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학년도 2학기 영국경험론 3차 보고서

D.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I. 목적

인간 지성에 대한 흄의 탐구는 인과성에 대한 탐구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버클리의 문제의식을 이은 것처럼 보인다. 버클리는 인과율에 대한 전통적 주장을 거부하고, 그것은 우리가 사물을 순차적으로 인식하는 순서나 연속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사람들은 어떤 관념이 다른 관념을 수반할 때, 그 계기의 질서를 자연 법칙이라고 부르지만, 버클리는 그것이 전적으로 신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는 것을 보였다. 흄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는 그것이 신의 의지가 아니라 자연에 내재된 힘에 의한 것이라고 보았다. 인간은 그 힘을 인식할 수 있으며, 또 그것에 따라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흄의 탐구는 차례대로 관념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관념의 연합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인과율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이루어진다.

 

II. 관념의 기원과 본성에 관하여

1. 관념의 기원은 경험적 인상이다.

지각을 통해 정신에 주어진 것을 흄은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인상(Impression)이고, 다른 하나는 지성이 인상을 복사한 형태인 관념(Idea)이다. 인상이 외감 혹은 내감을 통해 지성에 직접 주어진 것이라면, 관념은 그보다 덜 생동적인 지각이다(less lively perception; Section II, 교재 98. 이하 Sect. II, 98과 같이 표기함).

인상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흄은 이전의 경험론자들인 로크, 버클리와 차이를 두고 있다. 로크와 버클리에게 감각 지각으로 주어진 것은 곧 관념의 형태로 지성에 들어온다. 여기에서 관념의 확실성에 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 질문들은 존재론적으로 답해졌다. 로크는 외부 물질세계의 원자들과 감각기관의 충돌에서 그 근거를 찾았고, 버클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신의 지성 속에서 이미 관념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버클리의 논의에서 관념은 관념만을 닮을 수 있기 때문에 외부의 물질세계는 확실성을 주는 근거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흄은 여기서 한 걸음 물러나서 관념과 실재 사이에 인상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였다. 흄에게서 관념의 확실성을 판단할 수 있는 최종심급은 인상이다.

 

(a) When we entertain, therefore, any suspicion that a philosophical term is employed without any meaning or idea (as is but too frequent), we need but enquire, from what impression is that supposed idea derived? And if it be impossible to assign any, this will serve to confirm our suspicion. By bringing ideas into so clear a light we may responsibly hope to remove all dispute, which may arise, concerning their nature and reality. (Sect. II, 101)

 

어떤 철학적 용어(philosophical term)가 아무런 의미나 관념을 가리키고 있지 않고 있다는 의심이 들 때에 우리는 다만 그 관념이 어떤 인상에서 도출되었는가?”라는 질문을 하면 충분하다. 그리고 만약 어떠한 [인상적] 근거도 찾지 못하였을 때 그 의문은 확실시될 것이다. 관념들을 투명한 광채 속으로 이끎으로써 우리는 그것의 본성과 실재에 관해 일어날 수 있는 논란을 제거할 수 있을 것이다(이하 []은 번역자).

 

2. 경험하지 못한 것의 관념을 가질 수 없다.

관념이 전적으로 경험에 그 기원을 둔다는 생각은 로크, 버클리와 같다. 흄의 논의에서도 지성이 관념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은, 한 관념을 다른 것으로 전이(transporting)하는 일, 그것들을 확장·축소하거나 결합하고 나누는 일뿐이다. 예컨대 (God)’의 관념은 인간에게서 찾을 수 있는 앎, 지혜, 선함 등을 무한히 확장해서 얻어진 관념이다.

