에서와 같이 알튀세르에게도 국가는 추상적인 국가권력과 구체적인 국가장치로 나뉘며, 국가장치는 지배계급의 폭력적인 지배수단이다. 전통적으로 국가장치는 경찰, 사법 등 물리적인 제재수단과 동일시되어 이해되었다. 알튀세르는 그것을 폭압적 국가장치Repressive State Apparatus라고 부른다. 그러나 국가는 물리적인 폭력만으로 인민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런 RSA와는 달리 학교, 종교, 가족, 정치, 문화, 커뮤니케이션 등 비교적 사적인 영역에서 인민의 의식을 지배하는 더 섬세한subtle 방법을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ISAs)라고 부른다. ISAs가 억압적 사회구조를, 다시 말해 무산 노동자 계급을 생산·재생산하는 것이라면, RSA는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들을 물리적으로 제재하는 수단인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이데올로기는 어떤 활동성을 가졌다는 점이다. 개인은 태어나면서부터 가족, 학교, 종교 등의 국가장치를 통해 기성 구조 안으로 편입되는데, 이 때, 무의식에 잠재하고 있던 이데올로기는 개인의 의식으로 떠오른다. 개인은 이데올로기를 그의 의식 안에서 합리화하면서 이데올로기의 투사鬪士가 되는데, 이를 두고 알튀세르는 이데올로기는 개인을 주체로 호명한다라고 말한다.

5월 광주와 연관지어 살펴보자면, 1980년의 한국 정부는 물리적 폭력으로 시위를 진압했다. 이는 국가가 RSA를 활용한 것이다. 반면, 현재의 한국 정부는 이들을 국가 유공자로 지정하여 다루고 있다. 얼핏 보면 RSA에서 ISAs를 이용한 방법으로 통치 방식이 바뀌는 것이 자연스럽고, 그에 따라 정부가 이데올로기적으로 5월의 광주를 부정적으로 묘사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 묘한 점이 있다. 정부는 이 사건을 폭동으로 규정하는 대신 일종의 혁명 내지는 민주화 운동으로 묘사함으로써 상식적인 ISAs 활용의 방향과는 반대로 가고 있는데, 이로써 정부는 자신이 마치 통치를 위해 폭력적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사용하던 1980년의 정부와는 모든 면에서 구별된다(RSAISAs의 면에서)고 주장하는 듯하다.

현실적 원인. 결과적으로 한국에서는 1987년 민중의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인해 정부의 성격이 크게 바뀌게 되었으며, 따라서 정부는 군사정권 시기에 벌어진 모든 정부 주도의 폭력적 행위에 대해 적대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폭력적 행위에 주목하자. 이를 통해 현재 정부는 폭력적인 수단을 사용하지 않는 평화로운 정부이고, 따라서 모든 민주화 과정이 달성되었다는 이데올로기를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다. , 이전 정부와 RSA의 면에서만 구별되는 그 차이점을 폭력적 행위에 대한 적대라는 속임을 통해서, RSAISAs를 포함한 모든 국가장치를 민중에 적대적인 방식으로 쓰지 않고 있다는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첫째로, 현실적인 측면에서 정부는 인민에 대해 본질적인 폭력성을 지니고 있다. 둘째로,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지배는 일부 성공적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가 민주적 정부라는 이데올로기의 투사들은 집권당뿐만 아니라 흔히 보수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민간단체에서도 발견될 수 있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투사들의 과도한 활동은 그들이 수호하는 이데올로기에 어떤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하다.

