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깨달음을 얻었다. 이렇게 정리해보는 것이 좋겠다 :


부정을 부정함으로써 현실을 변화시키고자 한다면, 과연 어느 순간이 긍정되는 것일까. 다시 말해보자. 현실의 부정적인 면에 주목하여 그것을 제거하고 그 반대의 것을 채워넣는 것이 변증법이다. 그 과정에서 새로이 채워넣은 것 역시 부정적인 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 부정적인 면 역시 그것의 또다른 부정에 의해 대체될 것이다. 변증법은 순환-과정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는 부정만이 존재할 뿐 모든 현실과 모든 현재는 긍정될 수 없는 대상으로 머무르고 말 것이다. 이 구도에서 현재는 다만 과거의 연장일 뿐이며 미래를 위한 전단계로서의 가치만을 가질 뿐이다. 현재는 긍정되어야 한다. 모든 변화의 근거는 부정 그 자체가 아닌 긍정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현실이 긍정되기만 한다면 변화의 근거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왜냐하면 변화라는 것은 변화시키고자 하는 대상이 있어야 성립하는 것이고, 그 대상은 현재-현실에서 발견되는 어떤 부정적인 면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생각해 보자. 나는 변화의 근거, 변화의 가능성을 '잠재성'의 차원에서 찾고자 한다. 그러니까 현재-현실의 부정적 측면은 현재-현실의 평면적 일부분으로서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현실의 '내부'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발견된 부정은 '반복'을 통해서 현실의 수면으로 떠오를 것이다. 비슷한 종류의 사건이 시간선 상에서 반복될 때, 그 상황상황에서 발견되는 잠재적 부정은 그것이 발견된 현재-현실에 이어지는 미래의 현재-현실에서 발현된다. 따라서 모든 반복은 차이를 수반하게 된다. 그 차이는 상황마다 발견되는 잠재적 부정이 드러나고-보여지며 실천된 형태일 것이다.


특정 시점의 현재-현실에서 부정이 발견되기 위해서는 일단 그 순간에 '충실'해야 한다. 순간을 이루고 있는 모든 요소들은 그 순간을 띄워내고 숨어버린다(마르크스의 물신이론이라든가, "상상은 다만 주어진 것으로서의 세계 그 자체"라는 알튀세르의 언급이 생각나는 지점이다). 부정은 그 요소들을 다시 끄집어내서 해체해야만 발견된다. 시간적으로 보았을 때, 이렇게 부정을 발견하는 일은 항상 반성적이다. 즉 부정은 현재-현실의 충실한 긍정 이후에 따라오는 것이다.


물론 특정 현재-현실 내부의 부정이 바로 다음의 상황에서 즉시 실현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 지연은 실천의 맥락에서 해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실천되지 않는 부정은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다. 차이 없는 반복은 황폐하다(여기 참조). 실천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실천자agent가 어떤 상황을 마주하였을 때 그는 그 상황이 이전에 존재했던 상황들 A1, B1, C1, A2, D1, B3 등등 중 어떤 상황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는지 판단해야 한다 -즉 새로이 마주한 상황을 A3로 부를 것인지, 혹은 D2로 부를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이것을 상황인식이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인식의 결과로 여러 상황들이 하나의 부류로 묶이는 것을 계열화라고 하고 그렇게 된 상황-다발을 계열이라고 한다. 시간은 여러 종류의 계열들이 이루어내는 직조물이다. 같은 계열의 이전 사건들에서 발견된 부정은 이 상황인식을 통해 잠재적으로 현재 사건에 개입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천자에 의해 현실화되는 모든 과정을 실천practice이라고 부르자. 그렇다면 변화의 수행 과정은 이상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뱀발---

그 다음으로 우리는 변화를 실천할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것을 독특한 사건singular event이라고 부르자. 지금 생각나는 것은 사랑, 죽음, 그리고 삶 그 자체 세 가지이다(그 밖에 더 있을 수 있음). 이 사건들을 독특하다고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한 번 등장할 수는 있지만 결코 재현represent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복이 없기 때문에 '변화'의 관념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Comments

  1. Lady Lazarus 2014.02.28 20:59 Permalink Modify/Delete Reply

    글이 말랑말랑해지고 있다 - 긍정적인 의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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