사람들은 경험하지 않은 인상에 대한 관념을 가질 수 없다. 흄은, 포도가 자라기에 기후가 적합하지 않은 북방 지역 사람[Laplander; Sect. II, 100]이나 흑인[Negro; ibid.]이 와인의 향에 대한 개념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이를 설명한다. 내감(internal sense)에 대해서도, 부드러운 매너를 가진 사람이 뿌리 깊은 복수심과 잔인함을 갖거나, 아주 이기적인 사람이 우정과 관대함을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반증 사례가 될 수 있는 현상이 있다고 흄은 말한다. 색감의 연속적인 배열에서, 예컨대 푸른색을 가장 깊은 색조에서 밝은 색조까지 펼쳤을 때, 어떤 사람이 그 가운데 빠져 있는 특정한푸른색(one particular shade of blue)을 찾아낼 수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여기서 각각의색조는 나머지와 구별되는 인상을 만들어낸다고 가정된다(and each shade produces a distinct idea, independent of the rest; Sect. II, 100). 흄은 30년 넘게 아무런 문제없이 시각 경험을 해온 사람이, 비록 직접적인 인상이 없을지라도, 빈 색조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통해 보면, 모든 관념이 그에 대응하는 인상(correspondent impressions)에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흄은 이것은 매우 특이한 사례이며 주의 깊게 볼 가치는 없어 보인다. 그래서 이 사례 하나로는 우리의 일반적 격률을 수정할 필요가 없다(though this instance is so singular, that it is scarcely worth our observing, and does not merit that for it alone we should alter our general maxim; Sect. II, 101)”고 말하며, 이를 일축한다.

 

III. 관념의 연합에 대하여

1. 관념은 유사성, 인접성, 인과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b) IT IS evident that there is a principle of connexion between the different thoughts of ideas of the mind, and that in their appearance to the memory or imagination, they introduce each other with a certain degree of method and regularity. In our more serious thinking or discourse this is so observable that any particular thought, which breaks in upon the regular tract or chain of ideas, is immediately remarked and rejected. And even in our wildest and most wandering reveries, nay in our very dreams, we shall find, if we reflect, that the imagination ran not altogether at adventures, but that there was still a connexion upheld among the different ideas, which succeeded each other. (Sect. III, 102)

 

정신의 서로 다른 생각이나 관념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원리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기억이나 상상 속에 나타날 때 그것들이 어떤 방법이나 어느 정도의 규칙성을 통해 서로를 이끌어낸다는 것도 분명하다. 진지한 생각이나 담론에서 쉽게 관찰할 수 있는 점은, 규칙적인 생각의 경로 혹은 연쇄 사이에 전혀 다른 특정한 관념이 끼어들었을 때 우리는 그것을 곧바로 눈치 채고 거부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가장 조야하고 방황하는 공상에서도, 또한 우리 꿈에서까지 상상력이란 모두 [방향 없는] 모험을 하고 있지 않다. 그 안에서조차 우리는 서로를 계승하는 서로 다른 관념 사이에 어떤 연결 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 관념들을 연결하는 원리를 흄은 유사성(Resemblance), 인접성(Contiguity), 인과성(Cause and Effect; 이하 인과성에 대한 지식을 가리킬 때에는 인과율이라는 표현을 쓰겠음)이라는 세 가지로 제시한다. 유사성이란 외관상 비슷한 것들을 연결하는 원리이고, 인접성이란 어떤 사물의 관념이 그것과 공간적으로, 또는 시간적으로 인접해 있는 다른 사물을 떠올리게 하는 원리이다. 인과성이란 우리가 상처의 관념을 떠올렸을 때 고통의 관념을 수반하는 것처럼, 어떤 관념을 떠올렸을 때 그것의 원인 혹은 결과가 되는 다른 관념을 떠올리게 하는 원리이다.

 

2. 사실의 문제에 대한 탐구는 인과성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이어서 흄은 지성이 작동하는 원리를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관념들의 관계(Relation of Ideas; Section IV Part I, 교재 104. 이하 Sect. IV-I, 104와 같이 표기함)이고 다른 하나는 사실의 문제(Matters of Fact; ibid.)이다. 기하학(Geometry), 대수학(Algebra), 산수(Arithmetic) 등은 관념들의 관계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그 탐구는 직관적이거나 논증적으로 이루어지며, 그 확실성은 관념들 사이의 관계에서 입증되거나 반증된다.

사실의 문제는 관념들의 관계에서 확실성이 입증되는 방식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얼마든지 모순을 내포할 수 있으며,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명제를 떠올려도 두 명제 모두 실재와 합치하는 정도가 비슷한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렇다면 사실의 문제에 관한 추론은 경험적 근거에서 확실성을 얻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추론들은 하나같이 기억과 감각에 직접 주어진 것을 넘어서는’(beyond the evidence of our memory and senses; Sect. IV-I, 105) 것을 가리키고 있다. 그 연결은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어떤 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그것을 흄은 인과성이라고 부른다. 흄에게 사실의 문제에 관한 모든 추론(reasoning)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를 토대로 하고 있다.