알랭 바디우Alain Badiou, 국가란 구조의 구조라고 말한다. 어떤 하나의 규정으로 환원될 수 없는 개인들을 특정한 계급, 혹은 헤겔의 용어를 빌리자면, 특정한 직업신분으로 구조화하는 작용을 하나로 셈하기라고 한다면, 국가란 그 셈하기의 셈하기라는 것이다. 바꿔 말해, 국가는 구조화된 집단들의 체계를 마련하고 관리하는 상위 존재인 것이다. 이 때, 국가가 관심 있는 것은 고유한 개개인이 아니라 어떤 집단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다. 이는 경험적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하다. 이러한 메타구조화 작용을 통해 국가가 목표로 하는 것은 바로 기성 구조의 보존과 재생산이다. 이 때, 국가는 필연적으로 민중에 대해 폭력적인 수단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맨 처음에 전제로 한 바, 모든 개인은 특정한 하나의 규정으로 환원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그러니까 모든 구조화 작용에는 그것이 포착할 수 없는 어떤 틈, 바디우의 용어를 빌리자면 공백vide이 존재한다는 것이고, 그 공백의 존재는 언제나 구조에 대한 위협으로 여겨진다.

국가는 메타구조화를 통해 이러한 틈을 색출하여 원천적으로 차단하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그러한 공백이 분출되는 사건들이 존재하게 된다. 혁명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는 사건을 한시적인 스캔들로 규정해버리려 한다. ‘폭동’, ‘반란이라는 규정이 사건에는 늘 따라붙는다. 바디우는 이러한 사건이 본래 폭력적인 구조화 작용의 사각死角에서 발생하였다는 점, 다시 말해 존재의 가장 근원적 부분에서 분출된 것이라는 점에 주목하여 진리를 요청한다. 사건은 진리의 표출이다. 마치 프랑스 혁명에서 제시되었던 자유와 평등의 이념이 당시에는 커다란 스캔들이었으나 지금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사건을 통해 분출된 진리를 충실하게 수행함으로써 우리는 구조화를 넘어 더 나은 상태로 나아갈 수 있다는 낙관론이다.

다시 ISAs로 돌아오자면, 5월의 광주는 단지 평면적으로 무장 폭동민주화 혁명이라 바꿔 이름함으로써 결말 지어질 사건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개명된 그럴싸함 뒤로 이데올로기적 국가장치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으며, 여전히 정부는 인민에 대하여 폭력적인 수단을 동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름에 속지 않는 것이다. 광주 신묘역은 성지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탈을 빌려 교묘히 송곳니를 감추려는 정부의 시도이다.

정부가 인민에 대해 본질적인 폭력성을 지니는 이상, 타협적인 방안은 해결책이 되기 힘들다. 바디우의 철학은, 비록 현상을 분석하는 날카로움을 끝까지 밀고 나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나, 이론 철학(존재론)과 실천 철학을 하나의 체계 안에 결합하였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실천론은, 사건을 통해 드러난 진리를 구조 안으로 가져옴으로써 구조를 변혁한다는 타협론으로 귀착된다. 오히려 광주 신묘역과 한국 정부의 정치적 역관계에 대한 해결은 역사 속에 들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굳이 1945년 해방 정국에서 중앙 정부 대신 미군정이 대리 통치를 하려 할 때, 민중들이 스스로 만들었던 자치 기구를 언급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19805월의 광주에서는 계엄군이 잠시 철수한 며칠 간 오직 시민들에 의해서 치안이 유지되던 때가 있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돌아가며 경찰업무를 수행했고, 사람들은 밥을 지어 나누어 먹었다. 그 분위기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예로 당시 은행 강도가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하곤 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그러한 순진한naive 낙관론에 빠지지는 말자. 중요한 것은, 폭력적 통치에 반대했던 사람들이 잠든 묘역을 정부가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메커니즘이 이데올로기적으로 미묘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부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비민주적이여야 할 필요는 없다. 민주주의는 정부가 스스로의 본질적 폭력성을 인지하고 인민들의 소위 민중성과 그것을 대립시키는 긴장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다. 정부는 신묘역에 대해 단지 형식적인 권한만을 가져야 한다. , 그곳의 조성과 관리는 민간단체에 맡기고 정부는 신규 이장 대상자 선정 등에 대해서만 승인권을 가져야 한다. 5월 광주의 정신적 계승자들이 그곳을 돌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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