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양성(兩性)이 함께하는 삶을 위하여

 

집어든 책은 꽤 오래되어 보였다. 책 모서리는 닳아 누렇게 접혔고 속지는 색이 바랬다. 서지 정보에 쓰인 초판 출간일은 19901. 보통 같았으면 그런 책은 서가에 다시 꽂아두고 새 책을 하나 사는 것으로 마음을 돌렸을 것이다. 애초에 대출하려고 했던 민음사판본 자기만의 방이 이미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외의 것이 내 마음을 붙들었다. ‘옮긴이 이미애.’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고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은 아마 문학을 전공한 독신의 30대 여성일 것 같았다. 수도권 외곽에 방을 잡고 물질적으로 넉넉하진 않지만 혼자 살기에 모자라진 않은 그런 생활을 하는. 비록 상상 속의 이미지였지만, 그로 인해 이 책에 신뢰가 갔다. 옮긴이가 여성이라는 점이 그 신뢰감의 정체가 아니었을까 싶다.


이런 사고방식은 수십 년 전만 해도 별 공감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문화적 선진국이라고 생각하는 프랑스나 영국에서조차 말이다. 저자 버지니아 울프(1882~1941, 영국 런던 출생)가 우회적으로 얘기하고 있듯,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여성이 대학 도서관에 출입하기 위해서는 남성 연구원을 동반하거나 그의 초대장을 소지해야 했다. 이는 여성에 대한 일종의 편견 때문이었다. 당시 여성에 대한 책들의 내용은 여성의 정신적, 도덕적, 신체적 열등에 대한 진술이 일반적이었다. 남자들이 이렇게 여성의 열등함을 강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우월성을 드러내고자 했다는 것이 울프의 생각이다.


여성에 대한 인식 못지않게 그들이 누린 삶의 조건 역시 열악한 것이었다. 16세기 영국에서 여성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부모가 정한 상대와 결혼을 해야 했다. 결혼 후에도 남편에게 구타당하는 것은 의문시되지 않았다. 여성이 자신의 글을 쓰고 그것을 출판하는 일은 사람들의 비웃음과 여류작가에 대한 사회적 비판과 싸우는 일이었다. 많은 여성작가들이 우울증에 빠지거나 미쳤으며, 사회에 대한 분노를 못 이겨 자기 작품의 문학성을 해쳐버리곤 했다. 만약 셰익스피어(1564~1616)에게 누이가 있어 문학 활동을 하려 했어도, 그런 환경 때문에 그녀가 재능을 계발하고 널리 인정받는 작품을 쓰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 울프는 말한다.


따라서 여성이 픽션을 쓰기 위해서는 돈과 자기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한때 버지니아 울프라는 작가는 페미니즘(feminism, 여권주의 운동)의 상징처럼 여겨졌고, 이 문장 역시 그런 맥락에서 이해되었다. 하지만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이 불러올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옆에 놓는 것이 좋겠다. “어느 성()에게나 삶은 힘들고 어려운 영속적 투쟁이라는 것. 여성에 대한 고질적인 사회적 차별은 사회생활을 하는 가장(家長)들이 삶의 투쟁에서 자신감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치명적이라는 것. 그런 의식적인 편향성은 창조적인 예술 활동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자기만의 방은 여성과 남성이 함께 하는 삶, 나아가 여성과 남성이 자신의 고유한 체험을 편견 없이 담아낸 문학을 위한 울프의 진지한 고민이 담긴 에세이이다. 여기서 제시된 자기만의 방은 그런 휴머니즘적 목표를 위한 최소한의 물적 조건이다. 한편 이런 무거운 주제를 울프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를 다양하게 변주하면서 재치 있게 풀어나가고 있다. 에세이 전체가 여성을 주제로 한 픽션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20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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