 

3. 인과율은 전적으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이 인과성은 사물들의 연결이 유사하게 반복되는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그것은 선험적 추론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물을 처음 접한 사람은 그것의 유동성과 투명함에서 물에 질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추론해낼 수 없다. 마찬가지로 대리석을 처음 접하는 사람은 그것을 떼어내기 위해 얼마나 큰 장력이 필요한지 알 수 없다.

일상 경험에서 우리는 사건의 인과성을 스스로 추론해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경험의 도움 없이 과거 사건에서 그것의 결과를 추론해 내는 것은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원인이 되는 사건과 결과 사이에는 아무런 내적 연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흄은 당구공의 운동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다(Sect IV-I, 108). 예컨대 당구공 하나가 다른 공을 향해 직선운동하고 있다고 하자. 이 공이 두 번째 공과 부딪혔을 때, 완전히 운동을 멈춰버릴지 혹은 왔던 길로 되돌아갈 것인지, 심지어 두 번째 공을 뛰어넘어 다른 방향으로 운동할는지는 알 수가 없다. 정확히 말하면 이 모든 가능성은 동등하게 정합적이고(consistent), 상상가능하다(conceivable). 따라서 이들 중 특정한 하나에만 결과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자연적 사건에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유비추론(analogy), 경험(experience), 관찰(observation)을 통해 자연 현상을 몇 가지 단순한 원리들로 환원해보는 일 뿐이다. 그 일반적 원인들의 원인(the causes of theses general causes)을 발견하고자하는 시도는 헛된 것(in vain)이라고 흄은 말한다.

 

IV. 인과율의 본성에 대하여

1. 인과성에 대한 지식은 경험적 유사성에서 출발한다.

사실의 문제와 관련된 인간의 지식은 모두 인과성에 대한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인과율은 경험에 빚지고 있다. 그렇다면, 경험적 추론의 토대는 무엇인가(Sect. IV-II, 110)? 달리 말하면, 지성이 경험에서 주어진 것에서 주어지지 않은 것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리는 무엇인가?

먼저 우리는 자연적 사건 자체를 탐구할 필요가 있다. 흄은 비슷한 사건이 비슷한 사건에 따라 나오는 내적 연관(connexion)*이 있다고 말한다. 예컨대 빵을 먹으면 몸에 영양이 공급되는 것처럼, 원인의 외관에서는 추론될 수 없는 결과가 항상 그것에 수반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 인간으로부터 감추는 숨은 힘(secret power; Sect. IV-II, 111)이다. 그러나 역시 이런 연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직관이나 추론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유사성에 대한 경험에서 비롯된다.

 

(c-1) In reality, all arguments from experience are founded on the similarity which we discover among natural objects, and by which we are induced to expect effects similar to those which we have found to follow from such objects. And though none but a fool or madman will ever pretend to dispute the authority of experience, or to reject that great guide of human life, it may surely be allowed a philosopher to have so much curiosity at least as to examine the principle of human nature, which gives this mighty authority to experience, and makes us draw advantage from that similarity which nature has placed among different objects. From causes which appear similar we expect similar effects. This is the sum of all our experimental conclusions. (Sect. IV-II, 114)

 

사실, 경험으로부터의 모든 주장들은 우리가 자연적 대상 사이에서 발견하는 유사성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유사성에 기초해서 우리는 비슷한 사건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오리라는 것을 기대한다. 물론 바보나 미친 자가 아니고서야 경험의 이러한 권위를 의문시하거나 인간 삶의 위대한 가이드를 거부하지는 않겠지만, 철학자로서 적어도 인간 본성의 원리를 탐구하는 것은 허락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본성이란 경험에 권위를 부여하고, 자연이 사물 사이에 부여한 유사성에서 이점(advantage)을 이끌어낸다. 외관상 비슷한 원인에서 우리는 비슷한 결과를 예상한다. 이것이 우리가 경험에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결론의 전부이다.

 

(c-2) It is only after a long course of uniform experiments in any kind, that we attain a firm reliance and security with regard to a particular event. (ibid.)

 

어떤 종류의 경험이든 동일한 것을 오랜 기간 경험한 다음에야 우리는 특정한 사건에 대해 [그것이 특정한 결과를 이끌어낼 것이라는] 확고한 신뢰(firm reliance and security)를 얻을 수 있다.

 

2. 인과성을 도출하는 원리는 관습(또는 습관)이다.

어떤 연역적 추론 과정이나 지성의 작용 없이도(without being impelled by any reasoning or process of the understanding; Sect. V-I, 120) 주어진 감각 경험에서 주어지지 않은 사건을 이끌어낼 수 있는 원리를 흄은 관습(Custom) 혹은 습관(Habit)이라고 한다. 관습의 영향이 없다면 우리는 기억과 감각에 직접 주어진 것을 넘어선 어떤 것을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이 점에서 흄은 관습을 인간 생활의 위대한 길잡이(great guide)”라고 부른다.

관습적 사고를 통해 우리는 주어진 것에서 시·공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사건이나 존재를 추론해낼 수 있다. 이런 추론의 확실성은 추론되는 대상을 직접 경험할 수 있을 때에 더욱 확실해진다. 예컨대 사막에 남아 있는 건물들의 잔해를 보고 우리는 그곳에 언젠가 도시가 있었음을 알 수 있지만, 그것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따라서 이런 추론은 직접 눈으로 목격하기(eyewitness; Sect. V-I, 122) 전까지는 다만 가정적인(hypothetical; ibid.) 것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한편 관습적 추론을 흄은 일종의 믿음(belief)이라고 보고 있다. 이 믿음은 자연적 사건 속에 인간이 위치해 있는 상황에서는 필연적인 것(necessary result; ibid.)이다.

 

3. 관습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은 자연이 부여한 것이다.

관습적 믿음과 허구(fiction)는 모두 상상력(imagination)의 영역에 속한다. 그렇다면 이 둘을 구분 짓는 것은 무엇인가? 흄은 허구에는 없지만 믿음에는 있는 어떤 종류의 정조(sentiment) 혹은 느낌(feeling)이 있다고 말한다.

 

(d) It must be excited by nature, like all other sentiments; and must arise from the particular situation, in which the mind is placed at any particular juncture. Whenever any object is presented to the memory or senses, it immediately, by the force of custom carries the imagination to conceive that object, which is usually conjoined to it; and this conception is attended with a feeling or sentiment, different from the loose reveries of the fancy. In this consists the whole nature of belief. For as there is no matter of fact which we believe so firmly that we cannot conceive the contrary, there would be no difference between the conception assented to and that which is rejected, were it not for some sentiment which distinguishes the one from the other. (Sect. V-II, 124)

 

그것은 다른 모든 정조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에 의해 발생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정신이 어떤 특정한 연접(juncture)에 처해 있는 그 상황 속에서 발생해야 한다. 어떤 사물이 기억이나 감각에 주어지면 정신은 즉시 관습의 힘으로 그것과 연접된 다른 사물을 떠올린다. 그리고 이 착상(conception)은 만들어진 느슨한 공상의 경우와는 다른 느낌이나 정조를 수반한다. 이것이 믿음의 본성에 관한 모든 것을 구성한다. 이런 정조가 없다면 우리는 승인되는 착상과 거부되는 착상 사이에 어떠한 차이점도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실의 문제(matter of fact)에 관해서, 우리가 어떤 것을 너무나 확고하게 믿은 나머지 그 반대의 경우를 떠올리지 못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비록 이 정조는 춥다는 느낌(feeling of cold)이나 분노라는 정념(passion of anger)을 설명하는 것만큼이나 기술되기 힘든 것이지만, 그것은 어떤 착상을 더 생생하고 확고하고 안정되게(steady) 만들어준다. 그것은 관념을 연합하는 다른 원리들, 즉 유사성, 인접성과 대등한 안정성을 갖는다. 예컨대 로마 카톨릭 신자들은 몇몇 상징들을 통해 신앙심을 고취시키는데, 이는 유사성의 원리에 기초한 것이다. 또한 집의 관념은 그것에 물리적으로 더 가까이 있을수록 생생한 관념을 전달한다.

 

(e) Here, then, is a kind of pre-established harmony between the course of nature and the succession of our ideas; and though the powers and forces, by which the former is governed, be wholly unknown to us; yet our thoughts and conceptions have still, we find, gone on in the same train with the other works of nature. Custom is that principle, by which this correspondence has been effected; so necessary to the subsistence of our species, and the regulation of our conduct, in every circumstance and occurrence of human life. (Sect. V-II, 129)

 

여기에는 자연적 과정과 우리 관념의 계기 사이에 어떤 예정조화(pre-established harmony)가 있다. 물론 그것을 연결하는 힘은 우리에게 전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우리의 사유와 착상은 자연이 작동하는 방식과 나란히(in the same train) 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한다. 이 때, 이 대응이 드러나는 원리가 바로 관습이다. 그것은 인간 종족의 생존에, 또 모든 환경과 인간 삶의 사건들 속에서 정규적인 궤도를 유지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여기서 흄은 예정조화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인과성에 대한 인간의 믿음이 전혀 자의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 자연의 숨은 힘(secret power)’의 내용에 대해 인간은 알 수 없지만, 관습을 통해 사물의 외적 연접(conjuncture)을 내적 연관(connexion)과 같은 방식으로 구성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흄은 대응(correspondence)’이라는 말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4. 지성은 개연성을 통해 자연을 파악한다.

이 때, 지성이 자연을 파악하는 방식은 개연성(Probability)이다. 한 원인에서 어떤 결과가 발생하든 그것이 빈번하게 발생할수록(from a superiority of chances; Sect. VI, 131) 그것의 개연성은 커진다. 네 면에 같은 수의 점이 찍혀 있고, 나머지 두 면에는 다른 수가 찍혀있는 주사위에서 우리는 전자가 더 많이 발생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성은 사건을 이런 방식으로 바라본다고 흄은 말한다. 즉 하나의 원인에서 여러 결과가 발생한다고 해도, 지성은 그 중 더 빈번하게 발생하는 결과에 믿음이라는 정조를 부여한 뒤, 그쪽으로 관념을 전이시킬 것이다.

한편 한 원인이 일상적으로 일으키던 결과를 일으키지 않았을 때, 철학자는 자연의 불규칙성을 탓하기보다는 그곳에 다른 숨은 원인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원인의 외관이 이전과 정확히 일치할 경우 우리는 개연성에 기초한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같은 원인에서 기대하지 않은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 역시 자연에서 발생한 것이므로 그것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 필연적 연관의 관념은 물질이나 정신에서 찾을 수 없다.

자연철학과 달리 정신철학은 논증 과정이 비교적 짧은 대신, 용어의 불분명성(obscurity)과 불확정성(uncertainty)이 드러난다고 흄은 말한다. 그 중 힘(power)과 필연적 연관(necessary connexion)의 관념이 문제가 된다. 흄은 그것이 어떤 인상에서 비롯되었는지 탐구한다.

먼저 힘의 인상을 우리는 외감에서 찾을 수 없다. 물체의 경도(solidity), 연장성(extension), 운동(motion)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지만, 그 개념들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어서 힘에 대한 어떠한 힌트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것은 내감에서 비롯된 것인가?

흄은 첫째로 정신의 의지가 신체 기관에 미치는 힘을 살펴본다. 만약 가장 정제된 사유가 가장 거대한 물질을 움직일 수 있다면, 즉 정신이 물질에 힘을 행사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연관에 관여하는 힘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신체에 행사하는 의지를 알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모든 기관을 제어할 수 있지 않다. 예컨대 손가락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것은 가능해도 간이나 심장을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편, 당시의 해부학적 발견에 따라 흄은 우리가 의지 행위를 통해 움직이는 것은 신체 기관 자체가 아니라 그것에 연결된 근육(muscles), 신경(nerves), 영혼(animal spirits)일 뿐이라고 말한다. 의지를 매개로 한 정신과 신체의 연관은 모호한 것일 수밖에 없다.

둘째로 살펴보는 것은 정신이 자신에게 행사하는 힘이다. 우리는 인간 정신의 본성과 관념의 본성, 그리고 그것을 연결하는 힘을 역시 알지 못한다. 또한 정신이 신체에 대해 갖는 권리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 정신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 정조나 정념에 대해 정신이 갖는 통제권은 관념에 대해 갖는 것보다 훨씬 적다. 한편 그조차도 정신의 상태에 제약을 받는다. 어떤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one languishing with sickness)은 건강한 사람보다 더 약한 힘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6. 필연적 연관의 관념은 자연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힘은 물질이나 정신 밖의 어떤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말브랑슈(N. Malebranche)나 버클리(G. Berkeley) 같은 기연주의자(Occasionalists)는 신 혹은 절대자에게 그 힘을 부여한다. 그들은 모든 사물의 운동에 신의 의지가 직접적으로 개입한다고 주장한다.

흄의 관점에서 이것은 자연과 창조된 사물(created beings)에서 모든 힘을 빼앗아가는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일상 경험과 너무 멀리 떨어진 이론인 것처럼 보인다. 둘째로 우리는 물질 사이의 작용하는 힘에 대해 모르는 것처럼, 정신적인 힘도 알지 못한다. 만약 기연주의자들의 주장이 옳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가 자연의 숨은 힘에 대해 모르는 만큼의 불확실성에 놓여있다.

필연적 연관의 관념은 비슷한 원인과 비슷한 결과가 함께 연접해서 나오는 그 반복자체에 있을 수밖에 없다.

 

(f) This connexion, therefore, which we feel in the mind, this customary transition of the imagination from one object to its usual attendant, is the sentiment or impression from which we form the idea of power or necessary connexion. (Sect. VII-II, 147)

 

우리가 정신 속에서 느끼는 이 연관, [관념의] 관습적 전이, 다시 말해 한 대상에서 그것에 항상 수반되던 대상으로 옮겨가는 상상이란 우리가 필연적 연관이라는 힘의 관념을 산출해 내는 정조 혹은 인상이다.

 

이 점에서 인과율은 두 가지 형태로 정의된다.

 

(g-1) Similar objects are always conjoined with similar. we may define a cause to be an object, followed by another, and where all the objects similar to the first are followed by objects similar to the second. (Sect. VII-II, 148)

 

비슷한 사물은 항상 비슷한 것들과 연접된다. 우리는 어떤 대상에 다른 대상이 수반될 때, 첫 번째 대상과 비슷한 것에는 항상 두 번째 대상과 비슷한 것이 따라 나온다면, 이 때 첫 번째 대상을 원인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g-2) The appearance of a cause always conveys the mind, by a customary transition, to the idea of the effect. We may form another definition of cause, and call it, an object followed by another, and whose appearance always conveys the thought to that other. (ibid.)

 

관습적 전이에 의해서 우리는 원인을 떠올리면 그 결과의 관념을 떠올린다. 우리는 원인에 대한 또 다른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을 수반할 때, 첫 번째 대상을 떠올리면 즉시 두 번째 대상의 생각이 따라 나온다면, 이 때 첫 번째 대상을 원인이라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V. 결론

인간 지성에 대한 흄의 탐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관념의 기원은 경험적 인상이다. 인상을 복사한 것, 그래서 덜 생생한 것을 우리는 관념이라 부른다. 경험하지 못한 것의 관념을 가질 수 없다. 이는 로크, 버클리 등 이전의 경험론자들의 주장과 같다.

관념은 유사성, 인접성, 인과성으로 연결되어 있다. 또한 지식에 대한 탐구는 관념의 연관과 사실의 문제 두 가지로 나누어볼 수 있다. 이 때, 사실의 문제에 대한 탐구는 인과성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인과율은 전적으로 경험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상술하면, 인과성에 대한 지식은 경험적 유사성에서 출발한다. 이 때, 비슷한 사물들이 반복적으로 연접되어 있는 경험을 통해, 관습(또는 습관)은 인과율을 도출하는 원리로 작용한다. 한편 관습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은 자연이 부여한 것이다. 지성은 개연성을 통해 자연적 사건을 파악한다.

한편 필연적 연관의 관념은 물질이나 정신에서 찾을 수 없다. 흄은 그것을 절대자의 의지에서 찾으려는 기연주의를 거부한다. 필연적 연관의 관념은 자연에 기초하고 있다. 여기서 원인에 대한 두 가지 정의가 내려진다. 첫째로, 비슷한 사물이 비슷한 사물에 수반될 때 첫째 대상을 원인이라 한다. 둘째로, 어떤 대상을 떠올렸을 때 그것에 항상 수반되던 다른 대상으로 사고가 전이될 때 첫째 대상을 원인이라 한다.


주석---

* 흄은 connect-connextionconjoin-conjunction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전자는 사물이 어떤 힘에 의해 내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것을 가리키는 반면, 후자는 단지 사물이 외적으로 연접하여 있을 때를 가리킨다. 이하 connexion연관으로, conjunction연접으로 번역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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